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분류 탈춤 이야기 | 풍물 이야기 | 문화 이야기 | 고전 이야기 |
글 내용 보기
大人과 憂患(49회)
 홍기성 
  | 2001·07·15 17:12 | 조회 : 2,661 |
서양철학이 희랍에서부터  추구한 것이 결국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가? 우주가 무엇인가? 하는 지식의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 동양사람들은 질문이 다릅니다. 동양에는 철학이 없다고들 하는데, 철학이란 삶(삶의 행동과 관념)에 대한 반추(반성)이고 이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철학이 있다고 합니다. 
서양인들의 질문이  "이 세계가 무엇인가?"라면 동양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것인가?"라고 합니다. 삶에 대한 문제가 바로 동양인들의 관심사입니다.  물론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들중에도 삶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탈레스부터 서양철학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탈레스는 arche(원질)이라는 이 우주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를 추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언제 변하냐 하면 희랍철학이 소피스트들이라는 궤변론자들이 나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궤변론자들은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의 사람들로서 인생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소피스트사람들은 장똘뱅이였고 항상 말이 많았던 시장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유명한 소피스트중 한 사람이 소크라데스인데 소크라테스는 우주의 문제에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여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BC490~BC420, 소크라데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세계의 진리는 개인의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으로 객관적진리의 가능성을 부정했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중심으로 우주를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인간 삶으로 관심을 돌렸다고 합니다.  "행복은 인간의 최종적 선이다" 인간이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이사람들이 추구한 행복(eudaimonia happiness, 행복 : 소피스트들이 추구한 문제 행복은 인간을 휘한 최종의 실천적 善이다)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궤변론자들은 "우주가 알게  무엇이냐!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복이다" 이처럼 행복의 문제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소피스트종에 한사람이 소크라테스입니다.  여기서 플라톤이라는제자가 나왔고 플라톤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가 나왔습니다. 이것이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관심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어떤 대상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인간의 문제로 옮아갔다고 하지만은 결국 이들도 인간의 삶에 대한 지적인(행복과 지식은 불가분의 관계다. 행복은 정당한 앎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추구입니다.  즉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양인들은 근본적으로 구체적인 삶에 절실한, 산다는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당장 수신(수신은 동양철학전반의 구극적 과제상황이다)의 문제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모든 것이 수신으로 수렴됩니다.  항상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양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식에 대한 추구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서양은 지식에 대한 추구로 인하여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어 인간의 삶의 문제는 종교로 가고 과학은 철저하게 인간의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로 갔습니다. 
과연 이 세계가 객관적으로 무엇이냐?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느냐?  내가 어떻게 구성되고 내 세포가 어떻고... 무슨 합성이고...등등 이러한 과학적 지식이 아무리 있다해도 삶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위대한 과학자들도 병이들고, 사회적으로 공헌을 하지 못하고 가끔 사회적 발언을 하는데 엉뚱하고 미친소리들을 한다고 합니다.  결국은 전혀 과학에 무엇을 성취했다는 것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이 객관적 지식의 세계로 떨어져 버리고 인간의 삶의 문제를 도외시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고 종교라는 것은 불행하게도 초월적 인격신으로 치우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리가 서양문명의 특징이자 최대의비극이라고 합니다. 과학을 만들었지만 근본적으로 지식의 문제와 더불어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의 문제와 실천의 문제가 서양철학이 동양철학에 맥을 못춘다고 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말하는 도덕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도덕경의 문제이고, 그래서 동양인들은 종교와 과학이 분리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동양철학에서는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총체적인 삶의 도덕을 추구했다).  그래서 과학이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삶의 기술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면에서는 삶에 밀착된 형태로 종교적 관심이 심화되었던 것입니다. 동양사람이 추구한 것중 학문(學問)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학문이란 중용에서 나온말로 "君子尊德性而道問學 博學之 審問之(중용 27장)" 학문이란 묻는 것입니다. 학문이란 물어야 배울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데 왜 사느냐,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양인들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爲聖之學 성인이 되기 위한 배움이라고 합니다. 배운다라는 것은 반드시 성인이 되기 위한 것이고 성인이 되지 못하면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동양인들은 목표를 가지고 항상 자기가 성인이라 생각하며 사는 것이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되지 않으면 학문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천자문을 배울 때부터  성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냥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라는 것이 아니라, 배운다는것은 반드시 성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은 聖人之學이고 爲己之學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위한 배움이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인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냐? 성인의 특징은 憂患(우환)이라 합니다. 나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근심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근세 서양의 실존주의에서는 앙스트((Angst, Anxiety, Dread  :   불안) 키엘케골(1813~1855)의 근본개념, 기독교의 원죄개념을 실존철학화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이 하이데거("인간은 불안한 실존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1889~1976))의 실존개념으로 간다고 합니다. 서양은 20세기초.말부터 비로소 인간삶의 문제를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앙스트(불안)라는 것이 무엇이냐? pear(공포)와 대칭되는 말로, 공포는 구체적 대상이 있고 불안은 귀제적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막연한 불안입니다.  애들이 잘 크면서도 막연한 불안이 있는것 처럼 이러한 불안한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불안을 "심파이스루"라고 합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성인의 기본은 "小體를 버리고 大體"(-맹자-)로 나간다는것입니다.  즉 큰몸에 근심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역의 철학적 논저인 계사(주역의 십익중의 하나로 위대한 우주관을 말하는 철학서)中에 "아마도 易을 지은 사람은 우환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환이 있어 이러한 위대한 책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맹자의 "生於憂患而死於安樂"이란 말은 인간은 우환속에서 살아야 비로소 안락속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인이 우환을 만든다 -맹자- "라는 말은 우환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그래서 주역계사에서 말하기를 "천지는 만물을 고동치게 만들지만 성인과 같이 고민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天地不仁"이라는 말은 유가에서나 도가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항상 근심한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동양인들의 가장 큰 관심이라는 것은 大人이라는 것입니다. 나라에 대한 근심걱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근심 걱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東學에도 동경대전이라는 것중 포덕문에 "사람으로 말하면 군자가 되는 것이고, 학문으로 말하면 도덕을 이루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덕이란 도는 천도요, 덕은 천덕이다. 그래서 그 도를 맑히고  덕을 쌓고, 그렇게 해서 군자를 이루고 지극한 성인이 되는 것이다(故人成君子 學成道德 道則天道 德則天德 明其道而修其德 故 乃成君子 至於至聖 )"라고 말했습니다.  동학사상은 근세에 가장 중요한 우리 민중의 운동의 철학사상속에서도  인간의 목표는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은 동학은 별거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서학에 대해 동학은, 서학은 천주님 밑에서 노예가 되는 것이고, 동학은 내가 군자가 되어 지극한 성인이 되는 것이 동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근세정신의 발로라고 합니다.
산다고 하는 것 성인이라는 것은 별거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우환이 도덕의 근원이 된다고 합니다. 막연한 거대한 세계의 근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맹자는 "天視自我民視하고 天聽自我民聽이라 (천시자아민시 천청자아민청 : 하늘은 백성들이 보는 것을 따라보고, 하늘은 백성이 듣는것을 따라 듣는다)하여 대인들은 항상 하늘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천명을 내몸속에서 새로 日新 又日新(-대학-)하는 사람이 곧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즉 천명을 매일매일 새로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예들들면 성경에 로마서 12장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들 권하노니,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이니라.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쯧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라" 성격에서도 마찬가지로 예배라는 것은 새벽에 가서 교회가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몸을 하나의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내 천명을 새로 받는것, 몸을 통해서 하나님에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항상 내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말씀이냐는 것입니다. 항상 내자신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인의 길이요, 그래서 항상 백성들이 보는 것을 따라보고 듣는 것을 따라 듣는다는 것입니다.

     
번호       제 목 이름 작성일 조회
  중앙일보 `우리학문의 새길`中 두번째글 `나안에 우주의 생태가 있다.`
 홍기성
01·07·15 2468
  愛民과 無知(46회)
 홍기성
01·07·15 3346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자동로그인
 
CopyRight (c) 충북대 민속연구회, All Right Reserved.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산48번지 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36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