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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제21강) `한국유학과 일본유학`
 홍기성 
  | 2001·07·15 17:46 | 조회 : 3,920 |
제21강 한국유학과 일본유학
초청강사: 쿠로주미 마코토 (현재 일본사상계를 대변하는 동경대학 교수로서 일본의 윤리사상 방면에 많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번역 및 해설: 도올 김용옥

쿠로주미 마코토 : 아카데미즘에서 말하는 지식은 하향식입니다. 위의 소수가 대단한 지식을 추구하고 그것이 대중에 퍼져가는 방식, 이런 방식이 근대에 구현된 것이 바로 대학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어린사람부터 나이드신 분까지 자발적으로 모여 공부하는 이 강의장과 같은 모습이야말로 대학중심의 하향식 지식추구와는 거리가 멉니다. 21세기 사회의 바람직한 비권위주의적 모습이겠죠.

도올 : 현재 일본사회의 유학은 일본사회에 침투되어 있다기 보다는 일본에 있어서 유학은 대학중심의 연구하는 것이 중심이 되고 있다. 대학에서의 연구라는 것은 지식을 어떠한 소수가 흡수해서 거기서 지식체계를 만들어서 사회전반에 밑으로 내보내는 것이 지금 대학의 구조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소수에 의한 지식체계를 사회적으로 파급시킨다는 것이다. 오늘 이 강의실에 나이 많은 사람부터 나이 어린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 지식의 생산방식이 다른방식이고 이것이 소위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어떠한 지식의 갈망과 이런것이 보다 더 유교문명에 의해서 널리 민중에게 퍼져있는 것 같다라는 것이다.

쿠로주미 마코토 : 방금 전에 김교수님이 말한 세미나광경(도올 김용옥이 일본 동경대학 중국철학과에서의 일본학생들과 교수가 같이 모여 고전을 훈독하는 세미나)은 그런 권위주의적 방식이죠. 일본의 훈독은 일본인이 중국문학를 흡수하는 톡특한 방식인데, 이것이 바로 일본유학과 한국유학을 나누는 특질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도올 : 그러니깐 음독하고 훈독의 경우만 이야기를 해도, 한국문명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읽는데 어떤 의미로 중국사람이 듣는다면 자기네 방언이라고 한다. 사투리하고 마찬가지이다. 중국말을 그대로 발음만 달리했을 뿐이다. 그래서 방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중국문명의 수입이라는 것이 휠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수입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런것이 중국문명이 그대로 들어온것이 아니라 반드시 훈독이라는 것으로 거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중국문명이 망그러져서 부스러져서 들어온다. 그래서 중국의 유교문명의 모습이 그대로 일본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처음부터 일본인의 생활감정속에서 일본화되어 들어왔다. 그래서 쿠로주미 마코토가 계속 이야기할 것이지만은 한국유학의 특질은 아주 이념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해 일본사람들은 애초부터 유교문명을, 우리는 주자학이 고려말부터 불교라는 이념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본은 애초부터 유교문명을 받아들일 때, 경학중심보다는 문학 즉 시라든가 연인들의 시조라든가 와카(和歌, 漢詩가 아닌 일본사람의 노래, [萬葉集]이 그 대표) 하이쿠(排句, 에도시대의 5.7.5.3구 17음절의 난시) 이런것이 초기부터 유교문명이 들어오는 형태가 한국문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쿠로주미 마코토 :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밖의 세계와 걱절되어 있어 대외적 긴장감이 없습니다.

도올 : 일본은 완전히 시마구니(섬)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섬이라것은 자기네끼리 무엇을 하건 말건 누가 아무런 상관을 할 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대한 대륙에 젓꼭지 모양으로 달려있다. 그래서 반도에서 일어나는 것은 옛날부터 전체 대륙의 질서속에서 자기를 생각해왔다. 한국사람들은 중국이라는 것을 떠나서 과거에 한국을 생각해본적이 없다(한국문명은 대룩의 질서를 항상 의식해왔기 때문에 보편주의가 강한 반면, 일본은 자족적인 것에 만족하는 상대주의가 강하다.). 한국문명은 한자문명이 음독으로 그냥 들어 왔지만, 일본문명은 한자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의 카나문자는 우리 훈민정음보다 오륙백년 먼저 성립하였다(일본의 카나문자는 9세기초 하이안시대에 성립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보다 무려 600년이 빠르다.). 그러니깐 일본은 자기 문자를 일본문명초기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에 의해서 한문을 받아들였다. 이 이야기들은 일본사람들이 섬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막연한 동경이고 긴장감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다 수용하였다. 한국문명은 대륙의 질서를 빠져나가는, 기차역으로 치면은 중간역(교차의 문화(cross road culture), 문화가 유입하여 다시 흘러나가버리는 문명)적이다.  즉 문명이 항상 들어와서 빠져나간다. 한국사람들은 좌우지간 잘 잊어버린다. 그리고 건물도 새로 지었다가 다시 부셔버리고 책도 들여놓았다가 다 분실해버렸다. 뭐 쌓이는 것이 없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래서 쌓이는 것이 없으니깐 항상 새로운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특징이다. 그런데 일본은 종착역(dead-end culture, 문화가 유입만 되고 흘러나가지 않는 문명) 문화이다. 종착역은 더 이상 빠지지 못하여 모든것이 쌓이는 것이다. 그러니깐 새로 들어온 문명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위에 계속 새로운 문명이 층층 겹겹으로 쌓인다. 그래서 모든 일본문명은, 중국대륙의 질서가 일본에 쌓이고 아메리카에서 아이누까지의 북방의 문명이 훗카이도로 쌓이고 밑으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동남아 문명까지 쌓였다. 일본은 대륙의 질서 북방, 남방의 질서가 모두 종착역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문명은 상당히 중층적인 구조가 있다. 

쿠로주미 마코토 : 일본은 대외적 긴장감이 없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온 것을 그 원래의 맥락을 잘라버리고 자기나름대로 요리해 버리는 습관이 있죠. 한국은 대외적 긴장감이 강한 문명이라서 형이상학적이고, 원리적인 것들을 보다 깊숙히 내면화시키는 경향이 있죠. 일본의 경우는 여러 것들을 충돌없이 받아들여 적당히 디자인 해버리고 말지요.

도올 : 한마디로 일본사람들은 문명의 종착역이니깐, 잘 비빈다는 것이다. 이것을 신크리티즘(synchretism, 종교 사상간의 적당한 융합이나 통합. 혼합주의라 한다.)이라 한다. 예를 들면 신또(神佛皆合(신부쯔슈우고오), 샤머니즘적 神道의 신과 불교의보살들이 마구 섞여 버리는 현상, 에이언 시대부터 이미 성행) 불교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군데에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극단적으로 일본에 교회를 들어가면 부처님이 있고 그 옆에 예수님을 같이 모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일본사람들은 받아들인다. 일본사람들은 자기네 신도라는 것과 불교를 같이 처음부터 받아들였고 유교 또한 자기네 구조속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법이 없다. 항상 종착역 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깐 일본 내부적으로 본다면 항상 화해고 화합이고, 자기네들 나름대로 융합을 잘한다. 즉 믹스를 잘한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문화적 짬뽕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한국사람들은 굉장히 정조가 있다. 일본사람들은 어떤의미로 정조가 없다. 한국사람들은 뭐 하나 지키도, 기독교를 믿어도 그냥 그 말씀대로 믿는다. 정확하게 믿어야되고 유교를 믿어도 정확하게 믿어야되고 공산주의를 엄청난 막스의 교조주의보다 지독한 교조주의를 고수한다. 유학도 뭐 "목을 자를 지언정 상투는 자르지 못한다!" (吾頭可斷, 此髮不可斷. (오두가단, 차발불가단.) , 1895년 11월 단발령에 대한 구한발의 대유 최익현(1833~1906)의 상소문) 쿠로주미 마코토가 자꾸 긴장감이라는 말을 쓰는데, 한국문명은 긴장감이 있고 그 긴장감이 한국문명에는 부정성 무언가 자기를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일본은 부정성이 없다라는 것이다. 모순성이 없고 부정성이 없고 전부 다 흐리멍텅하게 조화시킨다(조선문명 : 모순과 부정의 논리발달, 일본문명 : 공존과 화해의 논리발달). 그리고 그것을 심미적으로 디자인한다. 모든 것을 믹스해서 심미적으로 디자인하는데는 귀재이다. 그러니깐 처음부터 일본문명은 아주 심미적 감각이 발달하였다. 일본문명은 칼과 여성의 문명이다. 일본은 날카로운 칼과 거기에 굉장히 여성적인 심미적인 나약하면서 아름다운 하늘하늘한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붓과 남성적인것이 있다. 이것이 일본문명과 우리문명을 다르게 만드는 어떠한 특질중의 하나이다.

쿠로주미 마코토 :조선유교는 조선사회의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와 결부되어 있어 양반이 독점하였지만, 일본은 그런 하이어라키(hierorchy, 위계질서)가 없어 서민학자들이 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도올 : 그래서 한국적인 유교는 상당히 이념적이고, 일본인들은 즉물적이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의 이념지향성, 예를 들어 일본의 대학을 가면은 내가 일본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니깐 일본대학에서는 입학식을 하고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학생들이 교내에 나와서 온갖 학생써클이 나와서 시장을 벌였다. 그런데 보면은 전부가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지역 불상연구회 무슨책을 읽는 회 어느 정치가를 지원하는 회 전부가 이런것이다. 우리나라는 무슨 이념연구회 한얼 연구회등 80년대 우리나라 대학은 전부 원리연구회로 꽉차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그마한 것으로는 주제를 가지고는 대학써클이 되지 않았다. 항상 거창한 이름이 되어야 했다. 세계평화연구회등과 같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의미한 것이다. 일본사람들과 한국사람들은 이처럼 생각이 다르다. 이것이 벌써 일본유학은 즉물적이다. 문학적이다. 한국은 상당히 이념적이다. 한국의 이념적인 성향은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중앙집권적인 것보다 분권적인 형태로서 옛날부터 되어 온 것이다.

쿠로주미 마코토 : 일본유교의 가장 큰 특성의 하나가 과거제도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일본에서는 정치를 지식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칼잡이 무사들이 했으니까요.

도올 : 한국문명과 일본문명을 비교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에는 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과거제도가 있는데, 과거제도처럼 이념을 통제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없다. 모든 사람이 과거시험을 보는 교재를 써야 한다. 그러니깐 우리나라가 어떻게 주자학이 권위를 갖느냐 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다. 과거를 패스할려면 주자의 사서집주를 통달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인 권력을 얻을 수 없었다. 과거의 의미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과거의 최대의미는 합리적인 지식의 추구가 곧 권력으로 결부된다(신분이나 계급에 관계없이 지식의 획득이 곧 권력의 획득으로 연결 될 수 있다는 것이 과거의 최대 의미이다.). 지식을 많이 가진사람일 수록 그에게 권력을 줄만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거의 중요한 의미이다. 이러한 생각은 세계적으로 중국문명하고 우리만이 있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시험이라는 것은, 시험을 봐서 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은 이것 자체가 중국문명이 세게문명에 수출한 것이다(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시험제도는 서양에서 온 것이 아니라 중국문명에서 생산되어 전세계로 수출된 것이다.). 서양에는 시럼이라는 것이 없었다. 우리문명만이 중국문명의 과거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러한 것은 어떤의미로는 지식학적으로 말한다면 매리토크라시(meritocracy, 지식과 사회적 지휘가 일치한다는 실력본위제도)이라는 것이다. 더 높은 지식을 소유한자가 더 높은 권력을 갖는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더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지식인으로 키울려고 한다. 일본은 그러한 지식에 대한 존중이 없다. 아이러니칼하게 들릴것이다. 일본처럼 지식이 발달한 나라가 없는데, 지식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말이다. 일본은 과거제도가 성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선 중앙집권적 제도가 생기지 않았고 과거제도를 만들어 전국에서 사람을 한군데로 뽑을 필요가 없었다. 전부 번으로 지방으로 나누어져 권력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머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무사가 했다. 그러니깐 서로 칼만 잘 쓰면 되었다. 칼쓰는 사람들은 대개 골이 비었으니깐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기자신을 파는, "나는 유학을 공부했고 머리가 좋습니다. 나를 등용하십시오!" 하는 자기자신을 상품하는 장인적 수단이다. 그러니까 대패질을 잘하는 목수가 "나를 건물짓는데 쓰십시오"  일본에서는 지식이라는 것이 내가 이러이러한 지식의 스케일을 가지고 있느니깐 번주에게 나를 등용하라는 것이다(전통 일본사학엣는 지식도 장인적 기술의 일종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일본유학이다. 일본의 유학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자학적 이념적 구속이 없다. 장인중심이다. 그러니깐 일본사회는 지식인에 대한 중시보다 쇼쿠닌(職人(직인)일본고대사회부터 성립한 개념으로 수공업자.기술자등 특별한 기능을 소유한 사람) 즉 직인과 같은 쵸우닌(에도시대에 도시에 거주하는 상공업자의 총칭. 부락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반서민)등의 예능인이다. 악기하나라도 그것에 명인이라면 일본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그러니깐 일본사회는 어디까지나 직인중심의 사회이고 어디까지나 유교도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흡수한 것이다(일본의 대표적 유학자들의 상당수가 쵸오닌 출신이다. 이토오진사이(1627~1705)가 한 예). 유교의 특색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하나의 정치적인 제도와 결부되어 중국의 유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은 지식인이라는 것이 이러한 평민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장인적 기술적 측면에서 유교가 이해되었다.

쿠로주미 마코토 : 아까 제말을 좀 보충하면 일본도 명치유신에 들어와서 과거제도를 도입한 셈이죠.  동경대학의 성립이 바로 그것이고, 그래서 그 인연으로 우리가 만나셈이죠 .

도올 : 그러니깐 무엇이냐 하면 지식이라 하는 것은 어떠한 과거라든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자격이라는 것과 결부되어 정치권력과 결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오히려 뒤늦게 명치유신에 와서 비로소 동경대학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과거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과거제도가 일본에 없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에나 과거를 도입했고 그것이 동경대학인이라는 제도로 갔고, 우리는 조선의 과거제도를 서울대학 중심의 입시제도를 받고 있다(우리나라는 고려시대 광종(10세기 중반) 이래 오늘날 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과거제도를 고집하고 있는 세계사적으로 희귀한 나라이다.). 완전히 우리사회는 과거의 연속성속에 있는 것이다. 일본은 예전에 전혀 과거제도가 없다가, 종착역 사회가 되다보니깐 일본의 다양한 특질을 주고 있다(일본은 과거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의 근세의 통일국가를 만들다가 보니깐 어떠한 동경대학을 통해서 우리조선의 과거제도를 가지고 엘리트의 근세 하이어라키로 만들려고 했다.

쿠로주미 마코토 : 일본의 생활지식은 신도(神道) 불교 유교의 혼합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종교의 신크레티즘이죠.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은 장례식이나 결혼식이 유교제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일본인들은 죽을 때는 불교식으로, 태어나거나 결혼 할 때는 신도식으로, 공부 처세는 유교식으로 하죠. 최근에는 기독교식 결혼이 유행이죠. 일본에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혼합된 삶을 살아요.

도올 : 일본에서는 그러한 외래적인 문화가 전부 혼합 형태로 들어오기 때문에 단일한 문제의식이 없다. 그래서 인간이 살아가는 문제에서, 태어나는 것은 대개 신도이고 불교는 인간의 죽음이고 유교는 살아가는 과정의 교양이라든가 생활습관이라든가 학문이라든가 처세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결혼식도 신사에서 했는데 최근에는 기독교식으로 한다. 일본은 기독교 교인이 전국민의 1퍼센트 뿐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이 60퍼센트가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나라 국민이 알아야 한다.

쿠로주미 마코토 : 일본사람들은 기독교를 믿지도 않으면서 결혼식을 기독교식으로 하는 것이 웃깁니다. 한국의 친족관계는 유교이념과 일관된 남성혈연중심으로 되어 있지만, 일본의 경우 친족관계가 매우 복합적입니다.

도올 : 그러니깐 이러한 것과 관련되어 일본사회와 한국사회를 가장 대별짓는 것 중의 하나가 일본은 유교제사가 없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유교의 제사는 무엇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냐 하면, 바로 장자상속제이다. 장자상속의 권위를 제사가 가지고 있다. 예들들면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재산을 많이 상속을 받아 조상의 은공을 받았으니 그 만큼 해드려야 한다. 일본에는 장자상속제라는 말이 전무하다. 그래서 일본의 유학은 달라지는 것이다. 일본은 소위 근본적으로 인간관계가 혈연중심이라는 것이다. 일본에 가면은 동경에 2백년된 우동집이 있다. 그러면 그 집에 가보면 그 역대 점포의 주인의 이름이 나무로 새겨져 있다. 자식들과 장자들이 이어받는다고 해도 2백년을 갈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은 장자상속제가 아니라, 반토오(혈연과 관계없이 직종에서 가장 유능한 지배인이 그 성씨를 받고 그 재산을 상속 받는다.)라고 하여 자기가 쓰는 성을 자기 아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우동집에서 일하는 사람중 가장 우동을 잘 만드는 놈이 상속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들이 되고 장자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家라는 개념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일본사회의 家(이에)의 개념은 혈연과 무관하며, 사업을 유지시키기 위한 삶의 터전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깐 일본에서 이에의 상종이라는 것은 혈연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는 희안한 것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촌끼리 결혼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사촌끼리도 결혼을 한다고 한다. 일본에는 혈연개념이 없다. 그래서 사촌여동생하고도 결혼을 한다. 일본사람들은 여자가 결혼을 하면은 미국식으로 여자성은 없어지고 남자성을 따른다. 만약 딸을 낳다면 그러면 사위를 들인다면 사위는 처가의 성을 이어간다. 일본은 남자쪽의 성만 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쪽의 성도 받는다. 그러니깐 무쿄요오시(사위가 그 결혼한 여자집의 성을 받는다. 우라나라에서는 異姓養子(이성양자)가 불가능하지만 일본에서는 성이 달라도 양자로 들일 수 있다. )라 하여 사위 장자상속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본사회는 혈연중심의 우리가 생각하는 유교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동성동본의 결혼이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성립하였다.

쿠로주미 마코토 : 일본의 집(家)은 일을 위한 협력체(corporation)와 같은 것으로 지극히 실용적인 개념이지요.

도올 : 그러니깐 일본사람에게 있어 家라는 개념은 혈연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을 지키기 위한 어떠한 터전같은 것이다. 일을 자기들끼리 즐겁게 하기위한 어떠한 집단적인 터전이 바로 일본의 이에(家)이다.

쿠로주미 마코토 : 한국은 유교를 매우 고지식하게 받아들였지만, 일본은 매우 유연하게 이해했어요.  그래서 일본은 근대화과정에 적응을 잘 했는데. 한국유교와 원리주의는 적응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도올 : 결국은 일본에서의 일본유학의 특질은, 仁이라는 해석에 있어서도 추상적인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다 라고 전부 해석했다. 추상적인 것보다는, 예를 들면 忠이라든가 孝라든가 이런것에 대한 굉장히 구체적인 忠 孝 恕와 같은 생활의 덕목으로 유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일본의 유학은 굉장히 실용주의적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성리학도 주기론적 사고가 가장 보편화되는데, 우리는 이퇴계의 주리론이 우위를 갖는다(한국: 主理論 우세: 원리적, 추상적     일본: 主氣論 우세: 즉물적, 구체적). 理라는 것이 상당히 이념적이다. 그러면 氣라는 것 자체가 상당히 즉물적이다. 한국사람들은 인의예지 사단의 도덕성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별로 개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근세로 들어오면서 일본은 서구문명의 임펙트가 왔을 때, 일본문명은 실용주의적으로 대처하였기 때문에 서구문명과 마찰이 없었다. 일본유학은 서구문명을 또하나의 실용주의적 학문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자기를 유학자체가 실용주의적이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아주 이념적인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서양문명에 대해 엄청난 반발을 하였다. 텐션을 느끼고 자기 정조를 지킬려고 했다. 한국문명은 아직도 유교가 굉장히 강한 문명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이렇게 한국사회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도대체 지금 도올 논어를 KBS에서 하는 것이 쿠로주미 마코토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고 한다. 일본과 한국이 유교적 공통분모가 없는것은 아니다. 겸손하고 인사하는 것은 유교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속은 전혀 유교적인 것이 아니다. 제사도 없고 혈연관계도 없고 장자상속도 없다. 동성동본의 결혼을 허용하고 지식인들보다 장인들을 더 중요시 한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 유교문명이 아니다. 그래서 서구문명의 임펙트가 들어와도 일본은 잘 대처를 했는데, 한국문명은 곤혹을 치른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텐션이 장기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조선문명은 자기부정을 통해서 그러한 강렬한 대결과 강렬한 긴장감속에서 어떤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다(일본유교는 실용성 때문에 서구문명을 쉽게 받아들였다. 한국유교는 원리적이었기 때문에 크게 반발하였고 근대화에 쉽게 적응 못했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긴장감이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일본은 맨날 적당히 타협만하고 적당히 실용적으로 살다가 끝날 놈이라 한다. 그래서 근대화과정에서 일본에는 이념적으로 기대할 것이 없다. 오히려 한국문명이 갖는 텐션이야말로 한국유학이 세계적으로 새롭게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유교국가이다라고 말한다.

쿠로주미 마코토 : 한국유교와 일본유교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서로 매우 다르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점점 배워가고 있습니다. 일본문명은 근대화에 빠르게 대쳐했지만 그만큼 피상적이었고, 오히려 한국유교야 말로 보다 깊이있는 사상적 창조를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의 깊이있는 사상과 일본의 디자인적 절충사상이 다시 만나 서로를 배우는 과정이야말로 금후 동아시아문명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도올 : 한국문명은 어떤 의미에서 사방으로 들어와서 긴장감을 가지고 있고 서로 대결을 한다. 그러한 긴장감속에서 한국문명은 새로운 문명의 창조가 가능한 문명인데 반하여, 일본문명은 모든것이 들어오면 적당히 비벼버리고 거기서 아름답게 디자인하여 팔아먹는 그런식의 변경이다. 일본문명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혁명이 없는 문명이다. 왕조의 변화가 없다. 동일한 천황제를 중심으로 해서 정권의 교체만 있는 것이다. 막부라든가 장군들의 변화들만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역성혁명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고려왕조가 조선왕조가 지금 이렇게 변하여 왔는데, 일본의 천황제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이(우리나라 단군과도 같은 일본인의 조상신. 그런데 여성신이다.)에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 천황이다. 그러니깐 일본은 기본적으로 정치혁명이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그것이 근원적으로 한국문명과 일본문명의 차이이다. 한국문명의 창조성과 일본문명의 심미적인 디자인성을 양쪽으로 결합하는데 동아시아문명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라고 말한다. 더군다나 일본의 지식인들은 남북의 대결상황의 문제의식의 텐션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러한 텐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결해야만 하는 난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냐고 묻는다(한국 남북문제의 긴장상태는 세계사적 과제상황이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한국지성인의 창조력이며 책임이다.). 얼마나 긴장감이 있고 그러기 때문에 한국문명은 단순한 한반도의 문제가 아니라 금세기 세계문명이 던진 과제상황을 떠안고 있고 그것을 해결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상황이 오히려 한국문명의 밝은 미래이다 라고 일본지식인들은 부럽게 말한다.

쿠로주미 마코토 : 지식이 엘리트의 소유물이 될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민중속에서 교류하면서 지식을 생산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교류를 앞으로 오는 미래세대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올 : 앞으로 오는 세대에서는 어떠한 지식의 추구로 해서 지식을 소유한 자가 반드시 더 훌륭하다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기와 가능성을 서로 살려가면서 존중해가면서 과거의 획일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사회가 올것이다. 그런 이해로서 일본유학과 한국유학이 상호간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계기로 이러한 자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끝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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