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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굿에 대하여(2)
 홍기성 
  | 2001·07·15 17:54 | 조회 : 4,719 |
풍물굿에 대하여(2)
예전에 "풍물굿에 대하여" 첫 번째 글을 썼다. 첫 번째 글의 의도는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구조를 사회경제사의 시각으로 최소한의 그 당시 구체적인 실제의 삶의 토대들을 보일려고 했지만 그렇게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요새 내가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사회경제사적 시각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해석할 수 없다라는 것을 느꼈다. 많은 학자들이 같은 역사의 사실들을 가지고 각기 다른 방식의 해석을 해놓았기 때문에 혼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통짜배기 역사관이 서로 달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선의 사회경제사를 보면서 '백골징포' 라든가 '황구첨정' 같은 제도가 가혹한 수탈로만 생각해왔고 또 그렇게 배워왔다. 물론 백골징포나 황구첨정은 지방 향리들의 부패이기도 하지만 조세의 변동(군포제 및 균역법의 실시)과 일반백성들의 경제구조의 변화에 따른 기이한 현상이었다. 조선의 양반정치체제가 조선민중을 가혹하게 착취하는 체제라면 조선오백년의 역사가 그렇게 오래동안 지속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 자신도 이러한 시각으로 조선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 조선민중들의 삶을 연구하려 했지만,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방향을 바꾸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양반지배체제(귀족정치)의 합리성과 불합리성을 따지면서 역사를 다시 보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즉 조선왕조라는 문명의 틀 속에서 조선민중들의 삶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이다.
물론 조선의 관료지배체제가 부정과 부패로 치달았다고 하지만, '황구첨정'이라는 제도는 당시 조선의 조세부과단위인 戶(호)가 단순한 소가족(단혼소가족, 3~5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의 조세부과단위인 戶는 조세와 부역을 감당할 수 있는 戶인 것이다. 이들 戶는 단혼소가족으로 구성된 오늘날과 같은 호적제도가 아닌 것이다. 하나의 戶에 여러 단혼소가족이 묶여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호에 내려진 조세와 부역은 여러 몫으로 나타날 수 있고 과중하게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戶가 중앙집권적인 체제의 편제적인 산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변방에서는 지역방위적인 면에서 편제적인 戶를 장려했지만 보편적인 우리의 삶의 구조는 이러한 戶(主戶가 있고 俠戶가 있는)가 혈연적이든 비혈연적이든 최소한 조선후기때까지의 우리의 삶의 보편적인 측면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놓고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이것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착취수탈관계의 제도로 설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꼭 그렇게만 본다면 우리가 그러한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측면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입장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조세와 군역이 모두 개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당시 조선의 농업생산력에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주변에서 주호와 협호의 의미적 관계를 생각한다면, 주호와 협호라는 관계가 단순히 지배와 착취의 제도로 일색 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처가 중심으로 혹은 시가 중심으로 몇가족이 근거리내에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이지만 우리집도 행랑과 사랑채에 애초부터 자립이 불가능한 육촌 정도되는 친척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소작 이외에 나의 할아버지의 농사일과 집안일을  거들었다. 그리고는 어느 시기가 되면 나의 할아버지는 땅을 주어 독립시키는 것을 보아왔다. 시대를 거슬러 농업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당시 조선에서의 이러한 관계들은 조세와 군역이 단혼소가족이 부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좀더 치밀하고 견고하게 결합되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의 이러한 戶(호, 주호)중심의 조세체계가 이러한 관계들을 재생산구조였다고 생각한다(마을단위로 부과되는 공동체납이 보편화되는 조선후기까지는 이러한 주호와 협호의 관계가 마을이라는 공동체속에서 매우 중요한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호가 모인 마을(인류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제도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을 제외하고 인류에게 가장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제도는 바로 '마을'이라고 한다.)은 조선민중들의 최소한의 삶의 구조라고 생각한다(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이것이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적이라 생각하여 취하고 있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는 분명 당시 평민들에게는 불리했을 것이다. 당시의 지방사또를 보좌하는 지금의 지방공무원격인 향리들은 봉급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향리들이 조세를 걷어들임에 있어서 많은 부정과 부패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의 유자(儒者)들은 성종 이후 사림파가 주류를 이루면서 확고한 향촌의 지배질서를 마련하였다. 그것이 향약(鄕約)이나 향규(鄕規)로 양반이 주로 거주하는 마을을 중심으로 주변의 마을들이 향약이나 향규로 소속이 되는 경향을 가졌다. 앞으로의 나의 연구과제도 이러한 향약이나 향규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만 설정하지 않고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어떻게 최소행정단위인 마을까지 보편화 시킬려 했는가에 중점을 둘려고 한다. 조선은 중앙집권적 경향성에 끊임없는 지방분권적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왕권과 신권과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교적 질서가 우리삶을 어떻게 지배하였는가에 대해서도 연구를 할려고 한다. 또한 이것이 조선후기부터 이러한 질서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농민적 공동체가 어떻게 성립하였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지금 앞으로의 나의 과제이다.
나는 지금도 풍물은 단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풍물은 상쇠놀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수원이다. 걸어서 5분이면 야외음악당이 있다. 그곳에서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주일이나 주말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고 있다. 풍물경연대회도 많이 열리고 각종 탈춤공연도 많이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닐적에는 풍물이나 탈춤은 소위 말하는 의식화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중고등학교 뿐만아니라 여러 단체에서도 풍물은 기본이 되어가고 있다. 보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쉬웠던 것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공연문화로서의 풍물이었다. 탈춤이 표현하고 있는 당시의 사회고발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절실한 문제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풍물의 구성 또한 당시의 삶의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이 변화하였는데, 아직도 옛것을 그대로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만 연희를 한다면 볼거리로서의 공연문화만을 양성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양하다. 다세대가 밀집한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와 비교적 안정된 계층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나는 아파트가 도시생활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주거환경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와 하루품팔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도시빈민들의 집단거주지등... 풍물은 화(和)를 목적함이다. 이렇게 모여 사는 사람들 사이를 어떻게든 정보가 교환되고 정감이 교환되는 공간과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마을굿을 구상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은 주차로 몸살을 앓는다. 놀이터는 어린이들에게 유일한 놀이공간이고 안전공간이다. 놀이터는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 어른들이 놀이터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도 내 아이처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또한 재활용분리수거를 통하여 작은 기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의 작은 상점들과 공동구매를 통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마을안에서 작은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의 청소를 스스럼이 없게 너도나도 할 수 있어 항상 깨끗하고 쾌적한 동네를 유지하여 아파트처럼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최소한의 정보와 정감을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풍물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옛날의 샘굿 철륭굿 새참굿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삶의 질곡을 찾아서 같이 공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주차굿과 놀이터굿 그리고 길굿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차굿은 우선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자리차지가 없도록 하고 밤에는 대문주차도 가능케하고 주차간 거리를 최대한 좁혀 많은 차들이 주차할 수 있는, 그러면서 서로간에 눈 인사라도 할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의 풍물굿을 디자인하자는 것이다.

상쇠 : 화동.(동네의 통반장 확성기를 이용한다. 나발도 확성기에 대고 분다.)
치배 : 예~이.(각자의 집에서 준비를 한다.)
상쇠 : 모든 장비 의복 다 갖추고 일초 이초 삼초만에 납시오
치배 : 예~이

(상쇠가 동네 공터나 놀이터에서 치배들을 모아놓고는 빠른삼채를 친다. 그리고는 주변을 정리하여 제례를 올린다. 제례는 신에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올린다. 그래서 꼭 북쪽을 향해 제사상을 차리지 말고 마을 주민이 많이 모여있는 쪽을 향해 제사상을 돌린다.(절을 할 때는 상쇠가 우선으로 하고 절을 할 때마다 제사상머리에 있는 마을주민들은 같이 맞절을 한다(맞절은 꼭 정식으로 할 필요는 없고 허리만 공손하게 깊게 숙여 상쇠와 마을주민간의 깊은 공경을 표하면 된다.). 이러한 절차가 끝이나면 상쇠는 치배들을 추스린다(갠지갠). 그리고는 굿의 순서를 치배 및 마을 주민들에게 알리고는 시작을 한다.(우리는 지금 상식의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귀신에게 절을 하지 말자, 동학에서도 내가 곧 하늘님이요 귀신도 하늘님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을 나 자신에게 돌려서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제사상의 제물은 정성만 있으면 청수 한그릇이라도 된다고 했다. 동학에서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존엄을 나타낸다.)

--- 길굿 ---
상쇠 : 치배들.
치배 : 예이.
상쇠 : 길이라 함은 사람을 인도하고 이웃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곳이로다.
      이러한 좋은 길이 있으메 우리는 나눔의 기쁨이 있다.
      근래 들어 이러한 길이 주차난 쓰레기난 교통사고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구나!
      참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치배들 길굿으로 길을 깨끗이 해보세!
치배 : 예이.
상쇠 : 빠른 갠지갠에서 휘모리로 끝을 맺는다. (이 굿은 좌도의 노래굿이다. 노래굿은 농          요로 되어 있어 박자도 음정도 없어 우리의 감정상태를 표현하기 매우 좋다. 식신         노래만 부르지말고 이러한 농요를 부름으로써 자기의 감정을 충실해 나타낼 수 있어          야겠다.)
       얼~싸 절~싸 어허허 좀더 좋네. 깽깽 깽깽 깽~지갠
       동네 사람들아 깨끗한 아파트 부러워 말고 내집 옆집 청소하세 깽깽 깽깽 깽~지갠
       빠른 갠지갠에서 휘모리로 다시 끝을 맺는다.
       얼~싸 절~싸 어허허 좀더 좋네. 깽깽 깽깽 깽~지갠
       동네 사람들아 내집 네집 하지말고 서로 양보하여 주차하세. 깽깽 깽깽 깽~지갠
       빠른 갠지갠에서 휘모리로 다시 끝을 맺는다.
       얼 ~싸 절~싸 어허허 좀더 좋네. 깽깽 깽깽 깽~지갠
       어린이들 골목 차사고 내아이 네아이 하지말고 보호해줍세. 깽깽 깽깽 깽~지갠
      빠른 갠지갠에서 휘모리로 끝을 맺은 다음 좌도의 길굿을 치면서 동네를 돈다.
 
--- 주차굿 ---
길굿을 치다가 가장 주차가 심각한 곳에서 주차굿을 한다.
상쇠 : 치배들
치배 : 예이
상쇠 : 우리모두 차를 가지고 있지만 주차난으로 이웃과 서로 불편한 감정이 돈다.
       주차굿을 해봄으로써 우리가 지켜야할 도리를 알아보자.
치배 : 예이.
상쇠 : 액매기 타령을 개사해서 부른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내집 네집 주차 금지 싸우지들  말고 밤중에는 대문주차 할 수 있게 해주소서.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차간 거리 좁혀 주어 주차공간 확보하고 서로 얼굴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해줍시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내집 앞에 세워놓은 주차금지 말뚝치워 서로서로 양보하는 좋은 동네 만듭시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주차 할 때 어린이들 조심해야 사고없네 사고없는 우리동네 살기좋은 우리동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
      빠른 삼채로 끌어 갠지갠 휘모리로 끝을 낸다.

--- 놀이터 굿 ---
놀이터는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아이들을 매개로 어른들이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상쇠 : 치배들
치배 : 예이.
상쇠 : 여기가 바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노는 곳이다.
       이러한 놀이터에 살이 끼면 안되니 치배들 굿을 칩세!
       굿치세 굿치세 놀이터굿 굿치세.(상쇠 치배 동네사람들 모두 입장단)
       깽깽지 깽지갠 개깽깽지 깽지갠(수회 반복)
       내아이 네아이 모두돌봐 줍시다.
       깽깽지 깽지갠 개깽깽지 깽지갠(수회 반복)
       놀이터 깨진병 모두주워 줍시다.
       깽깽지 깽지갠 개깽깽지 깽지갠(수회 반복)
       휘모리로 몰아 짝드림을 한다.(이때 작은 원을 돌면서 하는데 단순히 원만돌지말고
                                    원의 중심점을 향해 앞뒤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원을 돈다.)

위의 굿은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집의 구조를 보면 문굿과 마당굿 샘굿 조양굿 징검다리굿 뒤주굿 치간굿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도저히 우리동네에서는 이러한 풍물은 진행될 수 없다. 이러한 나의 생각들은 민연졸업생을 중심으로 가칭 "우리문화연구소"라는 동문회 부설로 만들것을 구상하게 되었다. 아직 미진한 점이 많아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동문선후배들과 같이 만들고 싶은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서로간의 정보소통이 원활한 지금,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광범한 자료를 모으고 강독게시판을 만들어 서로 공부하고 토론을 해서 새로운 조선민중의 위대한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는 우리 선조들의 풍물굿은 바로 내가 즉흥적으로 구상한 마을굿과 그 의미가 상통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시대를 달리하여 삶의 방식이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조들이 살았던 공동체적 삶을 회복해야 한다. 조선의 역사가 세계자본주의로 들어서면서 각박해지는 인심과 소외되는 삶은 지금의 정치나 제도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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