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분류 탈춤 이야기 | 풍물 이야기 | 문화 이야기 | 고전 이야기 |
글 내용 보기
[예기] [악기편] 국역본입니다.
 홍기성 
| 2001·09·07 23:41 | 조회 : 4,921 |
akgi.hwp (48.7 KB), Down : 145
고대로 올라갈수록 음악이라는 것은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중요한 정보통신이었다. 문자 습득의 어려움과 책을 펴내기 어려움에 있어 특히 민(民)이라는 사람들에게는 음악이 당시의 정보를 전해주는 지금의 인터넷 역할을 한 것이다. 예기를 끝까지 읽어보면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이라는 것은 항상 예와 더불어 시작되고 설명된다. 예라는 것은 인간사회의 질서를 말한다. 예는 단순한 형식적인 인사예법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반드시 예가 있다. 예가 사람과 사람사이를 구분해준다면 음악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화합해주는 것이다. 악기는 동양인들의 음악에 대한 전통적 사유이다. 우리 민연인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속에서 살고 있다. 많은 정보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다. 하다못해 원자폭탄 제조기술까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정도이다. 내가 언젠가 인터넷사이트 사장단들과 임원진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소에 명함도 없이 당돌하게 참석한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몇 년전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에 심취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모두들 자기네 회원수가 얼마이고 지금은 수익을 전혀 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제가는 엄청난 수백 아니 수천배의 천문학적 이익을 낼 것이라고 모두들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이익을 내건 말건 그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투자금으로 연명을 하고 있다. 엄청난 수익을 담보로 무한정 투자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부분이 인터넷 기업이 기대이상의 아니 기대이상의 발뒤꿈치도 못한 이익을 내고 있는 현실이다.). 꼬뮤니티를 지향하는 네띠앙의 사장조차 사이버 공동체를 만들어 어떻게 하면 유료화와 관련된 쇼핑몰을 연결하여 수익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심뿐이었다. 나는 인터넷에 의한 공동체를 생각했지만, 모든 인터넷업체들은 수익을 생각했다. 진정한 삶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러한 고민이 없는 인터넷업체들은 한낮의 소나기일 뿐이다. 신지신인이라고 자랑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역사의 한 페이지 아니 한 글자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풍물에 관심을 돌렸다. 인간의 심미적 측면까지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인터넷인 것이다.
풍물이라는 것도 악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풍물이 양순용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화합해야 한다고 했다면, 또한 악기에서 음악은 예와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다. 예라는 것은 인간사회의 질서를 말한다.  공동체적 질서, 우리의 선조의 삶과 같이 이야기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풍물이 공동체 놀이를 지향할 때, 사람도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지향하게 된다. 공동체 또한 인간사회의 질서이므로 풍물과 더불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방식인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량생산에 의한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이 일구어 놓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단절로 인한 인간 소외는 정치나 제도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 일구어내야 하는 것이다.

[禮記] 第十九 樂記編 (책명;예기, 역자;이상옥(문박.전고려대교수) 출판사;명문당, )
음악은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마음의 움직임은 주위의 사물(事物)이 원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사물에 감응(感應)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이 성음(聲音)으로써 표현되고, 사람의 성음에는 많은 종별이 있으며,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성음이 변화하여 그 변화에 일정한 형(型)이 생기면 이것을 음(音)이라고 한다.  이들 많은 종류의 악음(樂音)을 배열하고 이것을 연주하여 간척(干戚, 무무(武舞)를 출 때 손에드는 방패와 옥도끼를 말한다.)과 우모(牛毛, 문무를 출 때 손에 드는 꿩의 깃과 쇠꼬리를 말한다.)등을 가지고 춤출 정도로  진보된 것을 음악(音樂)이라고 한다(凡音之起 由人心 生也. 人心之動 物使之然也. 感於物而動 故形於聲 聲相應 故生變. 變成方 謂之音 比音而樂之 及干戚羽  謂之樂.).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대한 감응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슬픈 마음이 느껴질 때에는 그 목소리가 타는 듯 힘이 없고, 즐거운 마음이 느껴질 때에는 그 목소리가 명랑하고 여유가 있으며, 기쁜 마음이 느껴질 대에는 그 소리가 뛰는 듯 높아지고, 분노의 마음이 느껴질 때는 그 소리가 거칠고 날카롭다.  공경하는 심정인 때에는 소리가 진지하면서도 분명하고, 자애로운 마음이 느껴질 때에는 그 소리가 화평하고도 유순하다. 그리고 이상의 여섯가지 心情(심정)과 소리와는 사람 마음의 성질이나 버릇이 아니고 사람 주위의 사물에  감응해서 비로소 마음속에 생겨서 소리로서 나오는 것으로 누구나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대(古代)의 현왕(賢王)들은 근본적으로 주의하고 감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일을 신중히 고려하여 처리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왕들은 예(禮)에 따라 사람의 지망(志望)을 바르게 지도하고 음악에 의해 사람의 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정치에 의해 사람의 행동을 규제하며 형벌에 의해 사악(邪惡)을 예방하기에 힘썼다. 예악형정(禮樂刑政)의 사자(四者)는 그 목표를 동원하게 하는 것이며, 또 사자는 민심을 하나로 화합시켜 태평한 세상을 실현시키는 수단인 것이다.

대체로 음악은 본래 사람의 심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직여 소리로 표현되어 소리의 변화가 일정한 형(型)을 이룬 것을 악음(樂音)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로운 세상의 음악이 즐거운 기분을 나타내는 것은 정치가 평화롭기 때문이다. 난세(亂世)의 음악이 원한이나 분노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그 정치가 인심(人心)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망국(亡國)의 음악이 슬프고 시름에 잠기는 것은 백성이 고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소리나 음악의 성질은 정치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음(五音)중 궁(宮)은 예컨대 임금에 해당되고, 상(商)은 신(臣), 각(角)은 민(民), 치(徵)는 사(事), 우(羽)는 물(物)에 해당한다. 오음이 바르게 발출(發出)되면 음악 전체가 잘 조화된다. 만일 궁의 음이 바르게 발생하지 않으면 음악 전체가 거치른 감정이 되는데 이는 임금이 교만하고 정치가 난폭하기 때문이다.  상의 음이 바르지 않으면  음악이 평형을 잃는 것은 말하자면 신하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하여 민정(民政)이 안정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각이 바르지 않으면 음악에 근심이 생기는 것은 세상이 문란하고 백성이 원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가 바르지 못하면 음악에 슬픔이 생기는 것은 노역(勞役)이 많아 백성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가 바르지 못하면 음악에 위급한 느낌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나라에 재정이 궁핍하여 곤난이 절박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오음이 모두 바르지 못하여 서로 섞인다면  그것은 나라의 上下가  모두 교만하여 정치가 미치지 못한 상태로서 이렇게 되면 며칠안가서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鄭(정)이나 위(衛)의 음악은 난세(亂世)의 것이며 교만으로 치안이 문란한 상태이다. 또 桑間 上(상간복상, 복수 언저리의 뽕나무 숲 사이의 땅을 가리킨다고 한다. 상간과 복상의 두곳이라는 설도 있다. 이땅은 고대의 衛(위)에 속하며 지금의 하남성의 북부에 해당한다.)의 음악은 망국의 것이다. 멸망이 가까워진 나라에서는 정치가 흐터지고 백성은 安居하지 못하며 사람을 모두 윗사람을 속여 私利를 꾀하며 그 풍조가 심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로 음악의 발생을 생각하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고, 따라서 음악의 원리는 인정에도 사물의 도리에도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소리는 알아도 악음(樂音)을 모른다면 사람이 아니라 금수인 것이다. 악음은 알아도 음악의 뜻을 모르면 군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며, 오로지 군자만이 음악(音樂)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음성(音聲)의 이치를 밝혀서 악음(樂音)의 이치를 알고 그에 의해 음악의 이치를 알며 그에 의해 정치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만 치세(治世)의 길이 충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음의 이치를 모르는 자와는 함께 악음의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악음의 이치를 모르는 자와는 함께 음악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음악의 이치를 알면 예(禮)의 이치를 알기 쉽다. 예(禮)와 악(樂)을 함께 익힌 자들 유덕(有德)한 사람이라 칭한다. 덕(德)이란 득(得), 체득(體得)을 뜻한다. 이런 관계로 음악의 최고 목적은 좋은 음의 극치를 아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향연의 예의 최고목적이 아름다운 맛의 극치를 알기위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종묘의 제사에 청묘(淸廟, 시경의 송부(頌部) 청묘편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고대(古代)의 종묘 제사에 있어서의 선조를 찬미하는 시(詩)나 곡(曲)을 가리킨다.)의 시(詩)가 연주될 때 그 슬(瑟, 거문고)의 현(絃)은 주색(朱色)이며 바닥에 실구멍이 있어 기(氣)를 통하며 혼자 노래하고  세 사람이 탄상(嘆賞)할 것이지만, 이는 선왕(先王)의 음악이었던 관계로 존중되는 것이다.  또 종묘(宗廟)의 대례(大禮) 때의 제물로는 현주(玄酒)를 최상으로 치고 생선을 조(俎, 적대)에 올려 놓으며 국에 양념을 섞지 않으나, 이것이 선왕의 밥상에 대한 습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존중되는 것이다. 선왕(先王)이 예악(禮樂)을 마련함에 있어서는 그에 의해 입이나 눈이나 귀 등의 욕망(慾望)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장차 인민에게 호오(好惡)를 공평하게 하는 일을 가르쳐서 인도의 바른데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조용하고 침착한 것이며 그것이 천성인 것이다. 그러나 또 마음은 외물(外物)에 느끼고 움직여 가지가지로 작용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욕(人慾)인 것이다. 마음이 외물에 느껴서 움직이면 지력(知力)이 작용해서 그 외물을 알며 그렇게 되면 호오(好惡)의 정이 발생한다. 만일 마음 속에서 호오의 정에 절도가 없이 몸 밖에서 사물이 자꾸만 지력을 현혹시키면 그 결과 호오의 정도 지력(知力)이 바르게 작용할 수 없게 되어서 사람의 천리(天理) 즉 이성(理性)은 멸망해 버린다. 그러므로 만일 호오의 정(情)이 절도가 없게 되면 사물이 밖으로부터 마음을 혼란케하여 사람은 물건에 지배되는 것이 되며 천리가 멸하여 인욕 즉 욕망이 왕성해진다. 이렇게 되면 부정이나 사기할 마음이 생겨서 무도한 일이나 난폭한 일을 하게되며, 그 결과 강자는 약자를 위협하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여 지자(知者)가 우자(愚者)를 속이고 용맹한 자가 겁많은 자를 괴롭히며 병자(病者)는 요양할 수 없게 되고 노인이나 어린이는 안주할 곳을 얻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는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이 예악을 만들었을 때에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성질이나 능력에 비추어 절도를 정했다. 예컨대 상복(喪服)이나 곡읍(哭泣)의 규정은 상(喪)에 관한 절도이고 종(鐘).고(鼓) 간(干).척(戚)을 사용하는 악곡은 안락(安樂)에 관한 절도이며, 결혼(結婚)이나 관례(冠禮)의 규정은 남녀를 분별하는 절도이고, 향사(鄕射)나 향음주(鄕飮酒) 등의 의식은 사교에 관한 절도이다. 즉 예(禮)는 민심(民心)을 규제하고 악(樂)은 민성(民性)을 조화시키며, 정치(政治)는 도(道)를 행하는 수단이고 형벌(刑罰)은 부정을 방지하는 방법이다. 이리하여 예악형정(禮樂刑政)의 네 가지 일이 바르게 행하여져서 잘못이 없으면 왕자(王者)의 치도(治道)가 만족하게 실현되는 것이다.

음악은 사람들을 화합시키고 예의는 사람들의 차별을 분명하게 한다. 화합하면 서로 친하고 차별을 분별하면  존경할 줄 안다. 그러나 음악의 감화가 지나치게 강하면 화합이 무질서해지고 예의의 효과가 너무 강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이반(離反)한다. 그래서 적의하게 사용해서 인정을 상통시켜 예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예악의 효용이다. 예의가 지켜지면 귀천(貴賤)의 분별이 분명해진다. 음악의 화합의 힘이 작용하면 사람의 현우정사(賢愚正邪)가 명확하게 구별된다. 형벌에 의해 난폭을 억제하고 관작(官爵)에 의해 현량(賢良)을 거용하면 정치는 공정하게 행하여진다. 그리고 인(仁)으로써 백성을 사랑하고 의(義)로써 백성을 규제한다. 이상과 같이 하면 백성은 잘 다스려지는 것이다.
음악은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고 예의는 밖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음악은 내면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평정이 주가 되는 것이고, 예의는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반드시 손발의 움직임이나 복장의 규정 등이 주가 된다. 그러나 뛰어난 음악은 반드시 평이(平易)하고, 중대한 한 예의는 반드시 그 예법이 간단하다.  따라서 음악의 감화가 성공을 거두면 사람들은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예의가 완전히 길들여지면 사람들은 다투는 일이 없다.  고인의 말에 읍양(揖讓, 읍양은 경례의 일종으로 두손을 합펴 상대방에게 정면하는 예법. 양은 서로 양보하는 예법.)하는 것만으로 천하가 다스려진다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예악의 효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폭민(暴民)이 일어나지 않고 제후가 심복하고 전쟁이 없고 형벌이 행하여지지 않고 백성에게 근심이 없고 천자가 성내는 일이 없는 세상이면, 이것은 음악의 감화가 널리 유통된 세상인 것이다. 부자의 친함이 잘 되고, 장유(長幼)의 차례가 잘 지켜져, 그 결과 천하(天下)의 사람이 모두 천자(天子)를 공경하고 복종하는 세상이면 그것은 예의가 완전히 길들여진 세상인 것이다.

우수한 음악은 천지와 마찬가지로 화합작용을 하고, 중대한 예의는 천지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규제한다. 화합 작용이 이루어지기 위해 천지간의 만물이 각기 그 개성을 뻗어 성장할 수 가 있고 또 규제하기 위해 사람들은 천지의 신들을 공경하여 이를 제사 지내는 것이다. 이리하여 현실의 세계에는 예악이 있고 유계(幽界, 어두울 유(幽))에는 귀신이 있다. 이렇게 하면 그것이 천하의 사람 모두가 한결같이 경애하는 바람직한 세계인 것이다.
예는 사물을 차별하고 사람의 마음을 한결같이 존경하게 하는 것이고, 악은 가지가지의 틀리는 곡절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한결같이 친애하게 하는 것이지만 양자 모두 본질에 있어서 같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현왕(賢王)이 모두 이를 이어받아 예악을 중용(中庸)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 왕들의 사업은 시세에 적합하고 공적에 알맞는 이름의 악곡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애당초 종(鐘). 고(鼓). 관(管). 경(磬). 우(羽, 무인(舞人)이 갖는 물건으로 우는 새깃에 손잡이를 붙인 것이다.). 약( , 피리의 일종). 간(干). 척(戚) 등은 음악의 표현수단이고, 신체의 굴신부앙(屈伸俯仰)이나 진퇴의 예법이나 동작의 완급 등은 무악(舞樂)의 표현방법이며, 보궤조두(  俎豆, 豆 ; 제사때 쓰는 목기나 제기)나 여러 가지 기물의 규젹이나 장식법등은 예의의 표현수단이고, 당실(堂室)의 승강상하(昇降上下)나 좌석이나 복장 등의 규정 등은 예의의 표현방법이다. 그리고 예악의 본질을 아는 자만이 예악의 표현 방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표현 방법을 완전히 아는 자만이 선현(先賢)이 만든 예악을 이어받아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악을 새로이 만드는 자들 성(聖)이라 칭하고 이를 잘 말하며 전달하는 자를 명(明)이라고 말한다. 명성(明聖)이란 이를 말하는 사람 혹은 만드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음악은 천지간의 화합 작용을 대표하는 것이고 예의는 천지간(天地間)의 질서를 대표하는 것이다. 천지간에 화합 작용이 있기 때문에 만물은 모두 동화되고, 질서가 있기 때문에 만물 각기의 지위나 기능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음악은 하늘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으며, 예의는 땅에 기반을 두고 정해진 것으로서 만드는 방법이나 규정하는 방법이 바르지 못하면 그 예악은 조화되지 않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천지의 도를 명확하게 아는 자라야 비로소 예악을 바르게 사용하며 그 효용을 왕성하게 발휘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서로 친하게 하고 근심이나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이 음악의 성능이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음악의 작용이다. 또 사람의 마음을 공정선량(公正善良)하게 하는 것이 예의 성능이고, 태도를 장중하게 하고 공손하게 하는 것이  예의 작용이다.  그리고 음악을 금석 악기로 연주하고, 혹은 소리에 실어서 노래하여 예의를 종묘나 사직에 행하고, 혹은 산천의 신이나 사람의 영혼에게 바치는 일에 대해서는 군자는 물론 백성도 보고 들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천하(天下)의 왕자(王者)는 공을 하나 세우면 기념의 음악을 만들고, 평화스러운 세상이 되면 예의를 규정한다. 왕자의 공적이 크면 음악도 우수한 것이 되고, 평화가 방방곡곡에 미치면 규정하는 예의도 풍성한 것이 된다. 다만 간척을 쥐고 부산하게 춤추는 것이 우수한 음악이라고 할 수 없으며, 생육을 잘 삶아서 바치는 것이 풍성한 예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고대의 오제(五帝)나 삼황(三皇)은 시대와 세대의 변천에 따라서 예악을 개수(改修)하고 반드시 전대(前代)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또 음악을 즐겨서 정도가 지나치면 우환(憂患)을 만나게 될 것이고, 예의를 소홀히 하면 사람들이 모두 그 호오(好惡)에 따라 편파적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바르게 즐겨서 우환에 걸리는 일이 없이 예의를 잘 알아서 편파적으로 기울어지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대현(大絃)일 것이다.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그 중간에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산재하여 예의가 행하여지고 잇다. 그리고 만물은 항상 변동하여 그치지 않고 혹은 화합하며, 혹은 분화 하지만, 음악이 생긴다.  또 봄의 기후는 생물을 낳고 여름은 그들을 성장시킴으로 거기서 인(仁)의 덕(德)이 인정되며 가을은 생물의 열매를 수확하고, 겨울은 그들을 저장하므로 거기에 의(義)의 덕(德)이 인정되는데, 그러한 점에서 말하면 인은 음악에 가까우며 의는 예의에 가깝다. 음악은 화합하는 힘이 풍부하고 신기와 하늘의 덕을 갖추었으며 예의는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 풍부하고 귀기(鬼氣)와 땅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은 음악을 만들어 내어서 하늘의 덕을 나타내고 예의를 제정해서  땅의 덕을 나타냈으며, 이리하여 예악의 설비를 분명하게 해서 천지의 기능을 표시했던 것이다. 즉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그것이 군신(君臣)의 분별을 정하였고, 산은 높고 계곡은 낮아 그것이 귀천(貴賤)의 지위를 나타냈으며, 또 사물(事物)의 동정에 상칙(常則)이 있고, 대소(大小)의 파별이 있으며, 동물은 부류를 이루고 살며 식물은 무리를 이루어 모이며 만사 만물의 성질에 같고 틀리는 점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또 천상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가지가지의 현상을 보여주며 지상에는 산천의 동식물이 가지가지의 형상을 나타낸다. 이상의 상황을 보면 천지간(天地間)에 질서가 있음을 잘 알 수 있지만 예라는 것은 천지를 분별하고 있는 것이다.

예가 천지의 별(別)에 대응하는 것임과 동시에 악은 천지의 화(和)에 대응한다. 즉 땅의 기(氣)는 상승하고 하늘의 기(氣)는 하강하며, 땅의 음성과 하늘의 양성이 상접해서 상동하고 그 결과로서 천둥이 일어나 풍우가 발생하며, 사시(四時)의 순환과 일월의  교체 등이 시작되어 마침내 생물이 화생(化生)하기에 이른다. 이상의 상황을 보면 천지간의 화합의 이치를 잘 알수 있지만 악이란 것은 그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물의 화생은 만일 시기를 잃으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며 남녀간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음란에 빠지는 것이 천지의 정리(定理)이다. 이리하여 그 예악이란 것이 그 최고 효용에 있어서 천상(天上)에 퍼지고 땅끝까지 미쳐 음양의 이치와 함께 귀신(鬼神)의 힘과도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예악의 효용은 실로 높고, 멀고, 깊고, 두터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음악은 천지의 개시 작용에 비유되고 예의는 천지의 성물(成物) 작용에 비유된다. 그 작용이 명료하고 움직여 멈추지 않는 것은 하늘이고, 그 작용이 명료하고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은 땅이며 그리고 혹은 움직이고 혹은 정지하는 것이 천지 중간의 만물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예악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다.

옛날 순(舜)이 오현(五絃)의 금(琴)을 만들고 이것으로 남풍(南風, 풍이라는 것은 시경에서 백성들 사이에 오가는 민요를 말한다.)을 노래하였다. 순의 신하인 기(夔)는 처음으로 악곡을 만들어 이를 제후의 공(功)에 상으로 주었다. 즉 천자가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것으로 덕이 높은 제후를 상으로 주기 위함인 것이다. 제후의 덕이 왕성하고 인민의 교육이 소중히 여겨지고 오곡(五穀)이 잘 익으면 천자는 그 제후를 위해 악곡을 만들어 상찬(常餐)한다. 따라서 민치(民治)에 관해서 크게 수고한 제후는 그 무대를 넓히지 않으면 안되며,  그다지 수고가 없는 제후의 무대는 좁아도 된다. 이와같이 제후에게 하사하는 무악(舞樂)을 보고 그 제후의 덕을 알며, 또 하사하는 시호를 듣고 그 행적을 아는 것이다.
대장(大章, 요제(堯帝)의 악곡)이란 임금의 덕을 환히 나타낸다는 뜻이고, 함지(咸池, 황제(黃帝)의 악곡)란 유비(有備)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며, 소(韶, 순제(舜帝)의 악곡)란 계승한다는 뜻이고, 하(夏, 우왕(禹王)의 악곡)란 대(大)란 뜻이며, 그 후 은주(殷周)의 성왕(聖王)들의 악곡도 다한 것을 표명하고 있다.
천지의 이치로서 한서(寒暑)가 시기에 맞지 않으면 질병이 유행하고 비바람이 적당하지 않으면 곡식이 영글지 않는다. 교육은 말하자면 인민(人民)에게 있어서 한서이고 이것이 시기에 맞도록 시행되지 않으면 인민이 다스려지지 않으며 세상이 문란해지는 것이다. 또 사공(事功, 사공이란 임금이 사압을 일으켜서 공을 세우려는 것)은 말하자면 인민에게 있어서 비바람에 해당하며 여기에 절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로 선왕이 음악을 유지되지 않으면 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로 선왕이 음악을 만드는 것은 선왕이 천지의 이치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려고 했기 때문이며 만일 그 정치가 좋으면 인민이 모두 명군의 덕을 모범으로 하여 선행(先行)에 힘쓰는 것이다.

대저 사람이 돼지를 기르고 술을 만드는 것은, 본래 재앙을 불러들이려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에 소송 사태가 점차 많아지는 것은 술의 유폐인 수가 적지 않다. 그래서 선왕은 이를 위해 음주에 관한 예를 설정한 것이다. 즉 한 잔을 주고 받는데도 주객(主客)이 서로 백배(百拜)하기로 하여 종일토록 마시고 있어도 취하지 않도록 정했다. 이것이 선왕의 술의 재앙을 방지하는 방법이고 주연(酒宴)은 사람들이 기쁨을 나누기 위한 것이다. 이리하여 음악은 임금의 덕을 상징히는 것이고 예의는 사물에 절도를 갖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왕은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에 대한 예가 있어서 슬퍼하였고, 큰 복이 있으면 반드시 이에 대한 예가 있어서 기뻐했으며, 애락(哀樂)의 정도는 모두 예에 의해서 마쳤다. 음악은 성인이 좋아하는 것이고 또한 이에 의해 민심을 선도(善導) 할 수가 있다. 음악이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은 크며 풍속을 개화하는 효력이 있으므로 거기서 선왕은 음악에 관해서 교훈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혈기나 지각의 기능이 있어서 때없이 애락희노(哀樂喜怒)의 정(情)이 감각에 응해서 외물(外物)에 접하여 발동하고 그에 의해서 사람각자의 심정이 밝혀진다. 따라서 세상에 음조가 급조하고 섬세하며 찍어 눌려 약해진 느낌의 음이 많은 악곡이 연주되는 것은 인민에게 근심이 많음을 나타내고 있다. 음조가 느리고 부드러우며 화려하게 장절(章節)이 긴 느낌이 드는 악곡은 인민이 안락(安樂)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음조가 거칠며 처음에는 격(激)하고 끝에는 솟아오르며 전체로서 웅장한 느낌의 악곡은 인민이 굳세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단조롭고 힘차며 장중한 느낌의 악곡은 인민이 공손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느슨하고 윤기가 있고, 부드럽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느낌의 악곡은 인민이 자애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음조가 자주 변전하고 산만하고 경쾌하고 미친 듯이 춤추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악곡은 인민이 방종하다는 것을 나태내는 것이다.

이리하여 선왕은 음악을 만드는 데 인간의 성정(性情)에 근거를 두고 정연한 원칙을 세우고 예의에 맞추어서 천지의 화기(和氣)에 맞추고 오행(五行)의 이치에 따르게 하며 발양(發揚)하는 음은 있어도 산만하지 않고 음이 밀폐되지 않고 강기(剛氣)가 성내지 않고 유기(柔氣)가 두려워하지 않게 하였다. 음양강유(陰陽剛柔)의 이 사기(四氣)가 적도(適度)로 악곡 속에 배합되어서 음이 되어 밖으로 발현하는 것이고 사기가 모두 각각 위치를 차지하고 상침(相侵)하는 것이고 사기가 모두 각각 위치를 차지하고 상침하지 않도록 한다. 이상과 같이 음악의 원칙을 세우고 난 다음 이어서 학습의 계정(階程)을 정하고 기본이 되는 소절을 많게 하고, 악장을 명료하게 하며, 그에 의해 음악의 감화가 민덕(民德)을 돈후하게 도모하는 것이며, 또 음악이 사물의 대소선후(大小先後)의 명칭이나 순서의 모범을 보이도록 하고 그에 의해 사물의 도리를 나타내도록 도모하여 친소(親疎). 귀천(貴賤). 장유(長幼). 남녀(男女)의 도(道)를 모두 음악으로 표현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로 예로부터 음악에는 진실로 깊은 뜻이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흙이 피로해지면 초목이 자라지 않고 물이 썩으면 물고기나 자라가 크지 않으며 신체의 원기가 쇠약해지면 생물의 목숨이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사회가 문란해지면 인심도 거칠어지고 예의가 사악해지고 음악이 음란해진다. 그러면 음악이면 그 음은 슬퍼서 무게를 잃고 뜰떠서 안정감이 없으며  지나치게 느슨해서 절도가 없고,  환락에 빠져 돌아가는 것을 잊게 되는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혹은 음조가 지나치게 완만하면 사의(邪意)도 스며들고 지나치게 급하면 사욕(私慾)이 마음에 가득차려고 한다. 이와 같이 음악은 그의 그릇된 용법에 따라서는 천지만물의 신장(伸張)이 손상되고 온화한 사람의 마음을 해치는 것으로 군자는 이러한 종류의 음악을 천하게 아는 것이다.

대체로 사악한 음성이 가끔 사람을 감동시키면 이에 응해서 역기가 발동하고 그 현실적인 작용으로 음락(淫樂)을 형성한다. 이와는 반대로 바르고 착한 음성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이에 응해서 바르고 순한 기가 발동하여 그 현실적인 작용으로써 화락(和樂)을 형성한다. 이와 같이 주창(主唱)이 있으면 그 반응으로서 화창(和昌)이 있는 것인데, 화창의 사정곡직(邪正曲直)은 주창 여하에 연유하는 것이고 각기 정해진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만사 만물이 모두 그 존재의 이치로서 각기 같은 종류가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충분하게 인정(人情)을 관찰해서 민의을 부드럽게 하고 사람의 성질의 종류에 응해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한 음악이나 접대가 사람의 이지(理知)를 흐리게 하는 일이 없고 부정한 음악이나 접대가 사람을 심정을 문란하게 하는 일이 없고 부정한 기분이 몸에 배는 일이 없이 하여 이목구비(耳目口鼻)에서 내심(內心)에 이르기까지 심신(心身)이 모두 정상적인 기능을 가짐으로써 사람 각자에게 그 정의(正義)를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 뒤부터는 사람들이 음성을 잘 사용해서 의사를 표현하고 혹은 금슬(琴瑟)을 사용해서 표현을 다시 아름답게 하고 혹은 간척(干戚)을 손에 들고 춤을 잘 추며 혹은 새의 깃이나 짐승의 털을 사용해서 무도(舞蹈)를 빛내고 혹은 거기에 피리를 가해서 부산하게 한다. 이리하여 인간의 가장 좋은 덕성(德性)을 발휘하고 천지(天地) 사시(四時)를 관통하는 순기(順氣)를 작용시켜서 만사(萬事) 만물(萬物)의 이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음악이나 무악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그들이 표현하는 청명(淸明)한 기분은 하늘에 따르고, 광대(廣大)한 기분은 땅에 따르고, 시종 호응하는 형(形)은 사시(四時)의 변천에 따르고, 주선(周旋, 旋;돌 선)의 형(形)은 비바람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또 음악에 있어서 오음(五音)이 조화를 이루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곡조를 이루는 것은 마치 오색이 화합해서 하나의 능직 무늬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며, 또 팔음(八音)이 바람이 천지의 이치에 따라 불고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또 음악에서 확인되는 가지가지의 성질이나 특징은 확실한 수로 매듭지어져서 일정한 원리 원칙이 되어 있고, 또 악곡의 소절과  대절은 서로 돕고, 수장(首章)과 종장(終章)은 호응하며, 독창과 합창, 청음과 탁음이 각각 상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음악이 아름답게 연주되면 사물의 줄거리가 분명하게 느껴져서 사람의 감각이나 지각 작용이 강화하며 신체의 건강상태가 안정되고, 그 결과 풍속이 더한 층 선미(善美)해져 천하는 모두 태평해진다.

이리하여 옛사람도 악(樂)은 낙(樂; 즐거움)이다 라고 말했다. 즉 군자는 음악에 의해 선이나 미를 알고 즐기며, 소인은 음악에 의해 감각상 욕구를 채우고 즐긴다. 군자는 선이나 미에 의해 욕구를 맑고 깨끗하게 하므로 음악을 즐겨 문란해지지 않으나, 소인은 욕구에 이끌려 선이나 미를 잊음으로 음악을 즐기지 못하여 이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즉 군자는 인정(人情)을 잘 고찰하고 인심을 온화하게 하고 음악의 애호를 세상에 퍼뜨려 교육의 효과가 커지도록 노력한다. 이리하여 음악이 널리 퍼져 민심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 일로 인하여 군자의 덕화(德化)를 잘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미덕은 본성의 단서이고 이 덕의 아름다운 발현이 음악이다. 또 금석사죽(金石絲竹)은 악기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재질이다. 그리고 시(詩)는 사람의 지향의 표현이고, 노래는 음성을 곡조에 실은 것이고, 또 무용은 마음을 동작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삼자가 사람의 심정에서 발출했을 때에 가지가지의 악기가 그 표현에 쓰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의 발출을 위해서는 깊은 정감이 필요하고, 그것에 의해서 명확한 음악이 만들어지며, 거기에는 사람의 마음이나 기분이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듣는 자를 감동시키는 힘이 신묘하다. 즉 음악은 그 내부에 화합 온순한 정신이 축적되어 그것이 힘차게 외부로 발출해서 아름다운 곡조를 이루는 것이다. 음악만은 허위로는 만들 수가 없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의 감동(感動, 느끼어 움직인다.)으로 발생한다. 감동이 물건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악음이고, 노래 소리지만 그 음이나 소리에 가해지는  수식이 악장이고, 소절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그 악곡의 근본에 있는 감동을 맛보고, 그 음이나 소리를 즐기며, 다음에 악장이나 소절을 음미한다. 그래서 음악의 연주에는 먼저 북을 울려서 개시를 알리고, 무도의 연기에는 세 번 발을 움직여서 방식을 알리며, 일절을 끝내고 다음 절로 나아가려면 재차 북을 울리고, 전부 끝나면 종결을 알린다. 음악의 연주에는 곡조가 빠른 부분은 억제하여 너무 빠르지 않도록 하고, 지극히 유현하고 음의 희미한 부분이라도 손을 떼어 속이는 일이 없이, 이 길의 모든 것을 다하여 교수(敎授)하고, 결코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면 정의(情意)도 도의도 음악에 의해 아름답게 표현되어, 음악의 완성에는 뛰어난 덕이 상반된 셈인 것이다. 그래서 음악으로 하여 군자는 더욱 더 선을 좋아하고, 소인도 마음이 씻기어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게 된다. 고(故)로 고인(古人)은 말했다. 인민을 지도해 가기 위한 방법으로서 음악이 중요하다 라고.
악과 예를 비교하면, 음악은 주는 것이고, 예의는 되돌려 보답하는 것이다. 즉 음악은 낳아서 주는 기쁨이고, 예의는 시작한 자나 베푼 자에 대한 보답이다. 또 음악은 그에 의해 사람의 미덕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예의는 은정이나 동정에 감사하고 시작한 자에게 되돌려 보답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로(大輅)라는 것은 천자의 수레이다. 또 장식하는 용기나 구류등은 천자의 기(旗)이다. 또 귀복(龜卜)에 사용하는 귀갑(龜甲)의 가장자리를 청과 흑으로 채색한 것은 천자가 사용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이들 세 개의 물건에 소나 양의 무리를 곁들여서 하사하는 것은 천자의 제후에 대한 보수인 것이다.

음악은 인심에 공통되는 감정에 의해 성립되고, 예의는 인심이 모두 인정하는 도리에 의해서 제정된다. 즉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공유하므로써 통일되는 것임에 대해서, 예의는 사람들의 몸이 틀리는 것에 의해  차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와 악을 합쳐서 설명하면, 이것을 가지고 인정의 두 면이 포괄되는 셈이다. 또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의 본성을 알리고  더구나 그것이 때나 일에 응해서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가를 알리는 것은 음악의 기능이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허위를 버리고 성실함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 예의의 작용이다.  즉 예와 악은 하늘과 땅의 성능에 따르는 것이고, 천지의 여러 신과 같은 정도의 공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악은 천지의 여러 신을 초청하여 제사지내고, 세계의 만물을 바르게 육성하며, 사람들을지도하며 부자와 군신의 도리를 지켜나가게 한다. 이러하므로 군자가 예악을 사용해서 천하를 다스릴 때는, 그러기 위해 천지는 그 능력을 더욱 왕성하게 하고 또한 다 한층 화합시켜 보려고 하며, 음양(陰陽) 이기(二氣)가 잘 조화되어서  만물을 따뜻하게 지키고 키워, 그 결과 초목은 무성해지고 여러 종류의 새싹이 트며, 새 종류가 날개를 펄떡이고 벌레들이 움직이며, 날개 있는 부류는 알을 품과 털이 있는 부류는 잉태했다 낳아서 키우며, 잉태하는 부류는 실수없이 낳고 난생의 부류는 알을 깨는 일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즉 예악의 기능에 의한 정치의 귀결인 것이다.

음악이란 황종(黃鐘)이나 대려(大呂) 등의 여율이나 현음에 맞춘 노래나,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는 것 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음악의 가지나 잎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린이라도 춤출 수가 있다.  또 연석을 펴고 준(樽, 술통)이나 밥상을 진설하여 요리를 준비하고 당상(堂上)을 오르내리는 예법 등을 예라고 한다면 그들은 예의 가지나 잎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일은 관리들 즉 유사(有司)가 이를 관장하는 것이다. 또 악사는 음성(音聲)이나 시가(詩歌)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지만  신하로서 북면(北面)하여 앉아 현을 연주한다. 종축(宗祝), 즉 관원은 종묘의 예의에 관해서 상세히 알지만 시동씨(尸童氏) 아래에 자리한다. 상축(商祝)은 상례(喪禮)에 관하여 상세히 알지만 주인의 아래에 자리한다. 이러한 이치로 학덕(學德)을 수업하여 군자가 된 자는 상위에 자리하고, 기예를 익혀 전문가가 되면 하위에 자리하며, 덕행이 뛰어난 자는 상위에 자리하고, 사업에 능한 자는 하위에 자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의 현왕이 상하 선후 등의 한계가 정해져 있음으로써 천하의 통치가 유지되는 것이다.



     
번호       제 목 이름 작성일 조회
  풍물굿에 대하여(4)
 홍기성
01·09·30 4578
  풍물굿에 대하여(3)
 홍기성
01·08·11 4962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GAMBO
자동로그인
 
CopyRight (c) 충북대 민속연구회, All Right Reserved.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산48번지 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36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