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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제18강) `女人과 賢人`
 홍기성 
  | 2001·07·15 17:40 | 조회 : 3,512 |
제18강 女人과 賢人
학이편 7장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자하왈: "현현역색; 사부모, 능갈기력; 사군능지기신: 여붕우교, 언이유신. 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  자하가 말하였다: "어진이를 어진이로서 대하기를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 해라. 부모를 섬길 때는 있는 힘을 다하여라. 임금을 섬길 때는 그 몸을 다 바쳐라.  친구와 사귈 때는 믿을 수 있는 말만 하여라. 그리하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 일컬을 것이다."
이 구절은 앞의 공자의 말씀과 맥락이 닿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자하왈로 되어 있다. 자하(성은 卜, 이름은 商44세 연하, 자장, 자유와 함께 공자말년제자 3걸는 공자의 말년제자중에서 3걸이었다. 또한 제자중에는 증자가 있었고, 유자가 있었다. 증자 유자는 기본적으로 노나라 사람이다. 자하 자장같은 사람은 외국사람이라고 한다. 유자와 증자는 곡부에서 터주대감의 헤게모니를 잡았기 때문에 子를 붙였다. 논어에서 유일하게 공자와 같이 높여주는 子는 유자와 증자뿐이다. 유자 증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중에 가장 유명한 제자들은 자하와 자장 자유 3걸이었다.  지난번 전남대 강의에서 繪事後素(회사후소)를 물은 사람이 자하였는데, 이 사람은 성이 복씨이고 이름이 상이다. 복이 성이라는 것을 보면 아마도 무당이나 점치는 사람의 집안이었을 것이다. 옛날의 姓(성)씨는 그냥 거저 생긴것이 아니라고 한다. 顔(얼굴 안)씨라는 성은 얼굴을 화장하는 직업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무당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자하는 복상인데, 공자는 자하를 부를때, 상이라고 했다. 자하라는 사람은 晋(진)나라의 溫國(온국)사람으로 이것이 위나라라고 하기도 한다. 자하가 살고 있는 곳이 진나라와 위나라의 경계에 있었던 모양이다(온국은 진나라)에 속하지만 위나라에 속한적도 있어서 자하의 국적에 대한 기술이 엇갈린다.). 자하는 공자교단에 남아 있지 않고 곡부를 떠난다고 한다. 중국이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라고 했을 때, 노나라의 공자가 春秋(춘추)라는 역사책을  편찬하였다는데 이 시기가 바로 춘추시대이다. 전국시대라는 것은 전국이라는 역사책의 시기에 해당되는 시기라고 보는데, 전국의 시기를 여러시기로 보지만 진나라가 분열하여 韓(한) 魏(위) 趙(조) 3국으로 됨, BC 403년을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자하는 곡부를 떠나 위나라로 가서 위나라의 위문후(魏文侯 BC445~396재위, 전국시대 위나라의 건립자, 이름은 斯(사),  자하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강력한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밑에 들어 갔다. 위문후는 자하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무릅을 끓고 배웠다고 한다. 위나라에 가서 자하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고 위문후와 더불어 자하밑에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어 위나라가 강력한 나라로 성장했고, 자하와 위문후를 중심으로 한 학단이 형성되었다(위문후는 이극(李克)을 재상으로, 오기(吳起)를 장수로, 서문표(西門豹)를 지방장관으로 거느리면서 모범적인 정치를 실현하였다.). 자하밑에는 유명한 병법의 오기라든가 서문표라든가 이극이 모여들었다. 위문후의 모델을 따서 제나라의 위(威)왕에서부터 선(宣)왕에 이르기까지 직하라는 학파를 형성하였다(稷下(직하), 제나라의 威(위)왕(BC 357즉위)부터 宣(선)왕(BC 301년)에 이르기까지 크게 번성한 대학자들의 집단, 전국시대의 최대사상운동). 직하라는 것은 제나라가 위나라의 자하와 문후의 관계로 형성된 스쿨을 모방하여 제나라의 위왕에서 선왕에 이르는 50년간 많은 학자들을 대접하여 사방에서 모았고, 중국 산동성의 치박이라는 곳에 임치성은 조선의 한양도성에 성문이 8개 있듯이 임치성은 13개가 있었고 그 당시 인구가 60~70만이 살고 있는 대도시였다.  그 중 서문의 이름이 직문으로 서문밖에 많은 학자들이 모였고 대부 대접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많은 학자들이 모여 제선왕때 융성하였는데 이 사람들을 직하선생이라고 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맹자같은 사람이다(맹자도 직하에 머물렀던 대표적 사상가의 한사람이다. 선왕과의 미요한 관계로 직하를 떠나는 장면이 [공손추] 下에 잘 묘사되어 있다.). 직하라는 곳은 처음 순우곤(노예출신으로 직하학파의 초대총장에 까지 이른 전위적 인물, 맹자와도 활발한 논쟁을 벌렸다. 제선왕의 브레인으로 제나라를 융성시키고 백가쟁명의 풍조를 일으켰다.)이라는 사람이 총자을 했고, 마지막 총장은 순자(筍子(BC 320~230) 직하학파의 마지막 총장, 그 문하에서 전국 7웅을 통일한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등이 배출되었다.)가 했다. 이 밑에서 이사라든가 한비자등의 법가가 나와서 전국을 통일하는 것이라 한다. 이론적 기초를 닦은 것이 전부 직하라는 사상운동집단이다. 그래서 직하라는 것이 중국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직하학파들의 활약을 담은 유명한 책이 관자(管子,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의 이름을 의탁하여 만든 직하학파의 대선집. 76편이 현존한다. 유가, 도가, 병가의 사회사상이 섞여있다.)라는 책이다. 직하학파에 모였던 사람들의 사상을 모여놓은 것을 제나라의 유명한 관중의 이름을 따서 만든것이다. 이 직하학파의 최초의 모델을 만든것이 자하라고 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증자밑에서 맹자가 나왔다라고 하지만 순자는 자하밑에서 나왔다고 한다(증자-->맹자(성선설),  자하-->순자(성악설)). 자하밑에서 아주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는데, 서문표(西門豹, 자하의 제자, 위문후 시대 업지방의 군수가 되어 미신을 타파하고 개혁정치를 단행)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서문표라는 사람은 얼마나 공자의 사상이  자하를 통해서 이러한 사람의 행적을 통해서 당대에 얼마나 혁명적이었지 잘 나타내는 좋은 예가 된다. 서문표도 자하를 통하여 위문후에게 등용이 되었다고 한다(渟水十二渠(정수십이거)를 건설. 授田(수(줄)전)체제를 기초로 한 濟民(제민)지배체제를 성립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업이라는 땅에 서문표가 군수로 가서 보니깐 동네가 한없이 설렁하고 황량하고 느낌이 이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촌장을 불러서 묻기를 "이 동네가 왜 이렇게 설렁하느냐?"(豹往到업, 會長老, 問之民所疾苦.(표왕도업, 회장노, 문지민소질고.))그러자 동네촌장은 "황하의 물귀신이 매년 부인을 얻는다. 그래서 매년 때가 되면은 三老하고 정현(아전)들하고 이런사람들이 와서 이삼백만냥을 걷어가서 그 중 이삼십만냥을 물귀신(河佰)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쓴다. (苦爲河佰娶婦, 以苦貧. 업三老廷연常歲賦斂百姓. 收取其錢得數百萬, 用其二三十萬爲河佰娶婦.(고위하백취(장가갈)부, 이고빈. 업삼노조(조정)연(아전)상세부렴백성. 수취기전득수백만, 용기이삼십만위하백취부.))이 제사는 이쁘고 젊은 여자가 있으면 점지하여 무녀가 폐백을 들고가서 돈을 들여 여자를 사가지고는 좋은 옷과 열흘동안 좋은 고기와 술로 대접하여 이 여자를 시집가는것 처럼 가마를 태워 물가로 가서 배에 태우고는 배를 띄운다. 그리고 그 배는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다."(始浮, 行數十里乃沒.(시부, 행수십리내몰(빠질)) 이러한 제식을 지내면서 때가 되면 동네가 이렇듯 황량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깐 딸이 있는 사람들은 점점 도망을 간다고 한다. 이것이 盜(도둑 도)가 된다. 도라는 것은 어떤 지역에 속해있지 않는 , 영내에 있지 않는 즉 성읍국가에 속해있지 않는 지역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盜를 이야기 할적에 인용되는 유명한 고사이다. 서문표가 동네에서 사정을 파악하고는 언제 제사가 있느냐고 물었고 제사가 있을 적에 나(서문표)를 부르라고 말했다. 여기서 공자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공자제자들의 위대한활약상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서문표가 강가에 갔더니 三老(토백이 관료중에서 가장 높은사람)와 관속, 호장들을 포함해서 이삼천명이 황하에 나와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三老官屬豪長字里父老皆會, 以人民往觀之者, 三二千人.(삼노 관속 호장자 리부노개회, 이인민왕관지자, 삼이천인.)). 장대한 제식을 하고 무당이 나왔다. 서문표가 무녀를 보니깐 나이는 칠십세정도로 보였고(其巫, 老女子也, 已年七十.(기무, 노녀자야, 이년칠십.)) 그 뒤에는 열명의 제자무당들이 있었다고 한다. 압도적인 제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서문표가 가서 하는 말이 "내가 한번 하백의 부인이 될 여자를 보겠다."라고 했고 그 뽑힌 여자를 보고는 "왜 이렇게 추한여자를 골랐느냐! 여자를 잘 못 골랐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칠십먹은 무녀에게 "네가 하백과 통하는 사람이니깐 네가 하백에게 들어가서 내가(서문표) 몇일내로 여쁜여자를 다시 뽑아 보내겠다고 알려라!"라고 말했다(是女子不好, 煩大巫逼爲入報河佰.(시녀자불호, 번(번거러울)대무핍(가까이할)위입보하백)). 그리고는 사람들을 시켜서 늙은 무녀를 빠뜨렸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는 조금있다가 서문표는 "왜 하백에게 소식이 없느냐"라고 말했고, 서문표는 무녀의 제자무녀를 뽑아 말하기를 "너의 선생이 꾸물꾸물하여 소식이 없으니 네가 들어가서 내가 사흘내로 여자를 다시 뽑아서 보낼 것이라고 화백에게 알려라!" 그러고서는 사람들을 시켜 무녀의 제자를 물에 빠뜨렸다고 한다. 서문표는 빠뜨린 무녀의 제자에게도 소식이 없자 "왜 소식이 없냐?"라고 말했고 늙은무녀의 제자 세명을 빠뜨렸다고 한다. 진짜 나쁜놈인 삼노는 종교를 빙자하여 몇백냥을 걷어들인 협작하는 관리들이었다. 그래서 서문표는 삼노에게 "하백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요번에는 네가 들어가서 하백에게 사흘후에 여쁜여자를 다시 뽑아 보내겠다고 알려라!" (巫逼弟子是女子也, 不能百事, 煩三老爲入白之.(무핍제자시여자야, 불능백사, 번삼노위입백(아뢸)지.)) 하고 말하고는 삼노를 물에 빠뜨렸다. 그러고 나서 서문표는 "왜 삼노까지 갔는데 소식이 없느냐?" 말하면서 아전들과 장노들을 보면서 "이제는 너희들이 들어갈래?"라고 말하자 아전들과 장노들이 엎드려서는 이마에 피가 나도록 벌벌벌 기면서 떨었다고 한다.(皆叩頭, 叩頭且破, 額血流地, 色如死灰. (개고(조아릴)두, 고두차파, 액(이마)혈류지, 색여사회(재).) 그래서 서문표가 "이제는 하백에게 여자를 받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문표는 소위말해서 그곳에 댐을 건설했다고 한다. 이것은 정확한 사실로 오늘날 유적까지 발굴되었다(서문표의 열두개의 갑문이 최근 발견되었다.). 서문표가 댐공사를 하니깐 여기저기서 투정을 했다. 그러자 서문표가 이야기 하기를 "지금 너희들이 나를 씹겠지만 만세에 두고두고 나를 칭송할 것이다."(然百歲期令父老子孫思我言.(연백세기령부노자손사아언.))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사기]에 쓰여져 있다. 이런 이야기를 오늘날 말한다면 뜨끔뜨끔할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공자사상이 이렇게 자하를 통해서 서문표 같은 사람들의 행동까지 역사적으로 정확한 사실이라고 한다.  이런것을 볼 적에 아직도 우리사회가 이러한 수준의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단지 신앙을 빙자해서 헌금을 강요하는 조직은 사교라고 말한다.
賢賢易色을 놓고 해석에 이견이 분분하다. 賢賢은 父父와 마찬가지로 뒤의 父가 목적어가 되고 앞의 父가 동사가 되어 "아버지가 아버지다워야" 한다는 뜻과 마찬가지이다. 즉 현현은 어진자를 어진자로 대접해주고의 뜻이된다. 어진자를 어진자로 대접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역사가 잘될려면 현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古注는 색이 문제가 된다. 색이라는 것은 요즘말로 색골이라는 뜻이다. 뼈까지 색으로 물들었다는 것으로 한문의 세계에서 색(色, 女色 안색 기색 등의 의미로 쓰이다가, 후대에는 불교용어로서 현상전반(色卽是空)을 의미하게 되었다.)이라는 것은 여자라는 뜻과 섹스를 말한다. 이것이 단순히 여자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안색과 같이 얼굴의 표정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여 해석에 어려움이 많이 많다. 그런데 易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바꾸다' '무역하다'라는 말의 뜻이다. 또하나는 '쉽다' '용이하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바꾸다라는 뜻으로 賢賢易色의 古注는 "현명한자를 대접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어라"는 것이다. 무슨말이냐 하면 "현인을 현인으로 숭상하는 그러한 것을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는 듯 해라"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처럼 어진자를 어진자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정당한 말이다. 길거리의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처럼 현명한자를 현명한자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고주이다. 고주는 이처럼 도덕적 구속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다음에 위진남북조시대 황간의 소를 보면은 "현명한자를 현명한자로 대접할 때는 안색을 장중하게 바꾸고 해라"가 된다. 현명한자를 대접할 때는 함부로 대접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易色' 표정을 바꾸고 현명한자를 현명한자로 대접해라로 해석이 조금 바뀌었다. 그러다가 송나라때 오면서 도덕주의가 강화가 되면서 "현명한자를 현명하게 바라볼 줄 알고 여자는 멀리해라"로 해석되면서 易이 가벼이 하라는 뜻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송나라때 주자학의 도덕주의를 나타낸다고 한다(송유의 해석은 주자학의 도덕주의적 이원론. 즉 天理와 人慾의 분열에 기초해 있다.). "현명한자를 현명한자로 대접하고 여색은 가벼히 해라. 그것이 선비이다." 어느 번역이 가장 좋은지를 한번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양백준(20세기 중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유교경전번역을 펴낸 대학자)이가 내놓은 번역을 보면 현현역색뒤의 문장이 부모를 모시는 것과 사군의 말이 나온것 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이야기한 것으로 색은 자기 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실 문제가 있다고 한다. 양백준의 해석은 "자기부인의 현명한 것은 현명한 것으로 볼줄 알고 그여자 얼굴 생김새는 별로 상관하지 말라"가 된다. 이 네가지의 해석이 역사적으로 왔다는 것이다. 이 네가지 해석이 후대로 오면서 잘못되었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억지로 소를 만든다고 하면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학문이 점점 엉터리가 되어간다고 한다(이 경우 주석은 후대로 내려올 수록 원의에서 멀어져 갔다. 독창적 해석의 충동은 때로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낼 뿐이다.). 도올 김용옥이 보면 고주가 맞다고 한다.
"아름다운여인을 사랑하듯이 현명한자를 현명한자로 대접할 줄 알아라!" 
현현이라는 말을 생각할적마다 뼈저리게 와닿는 말이 있다. 동무 이제마(李濟馬 1837~1900, 구한말의 대유의(儒醫). 사상의학의 창시자, 함흥군 천서면에서 태어나 벼슬은 진해 현감에 머물렀다. 대표작 [格致槁] [東醫壽世保元])는 원래 함흥사람으로 이제마의 아버지가 동네에 이진사라고 동네 향시만 패스한 비리비리한 동네에 술집이나 다녔던 사람이라고 한다(이제마의 아버지는 文武 양과에 급제한 진사 이반오(李攀五)였다.).  어느날 어느술집의 딸이 박색으로  도저히 시집갈 희망이 없으니깐 동네의 이진사가 술이 취한김에  그 술집 마나님이 자기딸을 밤중에 슬쩍 집어 넣었던 모양이었다. 이진사가 이러해서 하루밤을 인연을 맺고 열달이 지난후에 이제마의 할아버지(그 할아버지는 명망이 높았던 鄕儒,  忠源公이었다.)는 대가집으로  이진사에게 어떤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 이제마의 할아버지는 직감적으로 이진사가 사고를 쳤구나 생각을 했고, 이제마의 할아버지가 아이를 들여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전날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크고 잘생긴 말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이것이 제주도 말이다"라고 했고 이 말을 어디다 두고 가야하기 때문에 키워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말을 묶는데다가 말을 묶고는 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가 직감적으로 보통아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는 그 아이를 들이고 이름을 제주도 말이라고 하여 제마(濟馬)라고 했다. 이것은 실화라고 한다. 이러한 이제마가 구한말에 명의가 되었고, 동의수세보원(동학혁명해인 1894년 완성, 1900년까지 개고, 1901년 사후에 출판됨)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썼다. 원래 수세보원이라는 책이 중국에 있었다고 한다. 이 수세보원에 대한 책에 대해서 동의보감 하듯이 동의라는 말을 붙여만든것이라 한다. 壽世保源(수세보원)이라는 것은 한평생을 장수하고 원기를 보존한다는 의학적인 용어이다. 이제마를 생각하면 현현역색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닿는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이제마는 구한말에 현인을 현인으로 숭상하지 못하는 사회라고 생각했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이라는 책을 쓰기 전에 격치고(格致槁, 동의수세보원 이전에 집필된 이제마의 명제로서 그의 사상성립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1940년에나 처음 발간되었고, 아직도 세상에 이 책을 아는 이가 드물다.)라는 책을 썼다. 격치(格致, 주자가 [대학]의 격물치지에서 따온 말인데, 청말의 대학자 염복(1853~1921)이 'science'의 번역으로 '격치'를 사용하였다.)라는 것은 격물치지라는 말로써 지금 우리말로 한다면 과학이 된다고 한다. 구한말에 우리는 과학을 격치라고 했다. 과학이라는 것은 일본사람들의 번역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과학을 격치라고 했다. 격물치지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적은 원고로 [격치고]의 마지막에 獨行篇(독행편)이라는 것이 있다. 독행편에서 이제마는 독행이라고 한것은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거기에 가운데 서서 치우침이 없고, 추한세계에 살면서 아름다운 세계를 알면은 흐르지 않아 뇌하부동되어 섞여 나쁜놈이 되는 법이 없다. 이러한 것을 알게되면 자연히 홀로 행하게 된다." (好而知其樂, 則中立而不倚; 惡而知其美, 則和而不流. 知此者, 自然獨行. 獨行自, 不動心. (호이지기락, 즉중림이불의; 오이지기미, 즉화이불류. 지차자, 자연독행. 독행자, 부동심.)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자기가 추한세상에 살면서 아름다운세상을 알면은 和而不流하여 자연히 독행하게되고 독행자는 마음이 흔들리는 법이 없다. 이것이 무슨말이냐 하면은 구한말에 자기가 본 온갖 더러운 인간상들의 분류가 비박탐나(鄙薄貪懦, 인간의 마음의 4가지 유형, 그러나 몸의 유형인 사상(四象)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라 한다. 비천하고 박하고 탐욕스럽고 나약한 것이 비박탐나이고 이것에 대해 욕을 오지게 해대는 내용이 여기에 실려있다. 鄙者恒欲勸勢(비자항욕권세)
薄者恒欲名譽(박자항욕명예)
貪者恒欲貨財(탐자항욕화재)
懦者恒欲地位(나자항욕지리)
비자는 권세를 욕하고, 박자는 명예를 욕하고, 탐자는 재화를 욕하고, 나자는 지위를 욕한다. 결국 이제마가 격치고를 쓴다음에 동의수세보원을 쓴것은 어떤의미에서 동의수세보원의 사상의학의 원천을 따지고 들어가면 온갖 더러운 인간상들을 분류하다가 나온 이론이다. 이것은 분명 이제마의 의식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동의수세보원]의 마지막의 광제설(廣濟說, [동의수세보원]의 한 편명. 인간을 널리 병에서 구한다는 뜻. 그의 의학사상을 총결짓는 결론부분에 해당한다. )에서 결국은 인간의 희노애락에 대한 이야기를 폐비간신을 가지고 애노희락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연결을 시켜서 논한 것이다.
肺(폐), 상초, 哀(애) : 하늘적이다.
脾(비), 중상초, 怒(노)
肝(희), 중하초, 喜(희)
腎(신), 하초, 樂(락) : 땅적이다.
예를 들면 폐가 강하고 간이 작으면 哀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항상 슬퍼하고 이상적이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 비가 강하고 신장이 빈약하면 위장소화가 잘되어 다혈질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화를 잘낸다. 간이 크고 폐가 작은 사람은 땅쪽이 발달되어 항상 희희낙낙하고 사교성이 좋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장족속이 많다고 한다. 비가 약하고 신이 강하면 소음인으로 섹스가 강하다. 그래서 섹스를 해도 지치지 않고,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 족속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폐비간신을 조절하는 것이 이제마의 사상의학이다. 이제마가 이러한 설을 내면서 최후로 쓴말이 바로 지금 "賢賢易色"이라고 한다.
天下之惡, 莫多於妬賢疾能; 天下之善, 莫大於好賢樂善. (천하지악, 막다어투(질투할)현질능; 천하지선, 막대어호현락선.)
천하의 惡은 현명한자를 질투하고 능력있는자를 질시하는 현현역색할줄을 모르는 것처럼 천하의 악이 여기서 더 큰것은 없고, 천하의 선이라는 것은 현명한자를 좋아하고 훌륭한자를 선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위대한 천하의 선은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이 아무리 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다했지만 인간의 모든 질병은 현인을 현인으로 대접할 줄 모르는데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현명한사람을 현명하게 대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보다 나은자에게 배운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현대인의 스트레스의 대부분의 원인은 경쟁구조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기보다 현명한 자들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다.). 이제마의 이야기는 妬賢疾能이라는 것처럼 천하지 다병이 없고, 천하의 인간의 병이라는 것은 현인을 현인으로 숭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천하의 병이 없고, 好賢樂善은 천하의 위대한 약이다(好賢樂善, 天下之大藥也.). 이것이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의 총결론이다. 현명한 자들을 좋아하고, 선을 즐길줄 아는것처럼 이 이상의 약은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결국은 이 구절에서도 자하가 현현역색이라는 것은 "현명한 자를 현명한자로 대접하는 것을 여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해라"라는 이야기야 말로 도올 김용옥이 보기에는 공자사상의 엄청나게 중요한 메세지라고 한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부모를 섬길 때는 있는 힘을 다하여라. 임금을 섬길 때는 그 몸을 다 바쳐라(여기서 임금을 섬길 때는 그 몸을 다 바쳐라는 것은 그 당시에는 전쟁국가로 전쟁에 나가서 싸우는 전투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친구와 사귈 때는 믿을 수 있는 말만 하여라. 그리하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 일컬을 것이다." (行有餘力, 則以學文과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은 모두 공자의 반주지주의적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공자의 반주지주의(anti-intellectualism)는 지식의 무시가 아니라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부모를 섬길때 힘을 다하고, 임금을 섬길때 몸을 바치고 친구를 사귈때는 믿을 수 있는 말만 한다면, 그리고 현명한자를 현명한자로 대접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는 배운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될것은 결국은 배운다는 것에 지나치게 무의미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이냐는 우리의 삶의 본질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해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비록 배우지 않더라도  나는 그를 배운자라 하겠다."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인간으로서 정정당당한 삶을 살면서 그리고 여인을 좋아하듯 현인을 대접하는 마음, 바로 이러한 것이 仁한 마음이다. 이쁜 꽃을 보면 그냥 이쁘다고 하듯이 자기 보다 먼저 깨달은 자들에게 내 마음을 열고 배우라는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편하느냐고 말한다. "저 새끼가 나보다 무엇을 잘한다."라는 좁은 경쟁심리에 빠져서 서로 헐뜯는다.  "저 새끼가 왜 나보다 앞서나가지" "저 새끼가 왜 나보다 진급이 빠르지"라는 이러한 것이 모두 스트레스로 쌓인다는 것이다. 우리 샐러리맨의 고민도 현현역색이면 스트레스가 다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은 이제마선생이 방대한 의학서의 마지막을 현현역색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모든 의학이론이 필요없고 그것이야말로 천하지 대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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