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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제19장) `허물이 있으면 고쳐라!`
 홍기성 
  | 2001·07·15 17:42 | 조회 : 3,384 |
제19강 허물이 있으면 고쳐라!
지난번에 현현역색이라는 말을 가지고 긴 이야기를 했었는데, 한마다만 더 한다면 동진의 환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야담같은 이야기들이다. 환현은 굉장히 현자로서 은중감이라는 사람을 방문하는 이야기다 (東晋(동진)의 桓玄(환현)이 은중감(殷仲堪, 殷荊州)을 방문하는 고사는, 유의경(劉義慶)이 편집한 여당사화집 [世說新語]에 실려있다.). 은중감을 만나러 낮에 환현이 갔는데, 은중감이 정자에서 애첩하고 정사를 벌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은중감이 진탕거기에 빠져서 아무리 환현이가 면회를 신청해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 환현이 돌아갔고, 나중에 환현이가 은중감이를 다시만나서는 그때의 일을 말하면서 "네가 그럴 수 있냐"라고 말했다. 은중감이는 정말로 그때 환현이가 온줄 몰랐다고 말했고, 환현이가 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賢賢易色"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현인을 현인으로 대접하기를 여색과 즐기는 것과 바꾸었을 것이라 한다. 벌써 위진시대만해도 현현역색이라는 말이 분명히 이러한 해석이었다. 이러한 [세설신어]의 설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군자불중칙불위(위엄), 학칙불고. 주충신, 무불여기자, 과칙물(없을)탄(꺼릴)개(고칠).")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무게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해도 견고하지 못하게 된다.  우러나오는 마음과 믿음있는 말을 조로 하며,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삼지 아니하며,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다."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다음에 나오는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는 자한편 24장에 똑같이 다시 나온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논어의 각편 20편이 독립된 일종의 책들이다([논어]는 20개의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이것이 일시에 기록된 공자의 어록으로 간주되었지만, 오늘의 문헌비평은 각편의 독립적으로 400여년에 걸쳐 형성된 문헌들임을 말해준다.). 4복음서에 보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중에서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은 공관복음이라고 한다(共
觀福音書, the synoptic Gospeis, 공통된 관점에서 구성된 예수의 생애기록,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서). 공관복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료가 같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가 오천명에게 二魚五餠(이어오병)으로 먹였다는 것이 공통되게 나온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른 기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공관복음이라 하여 공통의 관점에서 편집된 요새말로 버젼만 다른 것이라 한다. 요한복음은 같은 복음서이지만 체제가 아주 다르다. 3복음서보다는 후대에 성립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상당히 후대의 신학적 관점이 첨부되어 있고, 요한복음은 굉장히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이 짙게 들어가 있다([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보다 예수의 인가적 측며이 잘 드러나 있는 동시에, 예수를 로고스의 화신으로 보는 영지주의(Gnosticism)적 신비주의 색체가 짙게 깔려 있다.). 상당히 요한복음은 문제가 복잡하다. 어떤의미로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굉장히 인간적인 측면이 들어가 있는 반면에 공관복음서보다 예수를 신격화시키는 독특한 영지주의적 바탕에 기거한 신학이 있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상당히 복잡한 복음이라고 한다. 마태 마가 누가에서 같은 말이 나오듯이 논어에서도 같은 말이 여려군데에서 나온다고 한다. 논어에도 그러한 것을 주목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것을 텍스트 애널시스(문헌분석, Text analysis, 문헌비평이라고도 한다. 모든 고전은 일단 기자(그것을 쓴 사람들)의 역사적 상황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를 해들어가야 한다. 지금 여기에 나오는 主忠信~ 이하가 자한편에 나온다면 앞에 있는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와는 다른 파편들이 한군데 모아진것으로 본다. 그래서 여기서 끊어서 해석할 수도 있고, 연결을 해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군자불중즉불위, 학칙불고" 공자가 말하기를 무게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즉불고"를 "군자불중즉불위"와 연결해서 해석하면, 군자가 경솔하면 즉 인간이 무게가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경솔하게 행동하면 권위가 없다. 그리고 배워도 견고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경박하면은 위엄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배워도 그러한 배움은 어떠한 존재를 밑바쳐주는 단단한 학문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혹자는 주충신~ 과 앞의 구절이 다른 파편이라면, "구자불중즉불위"와 "학즉불고"는 완전히 분리하여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군자는 무게 있게 행동하지 않으면 권위가 있지 않고, 군자는 열심히 배우면 인간이 고집스럽지 않고 개방된다. 즉 주자는 좋은 의미로 해석한 것 이다. 배울수록 사람이 고집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고집스럽다는 것과 주관이 강하다는 것에서, 학문에 있어서 고집이 강하다는 것은 잘못된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자꾸만 배울수록 배우는 것에 점점 집착하여 거기에 갇혀가지고, 固자를 보더라도 갇혀있는 모습으로 점점 사람이 좁아져서 우물안의 개구리격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중에 공부는 무지하게 했는데, 공부를 무지하게 하고난 후에는 사람이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부를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면은 고집과 편견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람이 틔어져야 한다. 모든것을 포용할 수 있고 같이 더불어 구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혼자만 고집스러우면 안된다. 신앙의 본질은 고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主忠信" 공자는 끊임없이 信이라는 말을 물고 늘어진다. 신이라는 것은 항상 인간의 말과 관련이 있다. 신은 믿음이라는 것이 아니다. 전신(電信)이라는 말에서 信은 편지의 뜻이 있다. 옛날에는 편지라는 것도 사람의 말로 왔다갔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말로 信兒(xinr)도 북경 토속말로는 소식의 뜻이 담겨있다. 신이라는 것은 한문에서 전부 사람의 말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忠信이라는 것은, 충이라는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으로 로열(충성)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고 믿음이 있는 말을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삼을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학생이 데이트를 하면서 자기보다 못생긴여자를 데리고 나와서는 자기가 잘보이게 할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그러면 안된다고 한다. 자기보다 잘생긴 여자를 데리고 나가더라도 당당하게 상대편의 마음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사람이라는 것이, 공자님 말씀에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은 훌륭한 친구를 갖는 것이 복이라고 한다. 우리 젊은이를의 가장 걱정은 친구 잘못사귈까봐 걱정이다. 그 문제로서 다 해결이 된다. 우리 젊은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를 삼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만 나의 발전이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보다 나은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도올 김용옥 자신이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본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라 각 방면에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도울 김용옥은 고개를 숙이고 배웠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정보를 집어넣은 것이라고 한다. 책만 보아서 많은 정보를 언제 집어 넣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건축사에 취미가 있어 건물을 보니깐 건축사적으로 어떻게 된것인지 모르겠다고 할 적에 지금 건축학 공부를 다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건축방면에 뛰어난 사람에게 찾아가서 배우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사람이 말하는 핵심을 캐취해서 책방에 가서 책을 슬슬 긁어와서 보면은 된다. 그러면 다시간내에 엄청난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친구를 만나서 핵심적인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핵심적인 깨달음을 언제 사전을 찾고 앉아서 공부를 하겠느냐고 말한다. 도올 김용옥이 나중에는 좋은대학을 갔지만 젊은시절은 비리비리했다고 한다. 그래서 감사한 것이 만약 서울농과대학에 수학을 단 2점이라도 맞았더라면 간장공장공장장이 되어서 여러분들에게 좋은 간장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항상 자기보다 나은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항상 좋아하고 따라다니면서 배울려고 한다면 사람은 되는 것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안달거리고, 커트라인 운운하면서 발을 구르고 있다면, 차라리 자기보다 못한 친구를 안사귈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은 해결이 되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중에 "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인생이라는 것은 실수가 없을 수 없다. 과실이 없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알렉산드 포우드(Alexander Pope, 1688~1744, 영국의 시인이며 풍자 문학가, 영국의 시인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람중의 하나, 대표작 An Essay on Criticism(1711), The Rape of the Lock(1712), The Dunciad(1728))가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어쩔수 없는 사람의 일,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신의 일" 라고 했다. 인간은 어짜피 허물을 저지르는 존재이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느냐고 한다. 포우프는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인간은 허물을 저질르지만 용서를 하는 것은 하나님인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러한 멋있는 시구가 통하지 않는다. 절대 인간의 허물은 하나님이 용서를 하지 못한다. 이런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양사상은 더 무섭다라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 인간은 허물을 저질르면 반드시 그것을 자기가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사상이 위대한 것이다. 그래서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勿憚改!"(물탄개)라, 부부싸움도 대개 "나만 잘못했지 않느냐"하고 하면은 그것이 서로간에 인정이되면 된다.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으면 싸울일이 없다라는 것이다. 무언가 창피하기도 하고 "너 그러기냐!" 하면서 고치기를 꺼려 하면서 안고칠라고 싸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살면서 부인이 지적을 하여 무엇이 잘못되지 않았느냐 왜이렇게 늦게 들어오고 술을 먹고 뭐하고 뭐하고....... 우리 생활에서 그러한 것 뿐만아니라 허물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은 고치면 끝나는 것이다. 왜 이것을 모르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왜 허물을 고치는것을 꺼려하는 것이 공자가 말하는 소인(小人)이라고 한다. 허물을 고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소인이다. 그래서 허물을 고치기를 꺼려하는 사람, 그러한 사람은 평생을 허물속에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내 잘못이 인정이 되면 과감하게 고쳐라! 그리고 고치면 그것으로 끝난다."     (나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나의 허물은 나만이 용서할 수 있다. 그것은 허물을 고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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