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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적 3대기원 下 (28회)
 홍기성 
  | 2001·07·15 16:56 | 조회 : 2,571 |
불교가 중국문명에 경전으로 정착되어 들어오는데 그 들어오는 과정은 노장사상이 없다면 들어올수 없다고 합니다. 涅槃(열반)이라는 불교용어는 인도어의 nivana(니어바나)의 중국말의 음역이라고 합니다. 열반이라는 한자는 의미는 원래의 인도어의 니어바나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니어바나를 처음 번역할 때 노자의 無爲(무위)사상에서 無를 빌려 사용했다고 합니다. 불교는 이처럼 처음 노장사상을 통해서 표현했고 이해를 했다고 합니다.  老壯(노장)의 언어를 빌려 불교를 표현했는데 이것을 格義(격의)불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불교가 점점 중국인들의 마인드로 중국인의 원래적인 시적인 영감속으로 불교가 들어왔는데,  또 다시 당나라가 무너지고  분열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송나라가 세워지면서 사찰경제가 나라를 망친다고 하여 배불정책을 폈다고 합니다. 불교는 윤리를 초월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올 김용옥은 원효스님 정도면 모르겠는데 그 수준이 조금만 낮아져도  자기는 온갖 나쁜짓을 다해도 자기만 해탈하면 그만이라는, 불교처럼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도 없다고 합니다.  사찰경제로 망한 당나라 경제의 대 개혁을 송나라는 실시했다고 합니다. 송나라에 와서는 불교는 모두 죽여야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송나라의 모든 대 사상가들이 불교를 배척했다고 합니다. 송나라의 주렴계, 소강절, 이정(정이천 정영로), 장횡거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합니다.  주자는 정이천의 계열로, 불교로 절어버린 당대 지식인계를 儒敎(유교)로 바꿀려고 했다고 합니다. 유교는 세속적 윤리라고 합니다. 유교는 기독교처럼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평상적 윤리를 가지고 우리가 살수 있다는 것으로, 그것만 가지고 인간질서를 이룰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교는 이렇듯 원래적으로 평범한 상식적이라고 합니다. 유교는 세계의 여러 고등종교중 가장 합리적인 종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송나라때 와서 다시 불교를 유교로 대치할려고 하는데, "엄마 다녀왔습니다!"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불교가 유교로 바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원래적 유교가 이렇듯 평상적인데 반해, 불교는 "一體(일체)는 오로지 마음에서 지은 것이다" 거기에는 산이 있다가 없어지기도하고....등등 하여간 대단하다고 합니다. 불교는 이세계 우주에 대한 인식론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의 근원이 무엇이냐? 그 우주가 실제를 하느냐?  그러면 너는 거기에 있는냐? 등등.......  그러나 공자는 죽음에 대해서도 말하기를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논어 선진편)"라고 말했습니다. 또 공자는 말하기를 "하느님의 세계는 공경하되 멀리하라! 그것이 백성의 바른 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복잡하지 않고 평이한 유교가 당시 불교로 절은 지식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교의 고매한 형이상학과 인식론과 어마어마한 그 유식사상에, 중국 지식인들이 복잡하게 우주가 펼쳐지는 판에 어떻게 세속적인 윤리를 가지고 문명의 패러다임을 다시 바꿀수 있는냐는 것입니다. 송나라 지식인의 과제는 바로 어떻게 불교의 형이상학과 인식론에 상응하는 유교철학을 만드느냐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올 김용옥은 지금 서양문물이 모든 문물과 제도속에 완고히 지배하고 있는데, 내가 이 세계를 노자로 평정할려고 하는데 노자 왈 "도가도 비상도"만을 외치면 그것이 들어먹히겠는냐는 것입니다. 지금의 강의가 자연학도나 자연과학의 최고의 석학이 들어도 설득력이 있어야 그것이 먹혀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당대의 주자선생은  그러한 사명을 달성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자(1130~1200)는 중국문명의 패러다임을 만든 사람입니다. 주자는 불교의 인식론과 형이상학과  상응하는 유교적 윤리학적 인식른을 만들었습니다. 불교로 절은 중국지식인들이 봐도 조금도 꿀리지 않는 어떠한 우주론적  우주론적 해석의 틀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理氣론이라고 합니다. 이기론은 원래 중국유교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불교에 절은 지식인들을 설득하려면  과거 "엄마 다녀왔습니다"식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주자는 유교를 우주론적으로 해석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개념들을 만들어 유교경전을 다시 해석했다고 합니다.  理와 氣는 선진유학에는 없었고,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송대의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자라는 사람은 전략을 세우기를, 민중들에게 13경을 가르쳐야 하겠는데, 13경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불교의 경전이 중국인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어지럽히는데,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주자는 작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유교경전 13경중 대중적인 설득력이 있고 대중적이면서 이론적 깊이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찾아보니깐, 논어와 맹자 그리고 예기속의 두편인 대학과 중용이라는 것입니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사이의 대화중 평이하지만 엄청난 형이상학적 함의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도덕경은 한 사람의 체계적인 저술이지만, 논어는  공자가 안회나  자로등 제자와의 상황상황속의 대화속에 매우 심오한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맹자는 논쟁의 도사라고 합니다. 맹자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 한것중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철학적 해석이 될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기는 너무 방대해서 대학과 중용의 두편을 끄집어 내어 독립시켰다고 합니다. 대학과 중용은 장수로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이 사서라고 합니다. 주자이전에 사서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중용에서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하늘이 명하는 것을 일컬어 성이라고 한다. 이 성을 따르는 것을 일컬어 도라고 한다. 이도를 닦는 것을 일컬어 가르침이라한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喜怒哀樂이 아직 발하지 않은 것 그것을 일컬어 中이라고 하고, 발하여 모두 마디에 들어 맞는 것 그것을 일컬어 和라고 한다.) 가 나오는데 중용은 이처럼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심오하게 철학적으로 들어 갔습니다.
주자는 유학 뿐만 아니라 불교를 잘아는 대가였다고 합니다.  주자학도 불교사의 맥락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불교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가지고 중국의 13경중 4개를 골라 해석했고, 이것이 주자의 사서운동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서운동이 전개되면서 신유학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고려말 안향을 통해서 들어왔고 이조초기 정도전이 국가의 틀을 잡을 때 썼다고 합니다.  이조초기  처음 신유학이 들어올때는 주자의 가례가 먼저 들어왔다고 합니다. 주자의 가례는 조선초기에 가장 중요시 되었던  주자학의 문헌이었고, 새로운 사회질서의 문제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기론은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다음 이퇴계 이율곡이 나오면서 논의가 된것으로, 문명은 하루아침에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례가 먼저들어오고 그것이 충분히 이해되고 논의가 되어 철학적 논의가 시작된것이라고 합니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을 다시한번 종합검토해보면, 주공은 주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만든 성인으로 공자는 주공부터 내려오던 모든 문물과 제도를 정리하여 해석하여 육경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해석학적 제 1기원은 공자가 述而不作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한제국문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한사군설치와 고구려 광개토왕때 일로써 이 모두가 한문명의 패러다임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노자 2장에서도 "완전은 불완전의 하위개념이다"라는 말을 기억하실것입니다. 한고조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제국은 멸망과 분열이 되었고, 고착된 漢제국문명을 깨고 들어간 것이 바로 불교라고 합니다.  이런 틈새로 불교는 깨진 유교를 대치하여 들어온 것입니다.  한대의 금고문논쟁을 통해 성립된 복잡한 경전해석학을 그대로 불경으로 옮긴것이 바로 대장경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금고문논쟁으로 13경이 정리되는 것이 다시 그뒤로 불교가 치고들어와 성립된 것이 대장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대장경이 성립되었지만 결국은 불교는 중국사람들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1세기동안 서양과학과 기독교와 서양의 문물이 들어와 모든 제도와 문물을 지배하고 있다지만 결국은 이것은 우리것이 아니다라고 모두 느낄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를 통해 성립한 나라가 唐(당)나라라고 합니다.  당나라 또한 불교가 고착되어 불교로 인한 폐해가 커지면서 무너졌고 분열되었습니다.  唐이후 宋(송)나라에 와서는 당나라문명(대장경)이 주자의 사서집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서집주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성립되면서 주자학이 성립했고, 조선조 문명은 바로 이러한 주자학적 패러다임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자에 의한 해석학의 제 2기원(불교를 다시 유교로 대치하기 위한 주자의 새로운 경전정리와 해석--->사서집주)이라고 말합니다. 송이 무너지고 明나라로 오면서  주자학에 대한 반동으로 양명학이 성립되었다고 합니다. 양명학은 왕양명이 새롭게 만든 유학으로서, 우리 조선조에서는 노장철학과 양명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단시 했고,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조선조는 어디까지나 주자학 일변도의 주자학으로 컨트롤되는 왕조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양명학이 문제가 되는가?하는 것입니다. 양명학은 중국남방의 서주중심으로 상인계급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라고 합니다.  주자학은 높은 관료들의 철학이자 사대부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주자학은 관리들의 도덕기강을 세우는 철학으로서, 요새말로 한다면 쉽게 "공무원교육철학"이다라고 말할수 있다고 합니다.  당대 사대부 권력가들에게 강렬한 도덕적 의식을 넣어주었다는 것이 주자학이라고 합니다.  주자학이 너무 윤리성이 강화되어, 거것이 사람들을 너무 윤리적으로 속박하여 견디기 어려웠고 그러한 윤리적 속박에서 벗어날려는 몸부림이 양명학이라고 합니다. 도올 김용옥은  조선조 우리 며느리들이 아주 엄격한 유교할아버지들한테 엄청난 수모를 당했다고 합니다.  양명학에서 良知良能이라 하여 "사람에게는 원래적으로 깨달음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세계에서 자기마음만 깨달으면 곧 양지양능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획복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자는 格物治知라 하여 " 사물의 이치를 하루 하루 경험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명학은 유교의 禪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유교에 대한 해방철학이라고 합니다. 양지양능으로 다시 대학이나 중용을 해석하자는 것입니다. 이렇듯 양명학이 명나라를 휩쓸다가 북방오랑캐들이 청나라(1616~1911)를 세우면서 중국의 지식인들이 모두 침체되는 형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 있어 외부왕조가 들어와 나라를 세우면 건국초기에는 상당히 견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나라 초기에는 고증학이 발달되었고 실사구시의 학문이 거기서 나온것이라 합니다. 고증학은 당대 중국인들의 이론적으로 까불지 못하도록 성립된 것이라 합니다. 청나라 말기까지 양명학이건 고증학이건 그것들이 커다란 변화를 주지 않았고, 주자학은 약 700년동안 패러다임이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자학의 패러다임이 단숨에 깨져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라틴문명권(서양의 과학문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왜 기독교가 들어왔는가?는 엄한 유교할아버지에게 당하는 며느리의 수모를 기독교가 깨기위해 들어왔다고 합니다. 조선조의 엄격한 윤리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서구의 문물과 제도는 그야말로 해방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도 주자학적 패러다임이 깨지면서 조선문명이 폐허되어 비틀거릴때, 바로 조선을 일본이 덮친것이라고 합니다.  라틴문명권의 도전속에 새롭게 제기되는 동양의 패러다임의 성립(핵석학의 제 3기원)은 누가 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은 그래서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것이라고 합니다. 문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렇듯 문명사를 과거부터 지금까지 꽤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은 현재 자기에게는 과거가 없다고 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바로 자기의 현재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컴퓨터에만 매달려 대단한 혁명이라도 일어날것 처럼 생각하는데, 문명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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