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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제22강) `제사와 동학`
 홍기성 
  | 2001·07·15 17:47 | 조회 : 4,523 |
제 22강 제사와 동학

증자왈: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사실은 지난번 20강에 종교란 무엇인가?에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이라고 했다.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계종교 전체를 논했다. 20강은 도올 김용옥이 EBS와 KBS에서 진행되어온 강의의 피크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강의이다. 오늘은 그 유명한 20장의 후속 뒤풀이로서 강의를 하겠다. 프레이져라고 하는 인류학자는 영국의 유명한 황금가지를 저술한 사람으로 이사람은 종교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By religion, then, I understand a propitiation or conciliation of power superior to man which are believed to direct and control the course of nature and of human life.   -프레이져(SirJames G. Frazer. 1854~1941)
"종교란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그것은 인간을 초월해 있으면서 인간의 삶과 대자연의 진로를 지배하고 방향짓고 있다고 믿어지는 힘과의 화해며 달램이다."
그러니깐 종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초월하는 어떠한 힘과의 화해이다. 결국은 이러한 것에서 제사가 나왔고 기독교도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님에 대한 제사종교로 말할 수 있다. 유교의 명제에 가장 위대한 것은, 증자의 말에서 도올 김용옥이 평가하는 것은 증자는 충서로 지은죄를 바로 이 "신종추원" 한마디로 배석한다고 했다. 신종추원한다는 이것자체가 어떠한 수직적 관계의 초월적인 신과의 문제 때문에 신종추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사람들의 덕성이 후덕해지기 때문이다. 즉 신과의 관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덕성이 후한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휴매니스틱한 종교에 대한 이 이상의 인본주의적 해석은 없다. 수직적 공포적 관계를 수평적 연대감으로 바꾸는 것이다(증자의 말은 수직적 공포관계를 수평적 연대감으로 바꾼 인문주의적 명언이다.). 내가 죽으면 나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내 후손들이 나를 기억하고 나를 제사지낼 것이다 라고하면은 내가 죽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하면 살고있는 마음 또한 후덕해진다는 것이다. 또 살 동안에도 자손이나 앞으로 오는 미래에도 후덕하게 살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아무리 친한 친척이라도 혼인의 경사에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을 하다가도 이혼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례에는 잘 간다. 죽은 사람이 나를 모르지만 상례는 우리가 가야 민덕이 후해진다는 것이다. 상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증자는 귀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세계의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어떤 과거의 주석가들은 신종추원이라는 것을 民이라는 것의 주어를 君으로 놓고는 지배자들이 신종추원하면은 백성의 덕이 후한대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정다산은 이 고주에 대해 무척 깐다고 한다.
喪祭之禮, 通於上下. -정다산- "어째 상제라는 것이 임금만 지내는 것이냐! 전 국민이 다지내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이때 여기서 民이라는 것은 임금까지 포괄한 民이라는 것이다. 정다산은 치자가 신종추원의 덕성을 보이면 민덕이 후해진다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라고 했다.
신종추원의 궁극적인 말은 민덕이 후한대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제사라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조용남씨가 예산 삽다리 사람으로 자기가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집 한쪽을 세를 주었다고 한다. 그집이 옥분이네로 자기는 어렸을적에 옥분이처럼 세상에 욕을 많이 얻어먹은 애는 없었다고 한다. 매일 옥분이 아버지가 사람지나다니는 길옆에서 "어이 어이" 곡을 하면서 제사만 지낸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장이라도 지나가면 "국수하나 들고 가시지요"라고 말하면서 옥분이에게 "야 이녀아 빨리 국수 한그릇 내와라!"하고는 다시 "어이 어이" 곡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년내내 "어이 어이"하면서 제사를 지내다가 망하는 것을 가수 조용남은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용남은 어렸을적에 그래서 우리나라가 제사 때문에 망하는 것이구나 생각을 했고, 그래서 자기는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제사를 지내지 않고 예배당에 나가는 것을 얼마나 고맙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은 지금도 제사 때문에 피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고 말한다. 아무리 민덕이 후한대로 간다지만 제사가 심각한 질병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를 할려고 한다. 우리가 근대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과거의 고대인이 살았던 어떤 종교적인 심성으로만은 근대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종교적 문제든 모든 우리는 근대적 삶을 살고 있고 현대인으로 이 세계속에서 고대와는 다른게 살고 있다. 그런데 사상적으로는 우리민족의 근대성의 출발을 역시 가장 명료하게 잡을 수 있는 것은 소위 동학이다(제도사적으로는 중앙집권적 조선사회의 성립은 아마 근대의 출발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東學이야말로 정신사적 근대성의 출발이다. 동학의 인간관은 데카르트의 코기탄스에 비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동학에 가장 핵심적 문제의식은 제사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이다. 제사라는 것은 사자 즉 귀신에 대한 제사이다. 그런데 사자에 대한 제사를, 이것을 어떻게 동학사람들은 바꾸어 생각했느냐가 핵심적인 것이다. 동학사상은 인내천사상으로 핵심적인 사상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동학은 하늘이라는 것을 천주(天主, 동학에서 '하늘님'이라는 우리 말은 한연학 표현으로 서학(西學)의 '천주'와 구분되는 독특한 개념)라고 했고 하늘님이라 했다. 상당히 인격적인 의미가 있다. 동학에 가장 이론의 기초를 닦은 사람은, 물론 최제우(崔濟愚1824~1864, 동학의 창시자 호는 수운 1860년에 득도, 1861년부터 포교, 1864년 3월1일 대구장대에서 참수형으로 순도)선생으로부터 동학이 출발한다. 어리석은 세상을 구한다고 해서 이름을 제우라고 고치었다. 동학이라고 하면 왠지 전라도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동학은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를 우습게 알면 안된다. 경주가 신라의 고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사상의 발상지이다. 우리나라 근대를 이어가는 가장 위대한 사상의 물줄기가 다 경주에서 태어난 것이다. 수운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月城郡 見谷面 珂亭1里 315번지이다. 원래 이분도 재가녀의 아들로 아버지도 굉장한 지식인이었다. 최수운선생도 어려서부터 과거를 볼려고 공부를 많이 했지만 다 실패했다. 그래서 최수운 선생은 굉장히 지식이 높았다. 東經大全(최수운이 득도에서 남긴 한문으로 쓰여진 글. 사후 해월에 의하여 1880년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서 간행되어 동학포교의 기폭제가 됨)도 최수운선생이 손수 쓸 정도로 한학이 그정도로 능하였다. 한학이 능하고 대학자의 자질이 있었다. 수운이 20세때에 집을 떠나서 방황을 14년간 한다고 한다. 그 때의 우리나라의 상황은 동학을 생각할 때 이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것이 있는데, 바로 아편전쟁(1839년 임칙서가 아편 판매를 금지한 것으로부터 시작. 1842년 8월 영국에 굴복. 불평등조약인 '남경조약'체결)이 일어났다. 서양놈들이 완전히 중국을 아편쟁이로 만들었다. 임칙서가 중국사람들이 아편으로 찌들어버리니깐 아편수입을 금하였다.  그래서 서구열강이 대포를 퍼부어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킨 것이다. 자 그러면 우리나라는 대륙의 질서속에 있었다. 그러니깐 우리나라는 중국이 자기를 떠받치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중국이 거의 조선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자기가 서있는 땅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것이 갑자기 모택동이 말하는 종이호랑이(紙虎, paper tiger, 중국의 무기력함을 표현한 말)가 된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호랑이인줄 알았더니 완전히 지호(종이호랑이)가 된것이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에 의해 중국이 완전히 무릅을 끓었을 때, 그 당시 조선민중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느냐는 것이다. 지금 아편전쟁하면 책에서만 배우지만 그 당시 중국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이상한 외계인이 와서 완전히 섬멸을 했다면 막막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 느낌으로 생각해보면 19세기 한국사람들이 중국의 대륙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방황감, 그러니깐 그전부터 홍경래난을 시작으로 혼란이 되다가 역질인 콜레라등이 계속 닥치었다. 거기다가 기근이 들어버리고 중국이 무너져버리니깐 조선민중들이 전부 방황하게 되었고 그 때 유명해진것이 계룡산이라고 한다. 그 때부터 계룡산이 무슨 형상이라 하여 가장 안전하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사들이 모여들었다. 아마 최수운선생도 거기에 갔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별라별 그당시 점서들 정감록(정씨 성을 가진 진인(眞人)이 출현하여 미래국토를 실현하고 지복(至福)의 터전을 이룩한다는 신앙. 신도안 지역과 관련됨)이니 이러한 여러 가지 점서들이 조선말기에 유행하여 극도로 말세적인 감각에 휩싸였다. 그러한 것을 경험하고 점점 기독교가 들어왔다. 기독교는 말세론에 대해 대처방안이 있다.  천주교가 들어오니깐 천주를 동학은 과감하게 천주교와 대항하지 위해서 천주를 자기가 믿는 전통적인 하늘님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늘님에 대한 것을 가지고 동학은 재해석하였다. 소위 말해서 수운선생은 14년간 유랑하다가 용담이라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몇년을 비운 방에 불을 지폈더니 연기가 나오면서 눈물을 흘리고 숨을 궤궤거리면서 집을 정리하고 수도를 했다(경주 용담정 옛집으로 돌아온 것은 36세 기미년(1859)10울이었다. "구미용담 찾아오니 흐르나니 물소리오 높으나니 산이로세......).  어느날 홀연히 무엇인가가 나타나 몸이 떨리고 이상한 소리가 나니 무엇인가 영에 접한 기운이 있고 속으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가르침같은 것이 있었는데,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아 의아해서 수심정기하여 용기를 내어 물어보니 그 때 하늘님 소리가 오심즉여심이라하여 내마음이 곧 네마음이다. 하느님 마음이 곧 네마음이다. 인간들이 이것을 어찌 알리요! 천지는 사람들이 알면서 귀신은 알지 못한다. 귀신이라는 것이 바로 나다.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 心常怪訝, 守心正氣而間曰 : [何爲若然也?] (신기전한, 외유접영지기, 내유강화지교. 시지불견, 청지불문, 심상괴아, 수심정기이간왈 : [하위약연야?]"   "吾心卽汝心, 人何知之!"(오심즉여심, 인하지지!)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 吾也."(지천지이무지귀신, 귀신자, 오야)  -논학문-
이것이 바로 수운의 대각(大覺)의 첫 승리이다. 이것이 기록해놓은 것이다. 동경대전에 그대로 쓰여 있다. 사람들이 천지를 알면서 귀신을 모른다. 귀신이라는 것은 곧 나다. 내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이것이 인내천사상이다. 이 사상이 어디로 흘러가면은 인내천사상이라는 것은 나라는 영적인 존재에 나의 마음이야말로 하늘의 마음이다. 즉 내가 곧 하나님이다라고 동학은 가르친다. 이것은 기독교와도 다르고 불교, 유교와도 다르다. 동학사상은 매우 특이하다. 수운 선생이 포교를 하다보니깐 경주 용담골에 용한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었다. 그때는 별애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수운이 1861년에 대각(크게 깨달음)을 하고 그 동네 멀지 않은 곳에 검등골(경주 신광면 마북동 안쪽의 검골)이라는 화전민동네에 최경상(호는 해월(海月). 경주 동촌 황오리에서 태어남, 수운보다 3세 연하, 동학 제2대 교조)이라는 해월선생이 살고 있었다. 도올 김용옥은 오늘날까지 해월선생이 있지 않았더라면 한국에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도올 김용옥이  해월선생을 발견했다는 것이 평생 이땅에 뿌리를 박게된 자각적 계기라고 한다. 해월선생이 이땅에 뿌린 피가 있는 한 이땅을 떠나지 않겠다 했다. 이분은 재미있게도 일자무식이다. 공부를 하지도 않았고 한문도 모른다. 해월선생은 단군이래 우리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해월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고 한다. 마하메트 간디는 물레를 돌리는 깡마른 모습이 꼭 성자같이 보인다고 한다. 최경상(해월)선생은 마하메트 간디보다 더 위대하다. 이분은 평생 습관이 새끼를 꼬는 모습이다(간디는 물레를 돌리는 성자의 모습이고, 해월은 새끼를 꼬는 성인의 모습이다.). 멍석을 만드는데 도사라고 한다. 관군을 피해다니면서 동학의 접주조직을 만들면서 도망다니면서 항상 새끼를 꼬았고 그러다가 새끼를 꼬을 것이 없다면 다시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의 제자들이 왜그러냐고 물으니깐 "하늘님은 쉬는법이 없다"라고 했다(하늘님은 쉬는 법이 없다. -해월-  至誠無息(하늘의 성실함은 쉬는 법이 없다) -중용- ) 멍석을 깨끗하게 지어 놓고, 관군에게 쫓기어 도망을 가기전에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해놓았다. 사는 곳곳마다 항상 사과나무를 심고 깨끗하게 정리해놓고는 도망을 갔다. 인생의 자세가, 자기 제자가 감옥에 끌려가면 이불을 덮지 않고 잤다. 그 제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어떻게 이불을 덮고 자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는 맨몸으로 냉방에서 잤다. 이분의 인격이란 말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실천의 역사라는 것은, 해월선생의 일생을 영화를 만들려고 세밀하게 도올 김용옥은 추적했다고 한다. 일자무식의 화전민으로 검등골에서 용담골까지 걸어서 8~10시간이 걸린다. 최수운선생이 포교를 시작하지 한 두달 있다가 해월선생이 찾아간다고 한다(해월이 수운을 처음 찾아가 만난 것은 신유년(1861) 6월이었다.). 화전민의 일자무식의 농군인 해월을 최수운선생이 보는 순간에 그 무엇인가를 간파하였다. 동학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궁을부적을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먹는다고 한다. 최수운선생이 그것을 해보니깐 희던 머리가 검어지고 검던 얼굴이 허연케 되었다고 몸이 좋아졌다는 것이다(그럭저럭 먹은 符(부)가 수백장이 되었더라 칠팔삭 지내나니 가는 몸이 굵어지고 검던 낯이 희어지네 어화세상 사람들아. -안심가-). 지금도 생각하면 숯가루도 먹는다고 한다. 지금의 먹은 카본으로 만들어서 먹으면 위험하지만, 옛날 먹이라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그리고 종이도 옛날 닥지로 만든 것으로 태워먹었으면 뭔가 좋은것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면서 하늘님 말씀이 들린다고 하면서 아마도 방언같은 것을 했을 것이라 한다. 해월선생이 도대체 사람들이 하늘님소리를 듣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하늘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궁금했다. 해월은 무식하고 소박하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해월이 아무리 주문을 외우고 해도 하늘님 소리를 듣지를 못했다. 그때 마침 최수운선생이 용하다는 소문이 나니깐 모함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함에 못이겨 수운선생이 전라도로 도망을 가 전라도 고룡산성으로 한겨울을 난다고 한다(수운은 1861년 12월 남원 서쪽 고룡산성에 있는 은적암에 들어갔다.). 동네 친지들이 돈이 들어오고 용하다고 해서 돈도 놓고가면서 교세가 점점 커지니 음해하고 친척들이 가짜니 진짜니 하니 수운선생이 귀찮아 도망을 간것이다(애달하다 저인물이 눌로대해 음해하노 요악한 저인물이 눌로대해 저말하노. -안심가). 한겨울 전라도로 가면서 해월선생이 자기 선생님에게 하늘님 소리를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고 물었고 수운선생은 수신정기하고 앉아서 계속 주문을 외우라고 했다. 화전의 꼭대기 집에서 한겨울 내내 거적을 쳐놓고 캄캄하게 해놓고 밤낮없이 주문만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해월선생이 어느날 동지석달 겨울에 하도 답답하여 앞 개울에 빨개벗고 풍덩들어갔다. 찬물에 풍덩하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찬물에 급히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롭나니라!"
하늘에서 찬물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 해롭다는 소리를 해월은 분명히 들었다. 그래서 잠깐 들려서 이상해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겨울을 나고는 그후로 아무런 소리도 듣지를 못했다. 그래가지고 자기선생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던지 수운선생이 경주로 몰래 들어왔을때, 해월선생이 괜히 거기가 가고 싶어 갔더니 수운선생이 와 계셨다는 것이다. 해월은 울면서 그렇게 먼길을 돌아오셨느냐 하면서 자기 선생님에게 절하면서 문안인사를 하니깐, 수운은 해월에게 하늘님 소리를 들었느냐 하고 물었다. 해월선생은 듣기는 들은것 같은데 무슨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라고 말했다. 해월은 하늘님 소리가 하도 들리지 않길래 답답하여 빨개벗고 찬물에 들어갔더니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나니라!" 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수운은 해월에게 하늘님소리를 언제 들었느냐 라고 물었고, 해월은 12월 동짓달 새벽 1시쯤 들었다고 말했다.  수운은 "옳다! 도인들이 냉수마찰을 좋아해서 감기에 잘 걸려 안 되것길래 내가 동경대전의 수덕문이라는 것을 집필하는데 陽身所害, 又寒泉之急坐(몸에 해로운 것은 찬물에 급히 앉는 것이다. -수덕문-) 하는 이야기를 마침 썼느니라! 그리고 하도 답답하길래 내가 그것을 한번 크게 읊퍼났니라! 너가 아마 그때 그것을 들은것 같다." 이것이 동학사상의 원전이라고 한다. 이 두사람의 대화가 그렇다.  어떻게 보면 너무 웃긴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마음이 극진하면 즉 시공을 초월해서 마음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으로 천지가 한 생명(천지가 한 생명(Oneness of Cosmis Life))이라는 자각이다. 그리고 하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바로 찬물에 들어가면 해롭다는 정도의 보통사람의 이야기가 바로 하늘님의 소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이 이상의 하늘님 소리가 없다는 것이 수운선생이 해월선생에게 가르친 것이다(사람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다. Man's voice is God's voice). 우리역사에서 이 한마디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준 말씀이 없다.
"바로 내가 은적암에서 평상시 이야기대로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고 쓴 말이 너의 귀에 하늘의 소리로 들렸다면 너는 성인이다."
이 이상 인간에 소리에 존엄성을 높인 명제는 없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근대적 자각의 출발이다(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신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바로 우리민족의 근대성은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결국은 이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자각, 선생이 경주에 있던 어디에 있던 선생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상식적이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이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 정도가 하늘의 소리라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해월선생이 득도후에 수운선생이 대구에서 참형을 당하여 도끼로 목이 잘려나갔다. 그것도 모함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그러한 위대한 사람을 그렇게 죽였다는 것이다. 수운선생이 죽고나서 동학은 경주용담에서 풍지박살이 났다. 그 당시 동학교인이 삼천명정도로 별거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고 나서는 해월선생이 그것을 조직하여 1864년에서 1894년에 전국의 동학조직으로 해월선생 혼자 30년동안 세포조직으로 모두 만든것이다. 그것을 만든 힘은 인간이 곧 하늘님이라는 그 신념 하나였다. 해월선생이 청주를 지나가면서 서택순(청주에 살던 동학도인, 손병희도 청주사람이다.)의 집안 가다가 베틀소리가 들리길래 서택순이라는 사람에게 "누가 베틀을 짜냐?" (彼誰之織, 布聲耶?) 하고 물었다. 그러니깐 서택순이라는 사람이 "제 며늘아기가 짜는 것이요" (生之子婦 , 織布也.) 해월선생은 또 물었다. "누가 베틀을 짜냐?" 서택순은 "제 며느리가 짜는 것이요" 말했고 해월선생은  "정말 네 며느리가 짜냐?" 또 물었다. 해월은 그러고는 그냥 가버렸다. 한참을 가다가 모시고 가던 제자가 궁금하여 물었다.
"아까 며느리가 베틀을 짜고 있는데, 왜 그 말씀을 계속 물으셨습니까?"
그러자 해월은 "그것은 며느라가 베틀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님이 짜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 베틀을 짜고 있는 며느리가 곧 하늘님이다. 이것이 인내천이다. 그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다. 그 부녀자의 노동이 곧 하늘님의 노동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하찮은 부녀자의 말이라도 해월선생은 하늘님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이것이 동학사상이다. 그리고 물타아(勿打兒, 어린이들 때리지 말라는 해월선생의 설법)라 하여 그 당시는 어린아이를 그렇게 때렸다는 것으로 동학사상에서는 어린애를 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왜 어린이야말로 하늘님이다. 이것이 인내천사상이요, 근대사상이다. 인간의 근대적 평등을 외친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사상이다. 우리 근대는 이렇게 출발하였다. 바로 이 해월선생이 청주에서 깡패처럼 지내는 놈을 입도시켜 사람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손병희(호는 의암. 청주 출신. 해월의 수제자. 동학 제3대교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이다. 손병희 선생은 병든 해월선생이 돌아가실때까지 가마를 지고는 도망을 다녀 어깨가 다 진물렀다고 한다. 손병희의 사위가 바로 소파 방정환(1899~1931년, 서울 출신, 호는 소파, 일본 동양대학에서 공부, 잡지 '어린이' 를 창간한 아동문학가)이 처음으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어린이가 곧 하늘님이라는 동학사상이다. 옛날에는 늙은이라는 말이 있어도 어린이라는 말은 없었다. "어린" 이라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의미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어린애 즉 어린이야 말로 하늘님이다. 연약한 부녀자야 말로 하늘님이다. 이것이 하늘의 인내천사상의 핵심이다. 마지막에 해월선생이 1894년에 전봉준장군이 이끄는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일본군의 기관총앞에 비참하게 죽었다(공주 우금치 전투, 1894년 10월25일 11월 11일. 남북접 10만 대군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 불과 5백명이었다.). 그때 우리 농민군들이 가지고 있는 총은 2~3미터 밖에 나가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100미터 조준 기관총이었다. 게임이 되지 않았다. 우금치 전투에서농민들은 그냥 죽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이 비참하게 깨지고 나서 해월선생이 또다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해월선생은 1864년부터 1898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도망을 치셨다. 한 번도 다리를 뻗고 주무시지 못했다. 이렇게 처절하게 산 사람이었다. 우리역사에서 최장기 도발이꾼이었던 사람이다.  해월이 마지막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1897년 죽산의 읍에서 음죽군 앵산동에서 마지막에 설법한 것이 유명한 향아설위(向我說位)였다. 제사를 지내면은 제사상을 차리는데, 제사의 구조는 간단하다. 迎神(영신) 신을 맞이하여, 娛神(오신) 신을 즐겁게 해주고 送神(송신) 신을 보내드리는 것이다. 모든 제사의 기본 스트럭춰이다. 이 세가지 제식이 종묘제례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을 모셔다가 즐겁게 하여 노래를 불러드리고 보내드리는 것이다. 잘 잡숩고 가시라는 것이다. 그러면 옛날에는 향벽설위(向壁設位, 귀신이 저쪽에서 온다는 전제로 벽을 향해 제사상을 차린다.)라 하여 벽쪽에서부터 신이 오시기 때문에 설위를 벽쪽에 모신다. 숫갈도 벽쪽으로 꼽는다. 그런데 이것을 해월선생이 향아설위(向我說位, 나를 향해 제사상을 차린다.)라 하여 제사상을 내쪽으로 돌려놓고 하라는 것이다. 향벽설위는 조상신을 모셔놓고 절을 하는 것인데, 향아설위는 제사상을 돌려놓고 앉았다. 이것은 곧 내가 귀신이라는 것이다.

해월이 말하기를
"제사를 지내는 네가, 그 귀신은 이미 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네가 있는 자리는 귀신이 있는 자리이다. 네가 귀신이다. 그래서 네가 먹어라!" (父母之死後血氣, 存遺於我也)
그래서 동학에서의 제사는 자기가 제사상을 차려놓고 자기가 먹는다.
제자들이 묻기를
"그러면 귀신이 제사상을 받고 감격하여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해월은
"네가 밥을 먹고 싶다는, 배고프다는 것은 바로 귀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이 너의 생명력이고 그것이 바로 신이다." (人之欲食之念, 卽天主感應之心也)
그러면서 제자들이
"삼년상은 어떻게 지냅니까?"
해월은
"심상백년을 해라! 마음으로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삼년이고 육년이고 그것이 무슨상관이 있겠느냐" (心喪百年, 人之居生時, 不忘父母之念, 此是永世不忘也.)
제자들이
"그러면 상은 어떻게 차리오리까?"
해월
"냉수 한 그릇이면 족하니라."(但淸水一器, 極誠致誠, 可也. 다만 청수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만 있으면 최고의 제사니라.)

해월은 깨끗한 정중한 물 한 그릇먹는 위대한 제사는 없다는 것이다. 천지가 하나 일체인데, 청수 한 그릇이 제사상의 전부이다. 이것이 바로 동학사상이다. 이러한 위대한 말씀을 남기시고 그다음해 단성사 뒷켠에서 교수형으로 사라졌다. 그때에 고문당하고 처참한 모습이 사진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역사는 이렇게 위대한 분들을 죽여온 역사이다. 우리가 이러한 강의를 듣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분들의 혼령이 우리 마음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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