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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善若水와 세례요한(33회)
 홍기성 
  | 2001·07·15 17:00 | 조회 : 3,173 |
8장을 하면서 上善若水(상선약수)의 장이 노자사상을 대변할 정도의 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물이라는 메타포가 도의 모습을 형용하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上善若水에서 상은 '제일'이라는 뜻이고 선은 그냥 '좋다'라는 뜻으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라고 물이라고 하지 않고 같다라는 말을 쓰면서 道를 물(水)에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상선을 플라톤의 最上善으로 개념화 시켜서 번역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물의 특성은  자기를 항상 낯추면서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불기둥으로 세례를 주느니, 불과 같은 성령의 힘으로....등등 불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자는 물과 같은 것이라 합니다. 불은 炎上(불꽃 염)이고 물은 潤下(윤택할 윤)입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機於道.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가 물자체가 아니라 물에 가깝다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물과 관련하여 세례요한에 관련된 물에 대해 이야기 할려합니다. 기독교는 불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문명은 중동문명권이고 사막문명권입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막이라는 환경이 불의 종교를 만들었고, 불에 대한 메타포가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불의 이미지가 강하다면 노자는 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에도 물에 대한 메타포가 있다고 합니다. 세례(Buptism )는 우리나라의 호남지방의 씻김굿과 같은 것이라 합니다. 세례라는 것은 요한이전에도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했지만, 요한의 세례라는 세례의 행위는  유대인에게 없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세례는 죄를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가 요단강에서 이루어지는데 유대인에게 요단강은 애굽(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기위해 넘어야할 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단강은 유대인에게 구원의 상징으로 비추어진다고 합니다.  "가든 오브 에던(역사적 예수)의 영화는 예수가 실존(역사적)인물이었다면 예수는 어떤 역사적 인물이었나?에 대해 최근 예수를 해석한 영화중 가장 최고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가든 오브 에던"의 첫장면은 목동이 어느 동굴에서 사해문서(The dead sea Scrolls)를 발견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중동문헌은 파피루스와 양피그리고 자우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사해문서는 양피지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보존상태는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서나 가능한 것이라 합니다.  사해문서는 에스터를 제외한 구약성경의 모든 프라그먼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구약은 AD 10세기경 성립된것으로 신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있고, 유대인들에게는 구약이라는 것이 없고 다만 유대인들이 말하는 타나크(율법서, 성문서, 예언서)만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신학이 말하는 구약은 The Masoretic text AD 6~10세기에 걸쳐 바벨로니아와 팔레스틴에 산재하던 탈무드학원의 유대인 학자들이 재구성한 성경이라고 하고, 현재 구약성경의 정통판본은 이 마소릭 텍스트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마소릭 텍스트를 正經으로 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구약이라는 것이 오리지날한 예수시대부터의 구약은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시대부터 우리가 말하는 구약은 Oral tradition(口傳)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것이 쓰여진 것이 우리가 신학에서 말하는 Septuagint라는 것으로(LXX로 기호화됨) 유대인 12부족에서 6명씩 나와 번역한 70인의 역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를 모르는 에굽(이집트)의 동포를 위해 희브리어로 번역한 것으로 일렉산드리아에서 성립(기원전 2.3세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약과는  다른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셉츄아젠트 구약과 마소리 텍스트의 구약은 그 체제와 내용이 다르다고 합니다. 사해문서가 나온 지역을 콤란이라고 부르는데, 예수시대까지 존속되었던 유대인 교파들 중 특수한 신앙집단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콤란 코뮤니티라고 부릅니다. 사해문서는 이들의 생활에 대한 많은 자료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콤란 코뮤니티는 거의 BC 2~3세기에서 AD68년에 멸망했다고 합니다. AD68년은 예수이후의 새로운 유대역사가 로마와 관계를 갖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콤란 코뮤니티의 성격을 에센에파라고 하는데, 에센에파는 콤란공동체를 규정하는  한 유대인종파로서, 종말론적 신앙과, 엄격하게 고립된 성찬의식의 생활이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예수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으로 보면 안된다라고 합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는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여(우리나라의 일제시대에 총독을 두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총독을 두었던 시대라고 합니다. 빌라도 총독이 바로 예수를 재판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총독이 빌라도 총독으로 임기를 마치고 로마에 돌아가 의회에서 대화를 나누던중 "로마에 기독교들이 들끓어 골치가 아프다(이 당시 기독교인들도 로마로 진출하여 지하조직으로 번창하였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빌라도 총독도 그 사람을 아느냐?"   "........모르겠는데!"라고 빌라도 총독이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 같은 많은 사람들을 재판하여 누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는 중요한 네개의 파가 있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율법의 구전을 인정하고  종말, 부활을 믿는 서기관 그룹에서 발생한 진보적 좌파), 에센에파, 젤로(The Zealots : 로마인의 축출을 위해 조직된 테러단, 시카리오이라는 칼잽이들), The Sadducees(사두새인 : 율법의 구전을 인정하지 않고, 종말 부활 천당을 거부하는 성전 중심의 늙은 제사장 계급의 극보수적 우파로 영혼불멸을 인정하지 않는 굉장히 보수적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시대가 타락하고 부정되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되야 하는 어떠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제사장에 내려오는 전통만을 고수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의 전기를 보면 바리새인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뱀들아 ! 독사의 새끼들아 !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는냐?(마태 23:)"라고 예수가 말했습니다.  예수는 바리새인은 율법에 절은 놈들이고 가식과 허례속에 있지말라고 하지만, 사도바울도 자신을 규정할 때, 항상 명료하게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내가(사도바울) 팔일만에 할레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배니파의 자파요, 희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사도바울 빌립보서 3:5)"예수가 항상 비판하는 바리새인은, 예수시대 당대의 바리새인은 매우 리벌한 사람들이고 예수가 받아들이는 긴박한 천국의 도래가 왔다는 무엇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종말과 부활 사후세계를 받아들였고, 유대교 장로들의 율법의 오랄 드레디션(구전)의 진보적 해석을 모두 받아들였지만 율법은 율법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바리새인이 유대교의 전통이요,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을 비판하고 부정한 예수 또한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서신학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바리새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라 합니다. 예수는 율법을 부정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장-"
바리새인이 인정하는 것을 예수는 모두 인정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바리새인이 형식주의에 빠지는 것을 염려한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율법주의와 복음주의를 나중에 사도바울이 이원화시켰다고 합니다(율법주의와 복음주의를 대립시컨것은 후대 사도바울의 헬리 철학적 구조속에서 였다). 그러나 예수의 원래적 프레임은  율법주의와 복음주의의 이원적 구조가 아니라 합니다. 
그리고 유대교파 중 에센네파가 있는데, 이들은 "하늘에서 곧 재림이 온다"라는 종말론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매우 엄격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에센네파의 콤란 코뮤니티에서는 엄격한 수도 생활과, 지도자에 따른 매우 복잡한 성찬의식인 예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the son of light라 하여 쿰란 공동체인을 지칭하는 말로, 최후의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을 빛의 자식들이다 그래서 종말이 오면 우리만 구원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엣세네파의 혁신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엣세네파의 종말론을 받아들였지만 구원이 참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세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구원의 상징인 요단강에서 뭇사람들에게 회개하라! 곧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외치면서 식민지(로마에 의해 지배)에 절망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에게 와라!"하면서 물에 첨벙 빠뜨리는 것으로 모든 죄가 그순간 씻어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아주 혁명적이었다고 합니다. 엄격한 수도생활로 이룰수 있는 구원을 요단강에서 물에 첨벙하고 빠뜨리는 순간 죄가 사하여지고 새사람 새로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인도에서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 해탈의 경지는 몇 억만겁년을 수도해도 모자랄 판이다라는 것을 중국이 불교를 자기것으로 만들면서 "선은 윤회의 부정이요 돈오(순간의 깨달음)의 실현이다"라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물에 첨벙 들어가는 순간 '너는 새사람이고 새롭다 '라고 한것은 당대에 엄청난 메세지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겠느냐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중 예수도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는 세례요한의 제자라고 합니다.  예수는 세례요한의 성공하는 것을 보고, 희망과 성공가능성을 보았고 저 에너지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의 제자들이 이러한 것들을 기록할 때, 난감하다는 것입니다. 예수중심의 역사를 써야 되는데 세례요한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복음서들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 나는(세례요한)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매을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정령과 불로써 너희에게 세례를 줄것이다 -누가 3:16" 그리고 누가 3:21장에서 누가복음의 기자는 예수의 세례가 세례요한이 옥에 갇힌 이후의 사건으로 기록하여 예수의 세례는 주체가 없는 사건이 된다고 합니다.  현재의 여러 복음서들은 예수쪽에서 기록한 입장이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야 말로 예수시대에 가장 탁월한 예수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혁명은 이미 세례요한이 시작한 것이라 합니다. 이것을 예수는 새로운 차원으로 정신혁명으로 유대민족을 이끌어 갔다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엣세네파의 혁시적인 지도자였고, 역사적 예수는 바리새파의 혁신적 지도자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세례요한과 관련하여 물을 이야기 하는데 노자의 上善若水장은 세례요한의 물의 의미를 포괄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의 물과 노자의 물의 이미지를 잘 종합하여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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