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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좌도 필봉굿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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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1:15 | 조회 : 3,472 |


  필봉마을은 전라도의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진안군과 장수군이, 남쪽으로는 남원군과 순창군이, 서쪽으로는 정읍군이, 북쪽으로는 전주시를 끼고 있는 완주군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군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0km 가량 떨어진 곳에 면 소재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다시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3km가량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 붓끝이 모아지듯 산자락이 정상을 향해 반듯하게 모인 필봉산이 마을을 감싼다. 이 마을의 산세는 험하기 때문에 농토의 규모가 작고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를 이루는 농업 형태를 취한다.

  마을의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동쪽에 있는 산이 암소 형국이고, 마을의 위치가 외양간과 같다고 하여 중방리라 하였다. 마을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 위중방, 아래중방이라 부른다. 두 마을은 마을간 명칭 관계로 원님에게 상소하는 사건까지 겪어가며 원과 가까운 곳을 상중방, 먼 곳을 하중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상중방이 남쪽, 하류쪽에 있고, 하중방이 북쪽, 상류쪽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곳과는 상·하 관계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위·아래의 개념이 지리적 조건보다는 원을 중심으로한 문화적 개념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마을 서쪽에 있는 산 모양이 붓과 같다고 하여 산 이름을 따 필봉리로 개칭되어 현제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본고에서 사용하고 있는 필봉리는 상중방과 하중방을 포함한 것이 아니라 상중방을 말한다. 이 마을에는 박(朴), 김(金), 양(梁) 3성씨가 힘에 균형을 가지고 유지하고 있다.

  필봉풍물굿의 상쇠 양순용 선생님은 필봉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집안이었다. 갈담국민학교를 마치고 임실동중학교를 다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풍물굿에 유달리 관심이 많아 풍물굿 소리가 나면 집에 가는 것도 잊고 풍물굿 뒤를 따라 다녔다. 그리하여 14세 때 인근에서는 가장 뛰어난 상쇠 박학삼 밑에서 끝쇠를 치기 시작하면서부터 풍물굿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에 박학삼이 타계하자 부쇠를 치던 송주호가 상쇠를 치고 양순용이 부쇠를 치치만 송주호 스스로 상쇠를 양순용 선생님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풍물굿을 치지 않게 된다. 18세의 나이에 상쇠가 된 그는 본격적으로 상쇠에게 필요한 기능을 익히기 위하여 순창과 임실지역에서 뛰어난 연행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쇠들을 찾아다니며 쇠가락과 부포놀이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풍물굿을 배우러 다니다가 인근에 양순용의 뛰어난 기예가 소문나자 24, 25세때에는 임실군과 순창군의 걸궁패 상쇠를 하게 된다. 그리고 필봉마을 청년들에게 풍물굿을 가르치며 필봉굿은 체계를! 갖추어 가게 된고 그는 뛰어난 기예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필봉마을이 풍물굿의 체계와 기예를 갖추게 되자 이제는 '필봉농악단'이라는 이름으로 대외적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5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에서 '壯元'을 하게 되었다. 그후 1980년 필봉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필봉풍물굿 전반을 소개하는 발표회를 가졌다. 84년에는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과 함께 전국의 대학생들이 필봉마을로 풍물굿을 배우러 몰려오면서 필봉풍물굿은 이제 단순한 필봉마을의 풍물굿이 아닌 전국적인 풍물굿이 되었다. 이렇게 양순용 선생님은 필봉풍물굿의 대외적 활동과 전수에 대단한 애착을 보이면서 현재의 필봉풍물굿의 대외적 활동과 전수에 대단한 애착을 보이면서 현재의 필봉풍물굿을 유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다.

  1985년 남원군 보절면 금다리 호동마을로 이사하였지만 필봉마을에 있을 때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풍물굿을 배우기 위하여 찾아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물굿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져 마을에서 수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1994년에는 폐교된 학교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95년 12월, 1996년 1월, 2월 겨울방학 동안 120개팀 1500여 명, 1996년 6월, 7월, 8월 여름방학 동안 160개 단체 1700명이 풍물굿을 배우러 왔다. 그리고 1994년에는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 전수회관이 건립되어 일반인과 학생들이 필봉풍물굿을 배우러 오게 되어 1994년 37팀 800명, 1995년 40팀 1143명이 다녀갔으며, 1996년 1월 3팀 13명, 2월 2팀 16명 3월 2팀 23명, 4월 1팀 16명, 6월 1팀 10명, 7월 5팀 91명, 8월 2팀 71명 등 16개팀 230명이 풍물굿을 배우고 갔다. 양순용 선생님은 이렇게 필봉풍물굿 연해과 전수에 전념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95년 8월 55세에 타계하였다. 현재는 그의 아들 양진성이 상쇠를 이어받아 아버지의 뒤를 잊고 있다.

  이렇듯 필봉마을 사람들의 열의와 상쇠의 뛰어난 연행력은 마을 전체의 풍물굿 기예가 향상됨은 물론 풍부하고 다양한 형태의 풍물굿 연행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한 현상은 필봉마을뿐 아니라 진안중평마을 김봉렬의 경우에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개인의 지대한 노력으로 한 지역의 풍물굿이 소멸하지 않고 온전하게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필봉 굿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은 자료실에서 download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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