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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답사에 앞서
 홍기성 
| 2002·07·27 10:04 | 조회 : 5,450 |
나의 고향집은 수원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마을이다. 지금은 인근에 화성신도시가 생겨서 앞으로 마을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한다. 우리마을은 이전에 언급을 했지만, 성씨마을로 경제력을 배경으로 토착양반을 눌렀던 잘 결속된 공동체마을이었다. 지금은 40~50대가 청년으로 불리고 어른들은 모두 70을 훨씬 넘기고 있다. 이런 마을에 때아닌 전원주택바람이 불어 외지인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멋들어진 집들을 짓고 있다. 그런데 전원주택의 집터들이 모두 옛날부터 내려온 대지가 아니기 때문에 논이나 산을 허물어 주변경관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넓은 마당과 주변의 자연경관이 모두 산림인데, 전원주택은 영락없이 서양식구조였다. 그리고 평수는 기본이 60평정도이고 혹은 그 이상이었다. 이제는 60평까지는 허가없이 신고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30평 이상 되는 건물은 읍사무소에서 잘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전원생활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또한 사람도 자연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어짜피 인간은 사람이 정의해논 자연속에서 사는 것이고 인식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도 자연이다. 사람들이 도시생활을 피해 시골로 돌아오는 것은 각종공해뿐만 아니라 각박한 인심을 피해 정신적 안락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집의 구조가 도시의 집처럼 구조가 틀리지 않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아파트는 공동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공동의 공간이 많을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를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주거환경은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도시생활 자체가 소비지향적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우리의 공동체 문화는 이러한 삶을 지양하는 문화가 되어야 할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바람에 나의 조용한 사색은 저멀리 건너편의 남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틈틈히 좌도가락을 손으로 때리면서 생각해본다. "그래 양순용선생님 말대로 기닥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 나는 새로운 실험을 해볼려고 한다. 조만간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전에 내가 자란 마을로 돌아가 마을굿을 만들려고 한다. 나는 최소한 초등학교까지는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성적인 아이들이 도덕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오락기를 미친듯이 두드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윤리가 통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아름다움을 많이 느낄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 우리 부부는 결단을 내리고 있다. 내가 이렇게 결정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우리 할머니가 1 세기를 사시고 얼마전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동네에는 아직도 상여계가 남아있어 상조계원들이 장례를 치루어 주었고, 나는 거기서 문화재급의 소리와 놀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보아왔지만, 아는것만큼 느낀다는 유홍준교수의 말대로 충격적이었다. 계의 문화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상여계는 상례를 치르는 일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비교적 온전하게 옛날의 문화를 간직해오고 있었다. 소리꾼은 마을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마을에 소리꾼이 없어 외지에서 불러온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내가 재학생시절 우리동네에는 상쇠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가 마을의 풍장과 상여의 소리꾼까지 하시던 분이었다. 아직까지도 우리동네는 시조를 하나의 조상으로 모시면서, 크게 세갈래의 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면, 모두 한 집안사람이라고 하지만 이미 유전학적으로 너무도 먼 사람들이다. 한 집안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상례를 치르는 모습에서 희망이 보인다.
남인은 경상도 부근의 양반귀족으로서 퇴계 이황선생을 큰 축으로 하고 있다. 남인은 간간히 조정에서 권력을 잡았지만 선조이래 서인(경기, 충정지역)의 기호세력에게 밀려 조선왕조의 야당으로 자리잡은 양반귀족이다. 마누라가 방학하기만을 기다려 미래 계획해온 경상도지역의 서원건축과 양반마을을 답사를 할려고 했지만, 장마에 폭우에 태풍에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콘도나 호텔은 일정대로 방잡기가 쉽지않고 여관은 가고싶지 않고해서 우리부부는 큰돈을 들여 텐트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는 코오롱텐트를 구입하였다. 휴양림을 거점으로 몇일을 묵으면서 자세히 답사를 할려고 했지만, 야외생활은 날씨가 어떠냐에 따라 좌우하기 때문에 답사일정이 자꾸 미루어지고 있다. 얼마전 나의 친형이 직업상(농산물 유통) 전국을 다니면서 풍기에 있는 소수서원과 안동의 도산서원을 가보았고, 답사를 계획한 나에게 '"서원은 정말로 볼것이 없더라!" 하는 것이었다. 고건축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찾을려면 사찰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화려한 단청과 아름다운 건물의 선 그리고 높은 천장은 우리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미한 곳에 위치한 아담한 정자를 보면은 우리선조들의 멋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우리아이들(버릇없고 욕심이 많다)에게 항상 읽어주는 동화에 '줄지않는 볏가마' 라는 형제애를 아름답게 그린 전래동화가 있었다. 나는 마누라에게 자주 이런말을 한다. "정말로 사람이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형제애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전부이고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욕망에 기인된 헛된 사치야!" 라고 한다. 서원건축을 인터넷으로 보면은 복원된 것들중에 일부가 단청이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서원의 건축에는 단청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 건축사이트에 들어가면은 화려하지도 않고 특별한 배치가 없는 평범한 구조라 폄하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고 평범한 구조야말로 조선사림의 생활상이다. 임금도 일반백성과 똑같은 풍속을 하고 밥상에 올라가는 반찬가지수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조선의 사림이었다. 역사는 항상 중앙과 지방의 힘의 균형에서 중앙집권이 되기도하고 지방자치가 허용되기도 하였다. 조선왕조 오백년의 역사는 왕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권력지향의 공적사회를 이루려는 법치주의적 질서와 중앙집권의 관료적 피폐를 도덕적 기강으로 세울려는 분권적인 지역자치질서가 긴장감을 이루면서 세계역사에 없는 유구의 문화유산을 남긴 것이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중국과 일본은 왕조가 바뀌었다. 특히 중국은 오랑캐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군량미가 단 한톨도 남지 않았고, 공적인 良役(양역)체계가 무너지면서 양인의 사환권이 박탈되는 비개방적인 사회로 치닫고 있었고, 중앙의 각부서와 왕족들은 부족한 재원을 만들기 위해 사적으로 농장을 운영하여 사적인 수탈체제로 전환하게 된것이 바로 조선이 일본에 침략을 당하게 된 원인이었다.
  아직까지 우리의 마을에는 상조계가 대부분 존재하고 있고, 또 도시에서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는 친목계 있다. 농촌마을의 상조계는 대부분 상여계이고 상인중심의 상조계는 경제적이기보다는 상가의 권리나 친목과 상가의 원할한 운영을 위한 것이다. 개별적으로 친목계는 경제적 도움을 받고 친목적인 도모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9월이후로는 마을에 잔존하는 이러한 상조의 흔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는 상당히 고민이 되고있다.  마을공동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가족을 제외한 가장작은 인간이 무리를 짓는 제도이다. 자연발생적이든 인위적이든 우리는 공동체를 회복해야하고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성과를 담아야한다. 나는 지금의 공동체가 종교적신념에 가까운 무소유에 중심을 두지만, 우리의 공동체는 생산수단의 무소유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성을 회복한 상조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는 법치주의적 공적질서가 이루어지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치를 이룩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얼마나 공동체를 실현하고 그러한 공동체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일때, 우리의 정치사도 그렇게 바뀌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의 법치질서적 공적사회의 유지와 사림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왕과 신하의 수양에 중심을 둔 인성론을 중심으로 한 사회의 긴장관계속에서 우리의 정치사를 새롭게 구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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