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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오광대의 유래
 안기원 
| 2002·02·19 01:00 | 조회 : 4,786 |
⊙ 역사적 유래


경상남도(慶尙南道)에는 낙동강(落東江)을 중심으로 옛 경상좌도(慶尙左道)지역인 동쪽 지방에 들놀음(野遊)이라는 놀이가 전승되어 왔고, 경상우도(慶尙右道)지역인 서쪽 지방에는 오광대(五廣大)라는 탈놀음이 전승되어 왔다. 이 오광대를 분포지역으로 보아서 영남형(嶺南型) 혹은 남부형(南部型)탈놀음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그 계통을 따져서 산대도감계통(山臺都監系統)탈놀음이라고도 하고, 조선조 도시 발달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도시(都市)탈춤이라 갈래짓기도 한다. 그런데, 오광대는 떠돌아 다니며 놀이를 하여 돈을 버는 전문적인 연희집단이 죽(竹)방울받기, 풍물(風物), 줄타기 등 여러 가지 놀이와 함께 공연하였던 예인오광대(藝人五廣大)와 놀이에 비전문적인 농민, 상인, 혹은 하급관리 같은 그 지방의 주민들이 명절날 혹은 좋은 날을 택하여 모여서 노는 토착오광대(土着五廣大)로 나누어진다.
각지로 다니며 공연을 하던 경남지방의 직업적인 연희집단으로 합천(陜川), 초계(草溪), 밤마리(栗旨)의 대(竹)광대패, 의령(宜寧) 신반(新反)의 대광대패, 진주(晋州)의 솟대쟁이패, 남해(南海)의 화방사(花芳寺)의 중(僧)매구패, 하동(河東)의 목골사당패 등이 있었는데, 이들 전문유랑연희집단의 예인오광대가 토착오광대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문유랑연희집단 중에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가 가장 유명하였고, 또 가장 후대에까지 놀이하며 돌아 다녔기 때문에 비교적 먼저 형성된 토착오광대의 놀이꾼들은 초계 밤마리 장터에서 대광대패의 오광대를 보았거나 제 고장에 와서 놀던 초계 밤마리의 오광대를 보고 시작하였다고 하고, 후기 분파로 보이는 토착오광대 놀이꾼들도 제고장의 오광대가 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와의 관계를 내세워 말 할정도로 관계가 깊다.
대광대패의 본거지였던 밤마리(陜川郡 德谷面 栗旨里)가 지금은 한산한 시골에 지나지 않지만, 과거에는 번창한 상업의 중심지였다. 1930년대까지 낙동강의 수심이 깊어 하운(河運)에 많이 쓰였고 안동(安東)까지도 소금배가 오르내렸다고 한다. 따라서 하항(河港) 또는 하시(河市)로서 장삿배가 많이 왕래하였는데, 낙동강가에 위치한 밤마리는 초계(草溪), 합천(陜川), 의령(宜寧), 고령(高寧)등 인근 고장의 생산물을 거래하던 큰 장이 섰던 고장이었다. 특히 여름철에는 가까운 고장의 쌀과 곡식뿐만 아니라 멀리 남강(南江)지역의 함양(咸陽), 산청(山淸) 지방의 삼(麻)과 해안지방의 소금, 바다고기 등을 교역하기 위하여 일정 기간동안 개설되는 상설시장인 난장(亂場)을 열게 되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난장을 트게 되면 큰 장삿군들이 모여 대광대패에게 놀이 비용을 대어 주어 며칠씩 여러 가지 놀이를 하게 하였는데, 그 중에 오광대놀이가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오광대놀이의 계통을 짐작케하는 전승(傳承)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낙동강 홍수때 큰 궤가 하나 언덕에 와서 닿았는데 열어보니 탈과 탈놀음 도구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손대기를 싫어 하였으나 인연이 있어 닿은것이니 탈놀음을 해야한다고 하여 놀게 되었다. 또 이 궤가 충청도(忠靑道)쪽에서 왔다고 하여 충청도에서 시람을 불러다가 놀았다고도 한다.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이와 같은 가면표류설화(假面漂流說話)가 낙동강 하류인 김해(金海) 가락(駕洛)의 오광대와 남강 하류인 사천(泗川) 가산(駕山)의 오광대에도 궤가 떠내려와서 놀게 되었다는 동일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낙동강 상류인 안동 하회(河回)의 별신굿탈놀이, 중류인 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 하류인 가락의 오광대, 가산의 오광대로 그리고 다시 해로(海路)로 수영(水營)까지의 분포사이의 맥락을 짐작하게 한다. 또 충청도에서 연희자를 불러다가 놀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로 중부(中部)의 산대(山臺)놀이의 영향 내지 그 분파로서 계통을 상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탈놀음의 주제성에 있어 동일하며 다만 세부적인 연출형태에 있어 지방적 차이를 볼 수 있을 뿐 경우에 따라서는 오광대는 산대도감극형식 초기에 있어서의 분파라고 생각 하는 이도 있다.





⊙명칭의 유래



오광대(五廣大)란 이름은 다섯 광대 즉 다섯의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이 연희하는 놀이란 뜻이다. 여기서 다섯을 뜻하는 [오(五)]는 오행설(五行說)에 바탕을 둔 것으로 진주오광대, 마산오광대, 가산오광대 등의 첫 과장에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가 있어 악귀를 쫓고 복을 기원하는 벽사진경( 邪進慶)의 관념에서 연유한 것을 짐작케 힌다. 오방신장은 원래 중국 고대의 오방오제설(五方五帝說)에 따른 도교계(道敎系)의 신으로 우리나라 민간신앙에 받아들여져 방위(方位)를 제압하고 귀신을 쫓고 복을 부르는 강력한 방위신으로 섬겨졌다. 오방신장무과장에서는 동방청제장군(東方靑帝將軍), 서방백제장군(西方白帝將軍), 남방적제장군(南方赤帝將軍), 북방흑제장군(北方黑帝將軍),중앙황제장군(中央黃帝將軍)이 나와 동서남북과 중앙에 서서 춤을 춘다. 이 오방신장의 다섯에 맞추어 다섯양반에 오양반(五兩班)을 등장시켜 오광대라 부르기도 하고, 문둥과장에서 문둥이의 수를 다섯으로 하여 놀이하기도하고, 심지어 통영과 고성에서는 놀이의 구성을 다섯 과장으로 하기도 한다. 원래 오방신장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간신앙적인 의의에서 생긴 [오]가 오락적인탈놀음으로 변하여도 등장인물의 수를 상정하면서 존속되어 이 탈놀음의 이름을 계속 오광대라 불러 온 것이다.
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는 [죽방울받기]를 비롯한 곡예와 더불어 [말뚝이], [비비새(영노)], [중과 각시], [할미. 영감. 지대각시], [사자]등의 놀이 장면이 1900년대 이전에 있었다고 하니 현존하는 오광대의 내용과 동일한 주제가 이미 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그 구성은 신라오기(新羅五伎)이래의 전승임을 짐작케 한다.



⊙통영의 전래 유래


오광대와 들놀음은 밤마리장터의 대광대(竹廣大)패들에 의하여 시작되어 점차 각지로 퍼져 나갔는데 이러한 전문유랑연희집단의 예인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토착오광대는 진주(晋州), 도동(道洞), 가산(駕山), 남구(南鳩), 서구(西鳩), 산청(山淸), 의령(宜寧), 마산(馬山), 진동(鎭東), 가락(駕洛), 통영(統營), 고성(固城), 학산(鶴山)등지에서 들놀음은 수영(水營), 동래(東萊), 부산진(釜山鎭)등 거의 낙동강과 남강유역 및 경남 해안선일대 각지를 망라하는데 각지에 이 놀이를 받아들인 연대와 영향받은 경로는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분포는 초계밤마리 대광대패가 각지로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또 밤마리 장터에서 보고간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고장에서 시작한데서 연유된다고 한다.
통영오광대가 놀이를 시작한 시기와 유래에 대하여 몇 갈래의 구전(口傳)이전한다. 놀이를 시작한 시기를 1961년에 7,80년전이라고 한 말과 1900년경이라고 한 증언이 있다. 그리고 1909년 큰 화재가 있어 그때에 전래하던 오동나무로 만든 가면이 소실(燒失)되었으며 오광대놀이도 한일합방 당시까지 성행되었으며 그후 제2차로 가면을 제작하여 1920년대까지 놀았고 각지로 초청받아 다니기도 하였으나 그후 제2차로 다시 소실되었다고 한다.
전래경로에 대하여는 창원(현 마산)의 이군찬이라는 사람이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를 보고 이화선(李化善)등과 더불어 마산오광대를 놀았는데, 나중에 이화선이 통영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장진국(張鎭局)등에게 놀이를 가르쳐 주고 함께 통영오광대를 놀았다는 전언과, 1900년경에 이화선이 초계 밤마리에서 대광대패의 놀이를 보고 왔다는 이야기와, 통영 사람들이 마산에 가서 오광대놀이를 배워 왔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이와는 달리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된 뒤부터 해마다 섣달 그믐날 통제사 동헌(東軒)에서 밤늦게까지 매구를 치고, 탈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수군에 소속된 악공들을 30여명 동원하여 섣달 28일경부터 집사, 이방 등의 감독 아래 연습하고, 그믐날 나무로 만든 가면을 쓴 양반, 할미, 작은어미(지대각시), 까마귀탈, 주지, 비비탈, 중광대탈 들이 행렬을 이루어 관가에 매구를 치고, 그 뒤에 민가에도 돌아다니며 정월 보름까지 매구를 쳐 주었는데, 이 때는 악사와 중광대뿐으로 중광대가 귀신을 쫓는다고 한다.그러나, 이것은 현존하는 오광대와는 별개의 것이었다고 한다.
이상의 구전자료를 검토하여 정리하면, 16세기 통영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된 이후 궁중의 나례(儺禮)와 맞먹는 벽사행사로 매구치기를 하였는데, 이 행사에는 이속이나 관노들의 탈놀음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고, 이 관가의 탈놀음이 전승되었던 지역적인 바탕으로 19세기 말엽 통영 사람들이 마산오광대의 영향을 받아 짜임새 있는 민중의 탈놀음인 통영오광대를 놀기 시작하였을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징


오광대란 오방신장을 달랜다는 뜻의 구나의 춤에서 딴 것으로 동쪽을 청제, 남쪽을 적제, 서쪽을 백제, 북쪽을 흑제, 중앙을 황제로 나눈 오행설에 따른 것이 있고, 통영오광대는 오과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오광대라 한다.
반주곡은 염불, 타령, 굿거리, 도도리, 세마치, 중모리, 단모리 등이고 춤은 "떳배기춤", 악기는 징, 쾡쇠, 장고, 큰북, 작은북, 호적, 피리, 젓대, 해금 등이다.
음력 정월대보름날, 4월의 봄놀이, 9월의 단풍놀이, 비가 오지 않을때 기우제 행사에 참가 공연하였고 지방 초청공연, 정기발표공연, 대학생 전수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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