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분류 탈춤 이야기 | 풍물 이야기 | 문화 이야기 | 고전 이야기 |
글 내용 보기
20회
 홍기성 
  | 2001·07·15 16:52 | 조회 : 5,426 |
노자는 성인을 위한 철학이라고 합니다. 즉 治者를 위한 철학이라고 합니다. 노자는 2500년전에 쓰여진 것으로 일부에게 독점된 학문이라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지식사회에서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도올 김용옥이 노자를 대중에게 강의를 하지만 노자가 만들어진 시기에서는 이런것이 가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392년에 고려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조선왕조를 건국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조선초기 역사는 이방원이가 고려의 호족의 사병을 깨나가는 과정이었고 세종에 와서야 비로소 조선왕조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매스미디어가 없던 시대에 조선의 건국이라는 사실을 지방구석구석 알리가 없고, 조선왕조의 권력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통치의 수단으로 백성들에게 언문을 만들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려고 했던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이런 조선왕조의 권력기반을 만드는 수단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 오백년은 고려와 다른 새로운 이념인 유교질서가 구현되고 실현된 시기라고 합니다. 1945년 대한민국을 건국했지만 아직도 오백년의 유교관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가 사는 지금도 아직 조선왕조의 연속성상에 있다고 합니다.
노자 철학은 제왕들의 치세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조직사회는 많은 리더들이 있고 노자의 철학은 그러한 리더를 위한 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天地不仁이 聖人不仁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20세기 논쟁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천지불인의 세계는 sein의 세계 즉 사실(존재)의 세계, 자연적 세계입니다. 성인불인은 sollen의 세계 즉 당위의 세계라고 합니다. 사실의 세계는 '~이다'로 말할 수 있으며, 당위의 세계는 '~해야만 한다'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근세의 서양의 모든 학문은 이런 사실의 세계가 당위의 세계와의 단절을 말합니다. 물리학적 사실속에서  이래야만 한다는 당위의 도덕적 문제를 끄집어 내야 한다는 것이 바로 21세기에 주어진 과제라고 합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인간도 살아가면서 그런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도덕성을 찾아 내야 한다고 합니다. 물리적 사실의 세계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자인이 졸렌이고 졸렌이 자인이라고 합니다. 물리적 사실이 바로 인간의 도덕적 가치가 될수 있고, 인간의 도덕적 가치는 물리적 사실이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과학은 궁극적으로 사실과 가치의 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연과 가치가 융합되어야 하는것이 21세기에 주어진 과제라고 도올 김용옥은 말합니다.
제 5장에 허라는 문제가 다시 나오는데, 4장에서 왕필의 주석을 보면 "한 집안을 다스릴 수 있는 역략의 소유자는 그 집안을 온전히 다스릴 수 없다.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는 그 나라를 온전히 이룩할 수가 없다. 있는 힘을 다하여 무거운 것을 든다는 것은 결코 쓰임이 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말하면서 수신을 끝내야 제가를 하고 그다음 치국을 해야 한다는 식의 시간적 단계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수신이 평천하까지 퍼저나가는 것을 말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고 평천하로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속에 수신은 영원한 과제로 내몸만을 다스리는 수신이 아니라 평천하라는 보편이 깔린 평천하라는 것입니다. 내몸과 내나라라는 국수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라 평천하라는 보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위대한 단군조상이 어쩌구 저쩌구....가 아니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유대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버림으로서 보편주의를 회득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정신은 바로 이러한 보편주의라고 합니다. 왕필의 주는 한 집안을 다스릴줄 아는 사람은  그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사람에게는 집안만을 다스릴수 있는 역량만 있기 때문에 허가 없다고 합니다. 나라를 다스릴줄 아는 사람만이 집안을 다스릴때 그사람은 허를 가지고 집안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관료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역량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니 고개를 옆으로 돌릴줄 모르고 복지부동하는 것이라 합니다. 즉 허가 없어 다른 것을 볼수 있는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자기 역량에 맞추어 그것만을 유지할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왕필은 주는 마지막으로 "窮力擧重, 不能爲用. "힘을 다하여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역도선수가 300kg을 들면 그사람은 100kg을 들어야 허가 있다고 합니다. 근대 올림픽 정신은 "더빨리 높이 그리고 강하게 "라고 합니다. 이런 올림픽 정신이 만든 지금의 상황은 소수정예에게 스포츠가 독점된상태라고 합니다. 스포츠는 더이상 경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스포츠의 잘못된 경쟁주의를 가지고 우리는 20세기를 살아왔다고 합니다. 노자적으로 다시 올림픽 정신을 말하면 "덜 빨리 조금 낮게 그리고 너무세지 않게"가 되어야 허를 갖는 다고 합니다. 극단적 육체의 단련으로 세우는 기록은 우리 보통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5장 내용중 "하늘과 땅 사이는 꼭 풀무와 같다. 속은 텅비었는데 찌부러지지 아니하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내뿜는다." 는 구절이 있습니다. 풀무는 복동식 풀무로서 단동식 풀무는 한방향으로 밀때만 공기가 불어나오는데 복동식은 밀고 잡아당길때도 모두 공기를 불어나오게 할수 있다고 합니다. 풀무처럼 속이 비어도 찌부러들지 않고  피스톤이 밀때 공기가 나오면서 반대편은 다시 빈것 처럼 허를 간직하고  다시 잡아 당길때도 마찬가지로 반대편은 허를 가지면서 공기를 불어낸다는 말은 도는 항상 허를 가져 그것을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왕필주에는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네. 그 속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로 쓰여져있고 백서에는 "많이 들으면 자주 궁해지네. 그속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라고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노자가 내려온 것을 보면 여러 계보가 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다 맞다고 할수 있다고 합니다.  이말들은 문장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 일상생활속에서도 잘 느낄수 있다고 합니다. 말이 많아지면 궁색하질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데 내가 중심에 서지 못하고서 이말 저말을 들으면 우왕자왕할때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

     
번호       제 목 이름 작성일 조회
  谷神不死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21회)
 홍기성
01·07·15 3425
  제 5장 (19회)
 홍기성
01·07·15 3001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자동로그인
 
CopyRight (c) 충북대 민속연구회, All Right Reserved.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산48번지 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36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