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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國寡民(소국과민) (55회)
 홍기성 
  | 2001·07·15 17:15 | 조회 : 2,741 |
제 80장
小國寡民 "될 수 있는 대로 나라의 크기를 작게하고 나라의 인구를 적게 하라!"
여기서 小는 작은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의 뜻으로 될수 있는 대로 나라의 사이즈를 작게 하라는 말입니다. 백성의 수를 줄여라!(Reduce the size and population)을 말합니다.
그러면 인민을 지배하는 체제 자체가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국가체제의 인민개입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사실은 노자철학이 중국에서 조차 환영 못받는 것이 중화의 대국주의의 반발이라고 합니다. 노자는 중국역사에 끊임없이 체제에 反하는 반란의 사상적 기저가 되는 것입니다.  노자가 말하는 것은 소국관입니다. 될수있는대로 나라를 작게하고, 民을 적게하라, 그렇게 되면 중국의 대제국주의가 깨진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지배자들은 노자를 좋아하지 않고 외면하였고, 노자는 반역의 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적으로 노자의 정치사상을 표현한 것이 "소국과민(小國寡民)"입니다. 이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라도는 전라민국, 경상도는 경상민국, 충청도...., 서울..., 강원.... 하면서 이럴바에야 모두 소국과민하면 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하자는 마당에 지금 노자의 소국과민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단군이래 우리의 정치사는 중앙집권과 분권의 투쟁사라고 합니다(인류의 정치사는 집권과 분권의 대결 역사이다).  이방원은 고려말기 분권화되었던 것을 중앙집권하자는 것이고, 지금 지방자치체를 하자는 것은 집권에서 분권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방자치제를 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나오고 있습니다.  분권만이 좋다고 말할수 없고 집권만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인간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분권과 집권의 항상 다이내믹이 인간 정치사의 전부라고 합니다. 그것이 항상 동시적입니다.
노자는 과도한 중앙집권체제를 막자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소국과민 사유집백지기이불용) "온갖 생활의 그릇이 있어도 쓸모가 없게 하라!" 열가지 백가지 그릇이 있어도 쓸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괜히 자동차를 남편이 사고 부인이 사고 자식이 사는데, 하나만 있어도 되는 것을 집안사람 모두가 산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많으냐는 것입니다.  노자는 쓸데없는 기물이 많이 있어도 쓸일이 없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노자는 근본적으로 문명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야 할것은  그러한 문명의 혜택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문명의 혜택을 안쓰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使民重死而不遠徙(사민중사이불원사) "백성들로 하여금 죽는 것을 중하게 여겨 멀리 이사다니지 않게 하라!" 백성이 죽음을 어렵게 여겨 멀리 이사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2~3년 사이에 이사를 열번이나 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사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모빌리티와 관계하는 것으로, 이 사회가 격동하면 격동할수록  이사를 자주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화번호부를 일년을 갖고 있기 힘들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많큼 격동하는 사회는 없다고 합니다. 일본, 미국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것 처럼 우리가 이사를 다니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다니느라 인생이 다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雖有舟輿 無所乘之(수유주여 무수승지)"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일이 없도록 해라"  쓸데없이 차타고 다니고, 배타고 비행기타고 다니면서 쓸데없이 돌아다니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그런것들이 있어도  탈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런식의 소비문화속에서 인민을 달달 볶는 것만이 경제발전이요, 잘사는 것으로 하는데 노자가 말하는 인간사회의 모습은 다릅니다.  유토피아를 노자는 말합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雖有甲兵 無所陳之(수유갑병 무소진지)" 노자의 가장 중요한 사상중 하나가 "不爭" "反戰" 사상입니다. 노자사상이 위대하다는 것은 좌익에서 말하는 평등사상(노자에서 물은 높은 곳은 깍고, 낮은 곳은 채운다)과 반전 사상이 있습니다. 서양의 좌익사상에 없는 인간관이 있으며, 도덕사상이 있고 그리고 자연에 대한 환경론에 대한 깊은 관심(eclogical concern : 환경론적 관심, 좌익사상이 결여한 노자의 심오한 자연주의) 이 있다고 합니다.
노자사상은 단순한  혁명사상이 아닙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기껏해야 서양의 Revolution(Revolutions are the mad inspration of history, 러시아 사월혁명의 주도자 토로츠키(1879~1940))을 말합니다. 트로츠기는  광적영감을 혁명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혁명의 의미는 평상적 의미로서 정부의 전복(overthow of the government)이라 하며, 정치적 리더쉽의 변화를 혁명이라 말한다면, 아무리 똑같은 놈들을 바꾸어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혁명이라고 젊은이들이 최류탄에 죽어 갔습니다.  우리 혁명이란 것은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러한 독재체제하에서 견딜수 없었던 삶속에서 그런것들을 삶의 변화를 정치변화로 요구했을 뿐이었습니다(혁명은 정치적 리더쉽의 변화만을 의미할 수 없다). 정치체제의 변화가 혁명은 아닙니다. 그러니깐 혁명 즉 동양사람의 혁명은 항상  天命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천명이란 것은 나의 몸으로 오는 것이고 나의 존재 나의 삶으로 오는 것이며 내가 살고 있는 역사로 오는 것입니다. 天命을 日新 又日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로 새롭게 새롭게 하는 것이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동양에서 革이라는 것은 가죽 혁자입니다. 옛날에 소를 잡아 가죽을 쌓아 놓는데, 가죽을 만들려면 가죽에 붙은 썩은 살들이 있는데 , 이것을 과감히 도려내어 가죽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가죽 혁자나 바꿀 혁자가 같은 이유이라고 합니다.  원래 혁이라는 것은 주역의 쾌상이라고 합니다. 兌(태)上과 離(리)下가 합쳐서 만들어진 쾌상입니다. 태상은 물을 의미하고 리상은 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쾌는 태상이 위에 있고 리상이 아래에 있어, 불이 타오르는 형상에 물을 붓는 형상입니다. 혁명의 에너르기가 타오르는데(리상) 물을 분다(태상)?!  물이 과거의 독재정권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은 위에서 물이 떨어져야 오래 탄다고 합니다. 마른장작은 금방 달아올라 쉽게 타버리지만 물이 있어야 오래 세게 탄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런것이 아이러니하다고 합니다. 불위에 물이 떨어져야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불이 더 세게 오래 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革자입니다. 그렇게 해서 水火相息(수화상식) 息은 끄게 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일으킨다는 뜻도 있습니다.계속 말하기를 二女同居(이녀동거) 두여자가 같이 동거하고 있으니 바뀐다는 뜻입니다. 어떤 모순되는 맑스가 말한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두 여자로 비유하여 맞지 않는 것이 같이 있으니깐, 뒤집어 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혁명이라는 것은 동양인이 생각하는것은 삶의 새로운 변화와 인식이 있는 것을 동양인들이 말하는 혁명이라고 합니다(혁명은 삶의 새로운 인식(New Awareness 이다. -도올-). 그렇기 때문에 천명을 끊임없이 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천명을 革하지 않는 정치의 변화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끊임없는 번잡한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 합니다. 근본적인 삶의 변화없이 정권의 변화라는 것은 아무의미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갑병 무소진지 )  갑옷이나 병기가 아무리 좋다해도 그것을 진을 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전사상을 말합니다. 전쟁을 할 건덕지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使人復結繩而用之 (사인복결승이용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끈을 매듭지어 쓰게 하라!" 결승이라는 것은 새끼를 꼳다는 것으로 최초의 문자형태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아주 원시적인 삶의 형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새끼를 썼던 시절로 돌아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21세기에 컴퓨터로 인하여 어마어마한 변화가 오는 줄 아는데, 문명의 잔화와 몸의 진화는 동일한 것이 없습니다(문명의 진화가 몸의 진화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내가 산다는 것은 내 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몸은 자연체라는 사실입니다(몸은 영원히 자연체이다).  이 자연체는 컴퓨터가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가 말하는 것은 새끼를 꼬는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가 와도 이것은 틀림없는 문제라고 합니다. 여기서 착각이 있으면 안된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문명을 거부하는 노자가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그 먹는 것을 달게 해주며, 그 입는 것을 아름답게 해주며, 그 사는 것을 편안하게 해주며, 그 풍속을 즐겁게 해주어라!"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 삶의 풍속이 즐거워야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술이 필요한가! 노자는 문명을 거부하지만 내가 여기서 빵을 탔다면, 맑스는 빵만을 준다지만 노자는 맑스와는 다르게 준다는 것입니다. 甘(감, 탈콤하게)하게 입는것을 아름답게 사는 것을 편안하게 풍속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노자는 문명을 거부하지만, 노자가 거부하는 문명은 기본적으로 삶을 해치는 문명에 대한 거부입니다(노자에게는 맑시스트들에게 결여된 심미적, 감성적 측면이 풍부하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해도 우리가 사는 삶은 이 네마디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락기속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 다음 하는 말이 隣國相望(린국상망) "이웃하는 나라들이 서로 바라보이는데"...... 그런데 隣國(리국)의 모습은 鷄犬之聲相聞 (계견지성상문) "꼬끼요쇨와 멍멍소리가 서로 들려도"라는 정도로 노자가 생각하는 나라의 크기는 동네수준인 것입니다. 그런정도로 사이즈가 작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매스컴이 들어오고 모든 것이 대형화되는 것 같지만 반면에 이러한 소국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자의 사상은 정확히 해석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개소리 닭소리가 들려도 서로 늙어 죽을때까지 왔다갔다 할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름답다! 어떤 의미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여기서 꼬끼요하고 저기서 꼬끼요하면 끝나는 것이라 합니다. 유토피아를 말한다고 합니다.
노자의 소국관을 가지고, 예를 들면 일본의 안도오 소오애키(에도 중기의 사상가, 의사 노자의 자연철학에 기초하여 "자연세"를 이상사회로 규정) 이런 사상가들은 농민들의 반란을, 농민들에 의한 농민들에 평등사회로, 사실은 농사짓는 사회에서는 무슨 국가가 필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안도오 소오애키 : 농민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제도를 불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조선조에 무순 이성계가 필요했느냐 말입니다. 그당시  사회에서 농민반란은 모두 노자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agrarian egalitarianism(농업주의적 평등사상)은 노자의 농업사회주의적인 평등사회를 말한다고 합니다. 원시공동사회의 평등적인 관계, 상당히 노자사상은 그런의미에서 프리미티하고 나이브한 옛날에 촌락의 어떠한 체제 즉 그들간에 서로 왔다갔다 할 필요없는 그러한 사회를 유토피아를 꿈꿔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오늘날 그대로 우리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화했고 지금은 정보사회로 진화하고 있지만, 문명진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도올 김용옥은 지금의 사회는 점점 더 소공동체인 분활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노자의 소국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자기네끼리 살고, 저기서 자기네끼리 살면서 서로 꼬끼요 소리가 들여도 왕래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과도한 중앙집권의 체제에 대한 반발을 노자는 이러한 모습으로 표현했고, 이것이 중국사상이, 노자사상이 제80장이 중국인들의 유토피아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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