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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답사기
 홍기성 
| 2003·08·14 14:49 | 조회 : 5,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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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답사기
서원답사기를 쓸려고 했던 의도는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볼려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자료를 찾고 여러책들을 읽으면서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다. 경상도 답사여행을 후배 곽일신과 함께 다녀왔고, 또 집사람과 아이들하고도 다녀왔다. 답사를 다녀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여행문화가 매우 낙후했다고 생각한다. 어디를 가나 바가지요금에 장사속이 여행의 기분을 망치기도 하였다.
서원은 옥산서원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그리고 향교를 둘러보았다. 나는 그중 도산서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교수는 도산서원을 최고의 서원으로 보는 일부의 사람들은 그 눈이 바로 보물급이라고 평한다. 같이 동행한 곽일신후배도 병산서원을 무척이나 보고싶었지만, 나의 고집에 도산서원으로 일정을 잡고야 말았다. 도산서당은 매우 작은 규모의 건물이다. 유홍준교수는 도산서당의 양쪽에 증축한 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는 듯 한 주변건물과 기본적인 건축상식을 저버린 건물들 이러한 것들을 보면은 도산서원은 볼품없는 작은 서원에 불과한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도산서원을 보고 무척이나 감명받았고,  퇴계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물론 퇴계의 생애와 철학에 접근하기까지는 쉬운 길이 아니었다. 들은 이야기는 많아도 직접 내가 공부하면서 느낄수 없었기 때문에 서원답사기를 이제껏 미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외로 도산서당의 주변에는 명산이 많이 있다. 청량산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청량산을 가는 길은 내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절경들을 보았고, 도산서당의 경관도 낙동강이 굽이쳐 펼쳐지는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나는 병산서원의 답답한 듯 막혀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생각한다.
퇴계가 직접 지은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군더더기 없는 매우 기능적인 건축물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을 세심히 배려하여 지은 것으로 형식은 기존서원과 다르다. 퇴계가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은 삼간으로 거쳐하는 방과 마루 그리고 부엌이다. 제자들과 친구들이 도산서당이 너무나 적다고 양쪽에 증축을 한 부분이 있다. 부엌 쪽으로는 나이든 스승의 건강을 돌볼 노비가 기거하는 방을 증축하였고, 대청마루쪽은 마루가 너무 작다고 하여 처마를 덧대서 평상을 붙인 것이다. 퇴계는 지은 건물에 일일이 이름을 지었다. 학생들이 기숙하고 공부하는 농운정사는 工(공)자의 모양으로 서재와 동재를 구분하여 나이든 학생과 어린학생들을 구분하여 서로 불편함이 없도록 거처하게끔 하였고, 처마를 짧게하여 채광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막혀있는 두군데의 마루에 창을 크게 내어 통풍이 잘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창고겸 부엌으로 보이는 방이 서재와 동재 뒤편에 붙어 있었다. 퇴계는 이토록 제자들이 불편함이 없이 세심한 배려를 하였던 것으로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퇴계가 직접 설계도를 그려 지은 건물이다. 퇴계에게는 지금 남아 있는 종택이 없다. 그리고 퇴계의 무덤은 여타 일반적인 무덤과 규모에서 모양에서 평범함 그 자체이다. 퇴계가 기거했던 집은 너무나 작아 친구들이 퇴계의 집을 보고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퇴계는 자신의 집을 달팽이껍질만큼이나 작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하늘님 이야기를 자주해준다. 풀 한포기 돌 한뿌리라도 하늘님이 있으니 함부로 밟지말고 차지도 말라고 한다. 물론 첫마디에 알아 듯는 것은 아니지만 틈만나면 이야기를 한다. 나는 우리집 정원을 수백만원을 들여서 나무를 사다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변에 있는 야생식물들과 나무들로 마당을 채울려고 한다. 비록 산과 들에 흔하게 널려 있지만 이러한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려고 한다. 나무옮겨심기에 경험이 없는지라 올 봄초 옮겨 심어놓은 것들이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시들어 갔고, 인부들이 잡목이라고 가차없이 베어버렸다. 올 가을 나는 아이들과 나무공부를 하면서 다시 마당에 옮겨놓을 것들을 점찍어 놓을 계획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감성을 키워줄려고 집을 지을 때 하수관을 밖으로 노출시켜 개수로를 설계때부터 요구했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을 이해못해 애초부터 무시되었다. 그래서 시공하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지저분하다고 나의 의견이 또 한번 무시되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만큼은 내뜻대로 할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개수구에 갈대와 수생식물을 심어 마당을 굽이돌게 할 생각이었다. 내가 쓰는 물에 대한 책임감을 이이들에게 심어 줄려는 뜻이 좌절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집에 대한 자부심은 외관에 있지 않고 심미적인 것으로 나는 나의 아이들이 이러한 감성들을 어렸을 때부터 체득화 습관화 시킬려고 한다. 집을 지은 사람들은 외관의 수려함만을 기준으로 집을 짓는다. 이렇게 하면 집이 예쁘게 빠지는데.... 하면서 고집대로 집을 짓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집이 예뻐도 사람이 살기에 불편하면은 그것은 집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포기라도 자신을 외관의 수려함에 목적을 두고 나뭇잎이나 풀잎을 만들지 않는다. 생명유지에 필요한 광합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은 그러한 군더더기 없는 나무의 모습과 풀 한포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우리 옆집은 캐나다 전통의 목조집이다. 건축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집이라고 평가한다. 최상품의 자재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넓은 마당과 배어난 소나무와 향나무들.....
나는 우리집이 철거되기전 가족들과 모여 고사를 지냈다. 우리는 고사문에 이렇게 썼다. 전 인류에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형제애를 보여주자고 했다.  참고로 나의 친형과 나는 한울타리에 집을 따로 따로 두고 산다. 형님네 가족이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이 너무도 깊어 시골에서 살기를 무척이나 갈망하였다. 나는 형에게 전원생활이란 자기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도시생황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쉽게 싫증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물론 나름대로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과 교육철학이 있었지만, 나로써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집의 규모를 줄이려했고, 형은 규모를 크게 멋있게 짓고 싶었다. 그래서 의견차가 매우 심해 갈등의 조짐까지 보이자 마누라가 이러면 안된다고 해서 한 발 물러서게 되었다. 나는 항상 강조하지만 집의 외관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자세와 방법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동네의 전원주택들은 모두 그속에 삶을 영위하는데는 실패를 하였다. 교육문제 그리고 기존 마을과 융합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외지인이 지은 주택과 비교해서 부동산적 가치로는 잣대를 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형제애와 마을 서당과 도서관을 꿈꾸는 우리집의 삶의 가치에 대해서는 어느것과도 잴 수 없는 자부심이 있다. 도산서원의 소박함은 다른 서원의 빼어남에 견줄 수는 없지만, 제자들과 후대에게 자신의 삶의 가치와 지향을 건축물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도산서원을 보고 퇴계를 알고 싶었다. 물론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척이나 애를 먹었었다. [주자의 자연학]-야마다 게이지 지음, 김석근 옮김, 도올김용옥 해제, 통나무-를 읽고 나서 독서량이 급격히 늘면서 퇴계를 조금 알기 시작하였다. 주자는 인간의 몸과 정신은 氣의 작용으로 본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기의 응집과 발산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중국사상의 生生 의 명제에 맞게 단순히 모였다가 흩어지는 반복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주자는 그러한 氣의 聚散(취산)의 물리적 설명이 인간의 사회윤리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사에 대해서는 기의 단순한 흩어짐과 모임에 있어 조상숭배의 뚜렷한 정당성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사에 대한 동양의 전통적인 생각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 후대가 조상의 덕을 이어받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흩어진 조상의 기가 바로 나의 존재의 근원이고 제사를 극진하게 하면 조상의 기가 현존하는 나의 기와 감응하게 되어 조상의 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논어에서도 愼終追遠(신종추원)이라 하였던 것이다. 단순한 기의 취산이 아니라 생생의 입장에서 조상의 덕이 축적되고 나의 기(생)에 감응하게 되어 현재의 나를 더욱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상의 기는 100년정도 즉 사대가 지나면 서서히 흩어지는 것으로 제사에 있어서 사대봉사는 이러한 것에서 나온 것이다. 주자는 기의 취산으로 제사의 의미를 얽매어 맞추었지만, 인간사회의 윤리에 대해서는 기의 취산이라는 것으로 여타의 다른 동물들과의 구별 즉 종과의 구별을 명확히 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었다. 生生의 작용으로 기의 취산은 다른 생물과도 공통되는 것이고 같은 종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사회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작용하는 데, 주자는 이러한 것들을 理(리)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기의 취산이라는 자연학에의 외부에서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리는 바로 인간의 마음(心)이라는 영적인 기에 붙어 있다는 것으로 이것을 性 이라고 했던 것이다. 마음만이 오직 바로 이러한 온전한 리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성은 모든 理를 포함하는 “仁 儀 禮 智” 인 것이다. 인의예지는 인간의 윤리적 행동의 내재적이며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동기인 것이다. 또한 다른 종과 구별할 수 잇는 것으로 퇴계는 사람만이 이러한 온전한 리를 갖추었기 때문에 온전한 리를 갖추지 못한 다른 생물들을 돌보고 이끌어 온전하게 할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퇴계의 생태학적인 사상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길거리의 돌부리 풀한포기도 함부로 걷어차거나 짓밟아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조선민중의 근대사상인 동학의 2대교주 해월최시형도 돌한부리 풀한포기도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리는 기에 붙어 있는 것으로 氣 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주자는 주렴계의 태극도설에서 太極은 理이어서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 하였고, 태극에서 음양으로 갈라질때는 그것은 이미 기의 작용으로 보았던 것이다. 리는 기를 타고 있는 전혀 능동적이지 못한 것으로 기의 발산에 의해 리가 제대로 발현되거나 왜곡되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주자는 인간의 몸의 수양을 리를 제대로 발현할 수 있는 기질의 고침이라고 했고, 이러한 기질의 변화는 오로지 마음의 수양 즉 공부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과의 서신논쟁에 있어 사단칠정론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자는 송대 당시의 절박한 윤리상황이 필요했듯이 퇴계 또한 조선이 관료체제로 접어든 조선왕조역사의 중간에서 매우 절밗한 윤리적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관료제도가 정착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관료의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단칠정은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모두 氣의 發(발)이다. 중용에서 말했듯이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희노애락지미발위지중, 발이개중절위지화. 희노애락이 모두 발하지 않는 것이 중이라하고 발하여 모두 마디마디 들어맞는 것을 화라고 한다)”라는 것으로 고봉은 퇴계를 깐다. 즉 性 인 인의예지가 발하면(四端;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 그것은 기가 되는 것이다. 사단도 칠정도 모두 기가 발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중용에서 말한것과 같이 모든 윤리의 상황은 기가 절도있게 발하는 것으로 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봉은 상황에 맞는 윤리가 發而皆中節謂之和(발이개중절위지화)라고 하였다. 퇴계는 그러한 상황윤리로는 조선의 관료체제가 도덕적인 불감증에 빠질 수 있다는 것으로 절대적인 강령으로의 윤리를 강조하였던것이다. 그래서 퇴계는 주자의 대명제인 리는 절대로 발할 수 없다는 명제를 수정하면서 理인 性이 순수하게 발하는 것이 바로 사단이라고 했다. 기고봉과 서신논쟁에서 퇴계는 자신의 논리적인 불리함을 알고도 끝까지 사단은 리의 발이어서 순선하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마침내 서신논쟁을 억지로 理氣互發說로 끝을 맺었다. 즉 사단은 리가 발하여 기가 쫓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여 리가 탄다는 것이다. 퇴계는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도덕적 원리라는 것은 상황적 윤리가 아닌 성(인의예지)가 순선하게 발한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퇴계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러한 윤리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봉은 그러한 퇴계의 논리에 도덕과 윤리가 사람을 억누르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KBS 도올논어(조선건국과 주자학편, 태일생수와 태극편).
내가 얼마전 이러한 상황을 경험해본적이 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으로 갖추어야할 품성이다. 그것은 조기영어교육보다 중요한 것이다. 보편적인 가치와 도덕은 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우리 내외의 교육철학이다. 나는 체제네 아파트로 놀러간 적이 있다. 인라인을 탈려고 인라인 전용공간에서 아이들에게 인라인을 신키고 있는데, 중학생 여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래서 체제가 “여기는 자전거를 타면 안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그 여중생은 “다들 여기서 타요. 길에서는 못타게 해서 여기서 타는 거예요!”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 여중생에게 한마디를 하였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타지 말라는 것이지 단지내에서 조심스럽게 타면 된다.” 라고 했지만, 그 여중생은 내 앞에 삐딱하게 앉으면서 하는 말이 남들도 다 타고 있고, 인라인전용공간에서 자전거를 타도 누구도 아무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라는 것을 짜증부리듯이 강조하였다. 나는 더 이상 대화를 멈추었다. 잠시 후 그 여중생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여중생을 부르는데, 그 여중생은 인라인을 신은 채로 난간과 울타리를 넘어가는 것이었다. 난간에는 인라인 바퀴자국이 선명하고 화단용 나무울타리는 휘청거렸다.  그것을 본 여중생의 아버지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우리들은 모두 넋이 나간 체 서로만 쳐다보았다. 남들이 쓰레기를 모두 버린다고 해서 나도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혹자는 아이들에게 너무 그러한 도덕적 가치들을 강조하면 아이들의 심성이 억눌려버린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아이들의 기를 살릴려고 보편적인 가치와 윤리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 그래도 나는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꼭 가르쳐야할 것이다. 대중교육에는 모든 시간과 돈 그리고 정성을 쏟아 부으면서 휴지를 버리지 않게 습관화시키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퇴계와 기고봉과의 서신논쟁은 바로 이러한 인간삶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올바른 인간상을 제시하는 퇴계 또한 근대정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은 단순히 양반과 양인들의 적대적 계급관계로 설정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조선은 이러한 계급이 제도화되지 못한 사회로 양인과 왕만 있을 뿐이다. 농민문화 또한 이러한 조선이 지향할려고 했던 모든 가치속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민중문화 지배문화가 따로 없는 것이다. 인간이 지향할려는 모든 시도와 관점속에서 우리의 삶을 재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칸트는 도덕적인 삶과 행복은 서로 같은 곡선을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도덕적인 삶은 바로 신이내린 명령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배가고파도 빵을 훔치는 일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도덕적으로 산다고 해서 내 삶 자체가 모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도덕적인 삶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정언의 명령인 것이다. 칸트는 바로 이러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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