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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종교의 화해, 지식과 삶의 화해(2회)
 홍기성 
| 2001·07·15 16:39 | 조회 : 3,050 |
EBS 오후 10시 40분 방송 (도올 김용옥이 말하는 21세기와 노자)

오늘의 주제는 종교와 지식과 삶에 화해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역사에 있어 모든 전쟁은 종교와의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니체는 1900년에 죽으면서 신은 죽었다고 했지만(신이라는 것 때문에 인류가 살육을 하는 것에 대해서 니체는 20세기에 들어서 신의 사망선고를 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에 와서 더욱더 종교는 더욱 뿌리 깊게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일반적 통념으로 "믿음"이라고 하는데, 이 "믿음"으로 종교를 설명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앙인이 뙈약빛속에 얼음조각이 녹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면, 그사람은 얼음조각이 절대로 햇빛아래 녹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믿지만, 실제로 햇빛아래 얼음은 녹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확률적 대답으로서 우리에게는 얼음이 녹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사실이 우리에게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서 믿음이 곧 종교가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결론적으로 삶의 의미다.삶에 기쁨을 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딸이 인생의 전부이자 의미이면 그아버지의 신앙의 대상은 즉 종교는 딸이라 합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종교적 대상으로 삶의 의미를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이라 합니다. 이렇듯 종교는 인간삶의 의미자 기쁨으로 생각한다면  종교간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와 종교사이에는 이러한 보편적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보편주의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종교문화를 보면 세계 유레없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그 종교들 모든 특성이 상당히 극한 보수적 경향성을 띤다는 것입니다. 실상 우리 가족(처가 시가)만 해도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점은 없습니다. 장인어른(천주교)이 우리집에 십자가상을 걸어 놓으셨는데, 나는(종교가 없음. 특히 서양귀신을 싫어함) 그것을 부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장인어른에게 그것을 떼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장인어른의 권위를 부정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장인어른이 교직생활을 하면서 건전한 천주교의 금욕생활로 집안을 일으켰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아직까지 결혼한 자식의 뒤를 봐주시고 있습니다. 사위도 자식이라고 부자지간에 位(위)가 있습니다. 내가 그 십자가상을 치울수는 없습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장인이 살아온 삶을 내가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은 말합니다. 가족내에 다양한 종교가 존재해도 아무런 큰 문제가 없는 것은 유교적 합리주의가 우리 삶속에, 가족사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교란 다른 종교처럼 교리가 있고 제도화된 형태가 없다고 합니다. 즉 가족이라는 곳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조오백년의 유교문명이 우리 삶속에 깊게 침투해 다양한 종교가 존재해도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화제로 20세기 지식이 삶에 우위에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지식과 삶이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의 대학 시절만해도 지식의 덩어리는 나의 저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무지를 벗어나기 위해 정말로 무식하게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공부란, 그 학문을 함에 있어 매우 지루한 과정이고 고도의 집중을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을 지나면 어떤 기쁨(식색)보다 더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한 말중 섹스하기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주변을 보면 온통 자극과 쾌락이 만연하는 이속에서 젊은이들이 자기처럼 무지막지하게 공부할수 있는 분위기가 전혀 형성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부의 그 지루한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순간의 쾌락이 주어지는(물론 힙합을 익히는 과정도 공부라 합니다. 그어려운 춤을 익히는것도 보통이 아니라 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학문처럼 그 과정이 지루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순간순간 쾌락을 준다고 합니다. 그 순간 만큼은 자기 삶과의 분리가 된다고 합니다. 괴로움과 고통을 잊어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쉽게 그런쪽으로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정도(힙합을 배울정도)의 노력이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통달하고도 남는 다는 것입니다) 잡기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식색의 즐거움은 순간적이고, 그 휴유증은 자기 몸을 고달프게 만든다고 합니다. 학문의 즐거움은 순간적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보(지식습득)를 쉽게 빠르게 어려운 과정없이 얻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좋은 측면도 있지만, 공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쉽게 얻어지는 지식으로 인해 안이해지고 착각을 하는 현상이 나타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는 마찬가지로 지식과 삶이 화해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노자는 21세기에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집니다.
첫째 인간과 자연의 화해
둘째 종교와 종교의 화해
세째 지식과 삶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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