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분류 탈춤 이야기 | 풍물 이야기 | 문화 이야기 | 고전 이야기 |
글 내용 보기
해석학적 3대기원설 上 (27회)
 홍기성 
  | 2001·07·15 16:55 | 조회 : 2,629 |
원래 동양과 서양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둥그런 지구에 명확히 서쪽과 동쪽을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없을 뿐더러 서양이란 라틴문명권을 지칭하고 그 라틴문명권은 멕시코와 잉카문명 그리고 아프리카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양도 마찬가지로 동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한자문화권을 지칭하는 것으로 학술적으로 동아시아라고 한정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자문명권은  중국에서도 한자를 쓰는 중원중심을 말하는 것이며,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무제때부터 침입을 받아온 월남을 말한다고 합니다. 월남은 오월동주의 월의 남쪽을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세계사는 동서양만으로 보면은 안된다고 합니다. 동서양문명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동서양 문명은 매우 협소한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서양이 문제가 되는 것은 라틴문화권에서 중요한 사이언스가 나오고, 한자문화권에서는 이처럼 지속적인 세계사의 문명이 없었고, 인류문명사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양문화권의 미국과 일본이 실제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서양 문명이 어떻게 흘러 내려왔는가?
도올 김용옥의 노자라는 고전의 강의가 재미있는 것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체험에서 이해할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알수 있는 말로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해석학이라고 합니다. 해석되지 않은 고전은 없으며 고전의 역사는 해석의 역사라고 합니다.  고전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하고, 그 시대 사람이 알아볼수 있도록 해석해야하는 것이라 합니다.   법조문은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법조문의 해석인 판례가 그시대의 법질서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공자이전에도 詩. 書 . 易經이라는 서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자는 "述而不作(나 공자는 옛부터 내려오는 것을 정리하고 해석해놓았을 뿐 새로이 만들지 않았다"했다고 합니다.  공자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여 나름대로 해석하여 후대에 남겼다고 합니다. 그것이 육경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위대하다는 것은 이러한 술이불작을 통해서 해석학적 기원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정통고전이라하면 사서삼경을 말한다고 하지만 도올 김용옥은 그것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과거시험과목이었다고 합니다. 사서는 주희(신유학의 완성자)가 완성한 것으로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중 대학과 중용은 예기라는 책에서 두편에 지나지 않는 작은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따로 분리시킨것으로  중국고전에 있어 대학과 중용의 독립된 고전은 없다고 합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경전은 13경이라고 합니다. 이 13경은 논어(1) 맹자(2)를 포함 시(3) . 서(4) 그리고 예는 다시 3가지로 나뉘어 졌는데 주례(5), 의례(6), 예기(7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악은 예기속에 악이라는 평론이라고 하고 실제로 경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다음 역(8) . 춘추역시 곡량전(9), 좌시전(10),공양전(11)으로 나뉘어지며 여기에 효경(12)과 ?경(13)이 더해져 모두 13경이 된다고 합니다. 공자는 바로 이러한 13경의 기초가 되는 詩 . 書 . 禮 . 樂 . 易 . 春秋이라는 육경의 기초를 닦았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으로  주공(주공과 공자는 약 700년~800년의 시차가 있다고 합니다.) 이라는 주나라의 문물을 정착시킨 위대한 성인을 존경했었다고 합니다. 꿈에서 주공과 자주 만난다고 합니다. 공자는 주공때부터 내려오는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여 문명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국시대를 마감한 왕이 바로 진시황이라고 합니다. 한비자는 전국 말기의 법률사상가로 진시황이 7세때 한비자의 책을 읽고 "비"선생을 만나봤으면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함으로 한비자가 옥중에서 죽어 둘은 만나지 못했지만 한비자의 친구인 "李斯(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사와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로서 같이 동문수학했다고 합니다.  공자시대의 인의예지라는 윤리적덕목으로는 진시황의 대제국을 운영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제국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법으로 다스려지는 법치국가의 최초 출발이라고 합니다.(유가는 예중심의 사회질서이고 법가는 법질서의 사회질서를 말한다).  그러나 통일이후 법가보다는 유가라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제국은 그 경직성으로 망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사회질서는 법으로만 다스려 질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秦(진)제국 이후 漢(한)제국이 일어나면서 한대의 분위기는 儒家(유가)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무제는 罷出百家 獨尊儒術(파출백가 독존유술)이라하여 유교를 국교로 삼는 정책의 슬로건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한비이전의 공자는 노자나 묵가 보다 못한 초라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한제국이 되면서 공자의 과거 경전해석의 과업이 힘을 얻게되는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십삼경이 漢代에 들어와서 조직화되었다고 합니다.  진시황은 유생(선비)들이 말이 너무 많다하여 이사의 건의를 받아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학자들을 생체로 매장하는 갱유분서를 단행하였습니다. 이것이 한대에 와서 엄청난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한대에 다시 경전을 부활시키는 과정은 벽속에서 죽간으로 보존된 상태의 것과 선비들의 머리속에 암송된 구전에 의해 다시 쓰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전자는 古文이라하고 후자는 今文이라합니다. 그러나 고문과 금문이 다를수 밖에 없어 고금문논쟁이 300년~400년 지속되는 동안 지금에 보는 모든 경전이 그때(兩漢) 성립한 것이라 합니다.  이시기 우리나라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고구려의 건국초기이라고 합니다. 
한고조를 마지막으로 漢나라가 삼국으로 분열이 되어 북방오랑캐(양무제)들이 들어왔고,  북방오랑캐들이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 불교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틈새로 인도에서 불교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평상적 시대라면 즉 제국일때에는 불교가 들어올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도와 중국은 파미르고원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장막으로 두 문명이 교류가 전혀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사람들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노장사상을 통해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인도 불교승들의 목숨을 건 중국의 불교전파로 중국에는 많은 불교경전이 하나 하나 번역 해석되었고,  그러한 문화가 쌓여 위대한 당나라 문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신라는 그러한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여서 생긴것이라 합니다. 인류문명상 인도의 불교와 중국문명이 깊게 교류한 예가 없다고 합니다.  인도문명과 중국문명은 상당히 이질적이라 합니다. 언어부터 중국은 단음절문자인데 인도는 영어처럼 알파벳같은 다음절 언어라 합니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불교의 현란한 언어로 심취해들어갔고 불교적인 마인드를 가져가고 있었지만, 불교의 산만한 언어를 중국의 시적인 언어(단음절)로 탈바꿈 시켰다고 합니다. 인도문명을 창조적으로 왜곡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화엄종과 천태종으로 나뉘어 지지만,  결국은  화엄종과 천태종마저 쓸어버리고 禪이라는 것으로 종착되었다고 합니다. 중국불교의 선이라는 것은 산문적인 세계를 쓸어버리고 시적인 것으로 돌아감을 말한다고 합니다.  선은 중국인의 시적영감이고 중국적인 느낌이라고 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작성일 조회
  해석학적 3대기원 下 (28회)
 홍기성
01·07·15 2574
  청춘과 깨달음 (26회)
 홍기성
01·07·15 2638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자동로그인
 
CopyRight (c) 충북대 민속연구회, All Right Reserved.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산48번지 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36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