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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一生水와 太極(36회)
 홍기성 
  | 2001·07·15 17:01 | 조회 : 3,913 |
上善若水장은 노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장입니다.  그런데 죽간에는 상선약수가 없고 물에 대한 어떠한 메타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의 "물의 비유"는 노자라는 서물의 고층대에 속하지 않다고 여겼고, 물과 道의 상징적 연관은 어떠한 "물의 철학"의 학파의 사상과 노자가 결합함으로써 전국시대후기에 형성된것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노자는 마왕태 백서와 과점 죽간이 있는데, 죽간은 갑.을.병의 3세트의 노자속에서  그 중 병이라는 죽간의 끝부분에 太一生水라는 노자아닌 노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의 성립시기는 대략 BC 4세기경에 성립된 것이라 합니다. 이미 중국에는 불교가 들어오기전 태일생수라는 어마어마한 우주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는 태일생수의 우리말 해석입니다.

"태일은 물을 낳는다. 생하여진 물은 생하는 태일을 오히려 도운다. 그리하여 하늘을 이룬다. 하늘 또한 자기를 생한 태일을 오히려 도운다. 그리하여 땅을 이룬다. 이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도와서 신명을 이룬다. 신과 명이 다시 서로 도와서 음양을 이룬다. 음과 양이 다시 서로 도와서 네 계절을 이룬다. 춘.하와 추.동이 다시 서로 도와서 차거움과 더움을 이룬다. 차거움과 더움이 다시 서로 도와서 습함과 건조함을 이룬다. 습함과 건조함이 다시 서로 도와서 한 해를 이루고 이로써 우주의 발생이 종료된다."

宇宙론(Cosmology)은 인간이 생각할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형이상학적 체계라고 합니다.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냐의 문제라고 합니다. 태일생수는 바로 이러한 우주가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한 우주발생론(Cosmology)입니다.
중국에는 주렴계의 태극도설(AC11세기)이전에  우주발생론에 대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500년전에 태극도설보다 위대한 우주론인 태일생수(BC4세기)가 죽간병조에 붙어있었다는 것입니다.
朱子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말할수 있는 것이 理와 氣라고 합니다. 주자는 인간의 질서에 우주의 질서를 세울려고 했습니다. AC 11세기 주렴계(1017~1073 宋초의 대유학자로서 신유학을 출박시켰다. 도학의 祖)가 태극도를 그리고, 설명을 붙인 태극도설에서 주자는 이와 기로서 인간질서를 세울려고 했습니다. 우리 조선문명도 퇴계가 벌인 이기논쟁도 주렴계의 태극도설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태극도설이 조선문명 전체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만큼 태극도설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無極
                       
                      太極
                     

        動                             靜

        陽                             陰


           水    火    木    金     土

                    四時
위 도식은 태극도의 간단한 나열입니다. 편집상 기호를 집어넣지 못했는데, 민연홈페이지 자료실 노자주라는 파일속에 자세하게 그려놓았습니다.
그러면 왜 태극도설에서 이기라는 것이 나왔을까? 그것이 어떤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퇴계와 기고봉의 이기논쟁은 정추만이 그린 천명도에서, 七情發於氣(칠정발어기)를 七情氣之發(칠정기지발)로 그리고 四端發於理(사단발어이)를 四端理之發(사단이지발)로 고쳤다고 합니다. 왜 이러한 논쟁이 있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태극도설의 앞글을 소개하면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蔭,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무극이태극. 태극동이생양, 동극이정. 정이생음, 정극복동. 일동일양, 호위기근. ....) 여기서 極(극)이라 함은 끝(limitation)을 나타냅니다.  무극이 태극이란 말을 왜 했을까?  우리는 [장자] 천하편에 나오는 "至大無外 謂之大一.  至小無內 謂之小一"(지대무외 위지대일. 지소무내, 위지소일)에서 가장 큰 것은 밖이 없다(至大無外)고 말한 것은 스티브 호킹이 아무리 큰우주의 모형을 이야기해도 모형이 있다는 것은 밖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다른말로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한정되었다라는 것입니다. 至小無內 가장 작은 것은 안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소립자를 말해도 그 소립자는 내부구조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것은 안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가장 작은 소립자의 세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至小나 至大는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의 질서가 소립자의 세계와 통한다라는 것입니다. 즉 소립자.우주의 세계가 같은 질서라고 합니다.  논리적으로 至大無外(지대무외) 至小無內(지소무외)는 수학적 세계에서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밖이 없는 우주와 안이 없는 소립자의 세계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밖이 없는 極(극)을 생각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사실 극이 있다라는 것은 밖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太極은 진정한 의미로 無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우주의 가장 큰 것이 태극이라는 것이고 그 태극은 진정으로 끝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은 논리적으로 무극이 맞는다라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무한정적으로 전제하면 무극이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시공간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시공간의 구현체로서 최대치가 태극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태극이 움직여서 陽을 낳고 그 움직임이 極에 달하면 靜이 되고 그 靜한 것이 陰을 낳는다. 그 靜한 것이 極에 도달하면 動이 된다"고 합니다. 靜과 動이라는 것은 같은 것이고 靜이라는 것은 動之靜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한번 움직이고 고요해지는 것이 서로 뿌리가 된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세계가 본질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주역]에서도  一陰一陽之謂道라하여 일양일음하는 것이 道라고 합니다. 이것을 한개의 음과 한개의 도로 번역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주발생에 관계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서로 뿌리가 되는 互爲其根의 변화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자의 관심은 태극도설에 있어 "태극"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자는 우주에 있어서 태극이라는 것은 양과 음의 변화하는 세계의 이전의 어떤 본질적인 세계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一動一靜하는 것은 변화하는 氣세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理와 氣, 主氣論 主理論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理라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원리, 이념, 이론, 이치라는 원리적 개념을 쓴다고 합니다. 氣라는 것은  기운, 기력, 공기, 전기등... 기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에너지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지금 氣라는 것은 음양이 있느냐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은 당연히 있다라는 것입니다. 기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時空(시공)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자에게 있어 태극은 理이고 일동일정하는 변화하는 세계는 氣라고 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理와 氣의 개념이 나오고 근세철학이 여기서부터 출발한다고 합니다. 주자는 주렴계의 태극도설이라는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엮을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자는, 쉽게 생각한다면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그러한 상대성원리 같은 理가 아니라고 합니다. 주자에게 있어 理는 인간세상을 지배하는 도덕적원리(Moral Principle)라고 하고, 氣라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동정이 있고 음양이 있는  감정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그러데 이러한 理가 우리나라 조선문명에 왜 문제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四端(사단 :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가지 본성)은 仁 義 禮 智라고 합니다. 맹자는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부끄러워할 수)惡之心, 義之端也. 辭(말씀사)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羞(부끄러워할 수)讓(사양할 양)>라고 하여 인, 의, 예, 지를 측은, 수오, 사양, 시비라고 했습니다. 측은하다라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우물가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구해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仁이라는 것입니다. 七情(칠정 : 사람의 일곱가지 감정)이란 희노애락을 말합니다. [중용]에서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희노애락지미발위지중, 발이개중절위지화)지라 하여, 인간의 감정이 발현되지 않는 간난아기와 같은 상태의 마음이 中이라 하고,  희노애락이 발하여 모두 절도(節 :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디마디의 굴곡이 있다라는 것을 말함)에 들어 맞는 것이 和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희노애락이 그 상황상황  절도에 들어맞는 것이 和입니다. "中之者 天下之大本也, 和之者 天下之達道也." 中은 大本이고 和는 達道라고 합니다.
천명도에서 四端(사단)은 發於理(발어이)라 하여 원초적 태극의 세계를 말하고, 七情(칠정)은 發於氣라고 하여 희노애락은 실질적인 내몸에서 나오는 것으로 희노애락은 충족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합니다.  이쁜 여자를 보면 흑심이 생기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다는 내몸에서 나오는 것들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의미로 주자는 칠정을 억제하고, 사단을 기르자는 것입니다. 사단을 다른말로 한다면 天理(천리 : 理)라 하고 칠정을 人慾(인욕 : 氣,)이라하여 인간의 욕망을 나타냅니다.  주리론의 제일 명제는 存天理, 去人慾입니다. 천리로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기론자들은 천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욕이 제대로 발현되는 것이 그것이 천리라는 것입니다. 천리를 빙자하여 인욕이 억눌러지는냐 이것입니다. 주기론자들은 인간의 욕망이란 어짜피 누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一動一靜의 세계와 太極의 세계는 분리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자의 태극의 세계는 절대불변이고, 이것이 함부로 움직여, 양이 되고 정하여 음이 되는 것은, 주기론적 입장으로 태극도설의 태극자체에 動性을 부여하면은 태극이 순수한 理가 될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즉 주리론자들은 태극에 움직임을 부여할수 없고, 태극자체가 동하면 그것은 불순해진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렴계의 태극도설 자체를 그대로 해석한다면 태극 자체가 움직이면 태극이 음양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애매한 문제를 주자는 태극에는 動의 理만 있다고 합니다. 즉 動之理라고 합니다. 주자는 태극자체에 운동성을 줄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운동성은 곧 氣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 말을 다른말로 하면 주리론은 인간의 욕망이 치솟아 오른다면, 욕망을 억제하는 도덕적 원리라는 것은 動과 靜의 지배를 받지 않는 순수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가 動靜하면 우리는 도덕적 원리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자는 주리론자입니다.
주기론자들은 이러한 이원론적인 것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20세기는 이러한 주기론적 패러다임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왜 조선문명이 이기론 논쟁을 벌였는가 하는 것은 理와 氣의 관점속에 인간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인간상이 결정되고 가치관이 결정되고 국가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피눈물 나는 논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理와 氣는 조선왕조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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