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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공자의 예술관 2부 `훈민정음과 회사후소`
 홍기성 
  | 2001·07·15 17:38 | 조회 : 3,574 |
<특강> 공자의 예술관 2부 "훈민정음과 회사후소"
이방원(고려의 분권화된 권력구조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제로 전환시킨 장본인이 바로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다. 그리고 이방원의 아들 세종으로부터 그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문화적 역할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의 아들인 세종때에 와서 문화가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당시 문화의 축이 바뀌면서 그러한 패러다임이 쉬프트했다. 이방원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고생했다고 한다. 초기 고려의 세력에 있던 사람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정치적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한 이방원의 희생위에 세종이라는 똑똑한 아들을 두어서 다행히 세종이 등장했다. 세종이 나라를 다스리다 보니깐 나라가 어려워서 발상한 것이 우리민족의 문자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이 발상자체가 위대하다고 한다. 당시 집현전의 학자들이 다 반대를 했다고 한다. 신숙주라든지 사육신은 집현적의 소장파이자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 세종은 이러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민족의 글을 만들어야 주체적인 우리민족의 자주적인 생각의 틀이 잡힌다고 했다. 중국에만 의존하여 중국문자를 가지고는 안되겠다고 세종은 생각했다. 중국문자가 있기전 갑골문이 있기전에 말이 먼저 존재했다. 신석기 구석기 시대부터 중국사람들도 말을 했다. 언어는 어디까지나 글자가 아니라 사운드이다(언어는 문자가 아니다. 모든 언어는  일차적으로 소리(system of sound) 세계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소통하는 체계는 사운드체계이다. 우리는 글씨로 소통하지 않는다. 중국글자도 중국사람이 말한 것을 기술한 것일 뿐이다(갑골문도 중국인의 소리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사람도 한국말이 있는데 중국말과는 다르다. 안녕하십니까! 니하오마!는 분명 다르다. 발음도 문법구조도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어+목적+동사'(한국어, 일본어)가 오는데, 중국과 영어는 '주어+동사+목적'이 온다.
세종대왕은 우리가 말이 있는데 이것을 표현할 우리문자가 없으니 우리말을 이두로 표현할려니깐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말을 표현할 수 있게 디자인하라고 했다. "디자인해내라!" 당시 이것이 어명이라도 어떠한 모델도 없이 만들라는 것은 매우 황당한 일이였다고 한다. 건축도 모델이 있는데 아무런 모델도 없이 우리말을 디자인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몇사람한테,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와 같은 열명내외의 사람들에게 요새같으면 프로젝트주면서 돈을 주고 연구소를 만들게 하였다(훈민정음의 집필자는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8인이다. 세종대왕 자신도 문종과 함께 훈민정음창제에 손수 깊게 관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상에 그렇게 인간의 한민족의 말을 몇년간에 몇사람이 만들어 그것이 몇백년을 쓸수 있는 지속된 문자가 유례가 없다라는 것이다. 파스파문자도 이처럼 만들었지만 다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파스파 문자, 1269년 중국원나라 국사인 파스파가 쿠빌라이의 명을 받아 몽골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든 문자, 원나라의 멸망과 더불어 폐기됨). 왜냐하면 맞지 않아서 그랬다. 중국문자는 자그마치 몇천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한글을 만들기 전에 집현전의 학자들은 중국말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신숙주 성삼문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여러번 들어갔다고 한다( 신숙주(1417~1475), 성삼문(1318~1458)과 함께 '중국을 열세차례나 왕래하여 중국성운학을 공부하였다.). 중국말은 발음기호로 표현할 수 없다. 중국말은 뜻글이다. 중국에서 이러한 뜻글을 가지고 발음을 나타내는 것은 고민스러운 것이라 한다. 한자는 발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라는 것이다. 중국의 뜻글을 발음으로 표시하는 반절(反切, 한자의 음을 표기하기 위하여 두개의 한자를 조합하는 체계, 上字가 聲母이고, 下字가 韻母이다.) 이라는 특이한 체계가 나온다. 이러한 반절로 東을 德紅節(덕홍절)이라고 한다.  여기서 德이라는 것은 중국사람들은 성모라고 하고 紅을 운모라고 했다. 성모라는 최초의 자음만을 떼어낸다. 그리고 운모에서는 자음을 떼낸 후반부를 취하면 東(동)이라는 발음이 나온다(東: 德(聲母, 최초의 자음)+紅(韻母,나머지 부분)). "가" "나" "다" "아"에서 앞의 자음은 홀로 설 수 없는 의존적인 소리이고(닿소리, 자음), 가 나 다에서 공통된 "ㅏ"소리는 홀로 설수 있는 독립적인소리이다(홀소리, 모음). 여기서 중국사람들은 앞의 최초의 사운드만 맞추고, 나머지 운모를 결합시키면 東의 발음은 "동"이 되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시조에서 운을 맞춘다라는 것은 성모를 빼고 운모를 맞춘다는 것이다(漢詩는 첫행의 마지막 글자가 운의 기준이다. 2,4,8행의 마지막 글자는 그 기준음과 같은 운의 글자이어야 한다.). 東은 tung로 실제발음된다. 중국사람들은 t는 성모이고 ung는 운모가 된다. 그래서 tung이라는 덕홍절이 된다. 그런데 이것은 운모인 경우는 복합절이 된다고 한다. 복합절인 ung는 다시 u와 ng로 나누어진다. 중국사람들은 성모와 운모의 이분법적 체계를 택했다. 그런데 집현적 학자들이 중국말을 조사해보니 우리나라말은 이분법적 체계로는 적합하지 않다하여 삼분법적인 체계를 사용하였다. 즉 東에서 t가 있고 중간에 모음이 들어가고 다음에 받침이 들어간다는 것이다(중국어:이분법:성모와 운모,     한국어:삼분법:초성,중성, 종성). 그러니깐 東은 우리나라말로는 ㄷ과 ㅗ와 ㅇ으로 된다. 그러나 중국말로는 ㄷ과 ㅗㅇ으로 삼분이 된다. 중국이 경우 이분이 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은 C(자음)++C(자음)가 된다.  집현적 학자들은 C(자음)에 해당하는 가능한 닿소리를 다 조사를 했다고 한다. 가능한 우리의 홀소리는 열일곱개가 되었고, V(모음)라는 모음을 열한개를 찾아냈다고 한다. 우리의 닿소리를 보면은 牙舌脣齒喉(아설순치후)音이라하여 오행의 목화토금수의 원리를 맞춘것이다. 그러면서 집현적학자들의 말로는 ㄱ ㄴ ㅁ ㅅ ㅇ 의 메이저 닿소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음:木:vetar, 설음:火:alveolar, 순음:土:labial, 치음:金:dental, 후음:水:glottal) 이것이 얼마나 체계적이냐 하면은 ㄱ와 ㅋ가 영어에서는 g와 k가 되는데, g와 k는 형태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ㄱ과 ㅋ는 형태적으로 디자인이 체계적이고 간단하게 되어 있다라는 것이다. ㄴ은 ㄷ으로 가고 ㄸ으로 간다. 훈민정음해제를 보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말하는 것은 ㄱ를 발음하면 혀가 ㄱ으로 구부러지는 느낌이 들고, ㄴ을 하면 혀바닥이 ㄴ으로 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훈민정음은 인간의 발성을 그러한 무형의 체계를 디자인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영어의 알파벳보다 우리의 알파벳은 체계가 있다. 오행의 원리에서 음성의 기관의 모습을 가지고 무형의 세계를 디자인한 것이다. 그러면 홀소리를 가보자! 우리동양의 삼재(三才)인 天地人사상에서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가운데 氣가 있는데 氣는 사람이다.  ㅡ은 땅이고 ㅣ은 사람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다하여 .는 하늘이된다. 이것이 천지인으로 이것을 디자인 한것이다. 이것을 조합하면   
                   ㅛ
                   ㅗ
             ㅕㅓ     ㅏㅑ
                   ㅜ
                   ㅠ
된다. ㅛㅗ와 ㅏㅑ는 양성모음이 되고, ㅕㅓ와 ㅜㅠ는 음성모듬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막히 디자인이 세상에 어디있느냐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심플한 스트럭췌를 가지고 양성모음 음성모음을 조합하여 우리의 발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결했다. 이러한 홀소리 닿소리를 사각의 우주를 정하여 위상을 정했다.

     -------
    ㅣC   V ㅣ
    ㅣ    C  ㅣ
     --------
그래서 홀소리를 고정하여 받침을 넣었다. 즉 위상을 만들어 배열하여 위치를 고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한글이 탄생한 것이라 한다. 이러한 도상을 가지고 단순하면서 아주체계적으로 담아놓았다는 것이 아주 기막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창조적이고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체계적이고 가장 단순한 도형의 형태로 가장 복잡한 인간의 발성체계를 담을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 이상의 창조는 없다라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한국인들이 몇명이서 몇천년 갈 우리의 민족의 언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면 과연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발상이 있느냐고 말한다.
자하(子夏, 성이 卜이고 이름이 商이다. 44세 연하, 子游 子張과 더불어 공자말년교단의 삼걸, 위문후의 스승이 되었다.)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질문을 하는데, 자하는 위나라의 문후에게 카운셀러를 하면서 유명한 학원을 경영하면서 사상운동을 시작했고 제나라의 직하학파의 모델이 되었고 그 모델에서 중국의 맹자나 순자를 태어나게한 위대한  문화운동을 전개한 사람이다. 그런데 공자를 예술가로 볼때, 공자를 화가로 보느냐 음악가로 보느냐는 것이다. 공자는 역시 화가라기보다는 음악가이다. 공자의 예술의 기준은 음악이다. 공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노래였다고 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흥분해서 그사람에게 노래를 시키고 항상 따라 불렀다는 것이 논어에 나온다. 그만큼 노래를 좋아했다. 중국에서는 노래를 시(詩는 peom이 아니라 song이다.)라고 불렀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는 공자에게 있어 노래의 가사로 존재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관저(關雎)라는 하는 시경의 첫수에서 "關關雎鳥 在河之洲" 관관이라는 말은 의성어로 "까악 까악"의 소리를 나타낸다. "관관저조 재하지주"는 황새같은 새가 "까악까악"울면서 황하의 삼각지의 모래톱에 앉는 모습이다. 그리고 "窈窈淑女 君子好?"갑자기 하늘거리는 저 아름다운 여인이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라는 것은 공자가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사내라는 의미이다. 사내의 좋은 배필이라는 남녀의 사랑의 이야기인데, 처음의 출발은 "까악까악"으로 출발한다. 이것을 흥(興, [시경]의 전문용어로 인간의 감정을 일으키는 상황묘사, 주제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이라고 한다. 그 시경의 구조는 노래가 주제와 무관한 어떠한 흥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시경의 세계라고 한다. 시경은 재미있고 오묘하다. 공자가 삶에서 이야기하기를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흥어시, 입어예, 성어악)이라고 했다. 공자의 삶이라는 것은 詩로부터 시작한다. 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흥입성이라는 것은 사실은 공자가 한 인간을 평가할 때, 자기의 삶을 평가할 때 한 이야기 일 것이라 한다. 이것은 작은 시간에서 일어난 체험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생의 전체를 포괄한 이야기다. 
공자는 지금 시라는 것은 단순한 노래일 뿐만 아니라, 공자는 모든 정보의 교류가 없는 시대에 노래를 통해서 어떻게 인간을 교육시키느냐는 것이다. 노래를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고 노래를 통해서 인간의 감정을 다스리고 노래를 통해서 정치를 표현할려고 했다. 노래를 통해서 항상 자신이 누구를 만날적에 춘추좌시전에서 진나라의 명재상인 조문자가 정나라를 방문할 적에 일곱명이 나와서 마중을 하면서 하는말이  "그대를 보지 못해 내 마음이 두근두근 아! 이제 그대를 보고 그대를 만나니 내마음 가라앉네"(未見君子, 憂心仲仲, 亦旣見止, 亦旣覲止, 我心則降. (미견군자 우심중중 역기견지 역기근지 아심즉강))라는 정나라의 연애시를 읊었다고 한다. 외교 사신이 올적에 이러한 노래를 불러 대접을 한것이다.옛날 시대에는 이러한 노래들이 외교사신 접대에 쓰였다.
立於禮 노래로 인생을 시작해서 노래의 인생이라는 것은 예를 갖추는 것으로, 강의를 듣는것도 하나의 예이고 강사가 열심히 강의하는 것도 예이고 강의실에서 헤어질때도 예이고 예인것이 아닌것이 없다. 예라는 것은 삶의 질서이다. 인간이 그러한 예를 통해서 립한다. 제일 마지막에 인생이라는 것은 악에서 이루어진다(成於樂)는 것으로 공자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것은 악에서 이루어진다. 사실은 악이라는 것이 음악에서 인생은 이루어진다라고 하는데, 음악대학이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도올 김용옥이 하바드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국립극장에서 판소리를 듣고 있다가 관객들이 창자의 리듬을 타면서 "좋~지" "얼씨구"를 하면서 기막히게 들어맞히면서 추임새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도올 김용옥이 추임새를 따라 해볼려고 "얼씨구"라고 했는데, 극장안에서 자기 혼자만 얼씨구소리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피하기도 하고 유학생활 10여년을 하면서 "내가 한국사람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추임새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고, 그러면 북을 배우라고 해서 "저기 극장에 앉아있는 북을 치는 사람이 누구요"라고 물었고 그 사람이 김영환선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수소문을 해서 찾아갔다고 한다. 꼬린내나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뒷골목을 지나 어느 집에 혼자 단칸방인 셋방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고수가 이런곳에서 산다는 것을 보고 도올 김용옥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그 노인에게 절을 하고 북을 배우러 왔다고 하니깐! 도올 김용옥은 북을 치는 것이 복잡한 이론이 있고 초급 중급부터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노인은 아무생각도 없이 "앉게"라고 답하고는 북을 굴러주고 북채를 던져주고는 자세를 잡더니 그냥 따라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대금을 배울려고 정강생선생을 찾아갔더니, 대금을 배울려면 악보가 있어야 되는데 "악보로 배우면 국악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내 입모양을 보고 따라해라!"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직관이 세계이고 과정이 없는 세계이고 곧바로 직입하는 것이다. 동양예술의 세계는 절차가 없이 그냥 들어가는 것이고 맨투맨으로 그냥 들어가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악이라는 것은 곧 作이다. 악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가야금 산조를 배우는 것 또한 나의 창조라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요새처럼 배운다라는 것이 없다. 배워서 내가 산조를 친다는 것은 나의 느낌을 가지고 친다는 것이다(樂은 作이다. 작이란 창작이다.). 선생을 따라 하면서 치면 그것이 바로 내 산조라는 것이다. 악이라는 것은 요새말로 작곡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작곡자와 연주자가 분리되지 않았다(전통음악에서는 작곡자와 연주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작곡자 따로 연주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면 그것이 악이고 바로 작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나의 삶을 창작하는데서 완성된다. 그것이 成於樂의 의미이다.
자하라는 사람이 그래서 공자한테 시경의 어느구절을 인용하는데, [衛風]의 석인([시경] [위풍]의 노래이름, 위나라 군주부인 장강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노래)편에서 碩人(석인)이라 함은 키가 큰 여자를 말하는데 위나라 군주의 왕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라고 한다. 여자가 군주의 부인으로 굉장히 섹시하고 근사했던 모양이었던 하늘하늘거리는 손결의 모습이라든가 눈썹이라든가하는 묘사가 대단하게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巧笑천(예쁠)兮, 美目盼兮."(교소천혜, 미목반(눈 예쁠)혜(어조사 혜))  "아름답게 웃는 보조개의 모습이여, 그 아름다운 눈이여"에서 눈이 아름답다는 기준은 흰자와 검은자의 경계가 명확한 것이라고 한다(盼(반) 눈의 흰자위와 까만 눈동자가 완벽하게 분별되는 모습의 형용).  이것이 흐리멍텅이 되면 썩은 동태눈깔이 된다고 한다. 현재의 시경에는 앞의 두구절뿐이 없는데, "素以爲絢兮"(소이위현(눈부시게 빛남)혜) 소를 가지고서 빛나게 한다 또는 장식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뜻이냐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을 형용한 노래구절인데 자하가 공자에게 물었고, 공자는 "繪事後素"(회(그림)사후소)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회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후소라는 말이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라는 것은, 힌옷을 소복이라고 한다. 정약용선생이  강진에 내려오면서 부인을 그리워하며 흰치마에다가 난초를 그려서 부인에게 보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素(힐 소)" 즉 힌천 후에 오는 것이다. 힌천에 바탕이 있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인간의 힌바탕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인간의 교육이라든가 교양의 세계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는 흰바탕에서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 주자의 신주이다. 그런데 도올 김용옥은 이것이 개똥이라고 한다. 주자의 신주의 해석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회사후소라는 것을 많이 걸어놓았다라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회사후소를 이렇게 해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자의 이 해석은 이미 宋나라때 주이다. 고주는 한대(漢代)이다. 송나라때 그림과 한나라때 그림은 다르다는 것이다. 송나라때 그림은 수묵산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화하면 수묵산수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동양화라는 것이 서양화가 들어오면서 채색이 되었다고 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고구려벽화를 보면 수묵산수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나라 당나라의 그림모두가 전부 채색화라고 한다. 모든 중국의 그림은 원래 채색화라고 한다. 그것이 소위 위진남북조를 거치면서 수당에 거쳐 불교가 들어왔고, 불교의 세계관인 "色卽是空 空卽是色 -반야심경-"(색즉시공 공즉시색) 색깔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깔이다. 이러한 사상이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수묵산수화가 태어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수묵산수는 불교적 세계관이 들어오면서 채색화가 空化(공화)되어간 것이다(수묵산수는 채색화가 공화되어간 것이다. 그 효시로서 盛唐의 왕유(王維, 699~759)를 들 수 있다. 왕유는 불교사상에 심취하여 독특한 화풍을 창조, 후대 문인화의 조종이 되었다.). 그 채색화의 현란함이 단순한 묵과 종이라는것이 나오면서, 발묵의 농담으로 모든 인간의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위대하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에 발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작 대단하고 백자가 유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청자의 색깔이 점점 세련되고 세련되어야 나오는 색깔이 백자라고 한다(백자는 청자의 완성이다.). 색깔이 없는 것이 후대라는 것이다. 공자시대에는 수묵산수화가 없었다. 문법적으로 보아도 後素라는 것이 素뒤로 올 수 없는 것이다. 繪事라는 것은 素가 가장 뒤로 오는 것이다. 즉 素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素라는 것은 힌물감이라고 한다. 모든 그림을 그리고 마지막 그림의 최후의 완성을 힌물감으로 그려 완성했다는 것이다(後素는 莊姜이 얼굴에 흰분을 발라 화장을 완성하는 것처럼 힌 물감으로 채색화를 완성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공자의 말을 듣고 자하가 그러면  "禮後乎?" "예가 가장 뒤에 오는 것이 겠군요?" 라고 말했다. 다시말해서 인간의 모든교양을 습득하고 예라는 것으로서 인간을 바로잡을때 그 그림은 완성되는것이 아니냐라고 자하가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하기를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巳矣"(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사의) "나를 깨우치는 자는 상이로구나"하면서 공자가 극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고 한다. 여기서 도올 김용옥이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 동양의 가장 중요한 화로는 사혁(謝赫, 南朝 제나라의 화가, 세밀한 인물화에 뛰어났다. [古畵品錄](AD490)이라는 미술평론집을 발간)이라는 사람이 [고화품록]이라는 유명한 27명의 화가들을 품평한 책이다. 사혁은 육품에 능한자가 없다하여 통탄하여 [고학품록]의 서문에 육품을 제시했다.
1. 氣韻生動(기운생동)
2. 骨法用筆(골법용필)
3. 應物象形(응물상형)
4. 隨類賦彩(수류부채)
5. 經營位置(경영위치)
6. 傳移摸寫(전이모사)
여기서 1과 2, 3과 4, 5와 6이 무엇인가 짝이 있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그리고 6에서부터 3까지는 전이모사라고 해서 옛날사람들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대로 그린다는 모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치와 구도를 잡는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채색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형채를 그려내고 그다음에 골법용필로 들어갔다고 한다.
吳派(오파, 강남의  吳?의 沈周를 시조로 하는 문인화풍)와 浙派(절파, 절강성의 ?進을 시조로 하는 직업화풍)들이 있었는데 동기창이라는 사람이 남종화 북종화의 개념을 만들어서 북종화는 화언(?)화가들을 중심이고 남종화라는 것은 문인화중심이라고 했다. 절파들은 면을 과감하게 기교있게 쓰고 문인화라는 것은 붓이 휘날려서는 안되고 수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언화가들이 오파들의 기법을 마스터하면서 명말에서 청대로 오면서 문인화의 특색이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즉 문인화와 직업화가들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도올 김용옥 같은 학자들이 그리는 사람들이 핏대가 난다는 것이다. 화언화가들이 문인화가들이 흉내를 냈다고 한다. 물론 테크닉면에서는 화언화가들이 뛰어났다. 그래서 문인화들이 전통적인 기법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개성주의로 나갔다. 석도와 팔대산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고 한다. 팔대산인에서 청나라로 오면서 수묵산수화가 세세한 공필이 없이 극단화되었다고 한다. 즉 한 필로 붓을 휘날렸다는 것이다. 소위말해서 골법용법이라는 것과 기운생동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골법용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形似(형사, 형체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뎃생의 기법)의 문제이다. 옛날에는 수묵산수가 아니라 채색산수화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정물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예들들면 나중에 청나라때 오면 기운생동론이 오해가 되어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기운생동이라는 것이 발묵이라든가 붓을 움직여 그리면 거기서 기운이 생동한다는 뜻으로 추상적으로 해석이 되었다. 그러나 원래 사혁이가 말하는 기운생동이라는 것은 전혀 수묵산수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말한  회사후소처럼 기운생동이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골법용필에서 넘어가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골법용필이라는 것은 정물화들에 대한 정확한 형체를 똑같이 표현하는, 어떤 의미로 겸제의 정물화에서 나비그림이라든지 개그림이라든지 또는 솔거의 소나무그림에서 새들이 진짜나무로 알았다는 것들이 일차적인것들이 形似(형사)라는 것이다. 즉 소나무가 정말로 소나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골법용필이라는 것으로 골격이 되는 골법에 용필이 그 있는 사물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들어난다는 것으로 한비자는 제나라의 왕이 화공에게 물었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가?" 화공이 말하기를 "개와 말이 가장 그리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제나라의 왕이 다시 화공에게 묻기를 "그러면 무엇이 가장 그리지 쉬운가?" 화공은 "귀신이 그리기가 쉽습니다."라고 말했다. 왕이 "왜 그러하냐?"고 묻자 화공은 "개와 말은 늘상보는 것으로 똑같이 그리지 않으면 망신당하기 쉽습니다. 귀신은 안보이는 것으로 아무렇게나 그려도 됩니다. 그래서 귀신이 가장 쉽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추상화고 입체파고 다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귀신같은 개똥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한비자]의 이 설화는 구상과 비구상에 관한 인류미술사의 최초의 언급일 것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도올 김용옥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일차적으로 사혁이가 말하는 것은 정확한 형사라고 한다. 그런데 그 형사가 형체만 같은대로 골법이 그 뼈대가 서있는, 그 붓의 법에 의해서 형사를 해도 솔거의 새가 날라왔다는 그 그림의 氣가 韻(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세계는 리듬이 있다는 것이다. 붓질을 해도 생명의 약동에 대한 리듬이 있다면 그 그림은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림이라는 것은 골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운생동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기운생동이라는것이 청나라말기에 타락한 오파니 절파의 말류에서 나오는 발묵의 장난이 아니라 원래 그림이라는 것은 기운생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에서 공자가 초나라에 갔는데, 어떤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았고 그 돼지새끼들이 어미젓을 빨아먹고 있었다고 한다. 돼지새끼들이  갑자기 열심히 어미젓을 빨다 약간 놀란듯이 어미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깐 어미돼지가 죽었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자가 하는 말이 그 돼지새끼들이 사랑한 것은, 돼지새끼들이 무엇을 알겠느냐면서 그들이 엄마라고 젓을 빨았던 것은 형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느꼈던 젓이 나오고 온정이 나오는 그 어떠한 생명으로서 자기들을 껴안아 주던 어미가 죽는 순간 돼지새끼들이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말하기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자기를 보살펴주던 어미의 형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그 형체를 형체로서 만들고 있는 그 무엇을 사랑한 것이다."라고 했다.
예술의 세계라는 것은 기운생동하는 생명이 없이는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갖 형체를 가지고 장난을 해도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민족이 깨어나야하고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문명이라는 것은 인간이 디자인하는 것이지만, 그 문명에서 사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우리삶을 망가뜨리는 모든 디자인은 철저히 배격해야한다. 이제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집을 하나 지을때도 화장실을 하나 지을때도 부엌하나 만들때도 모든것을  창조적으로 주체적으로 요구하고 그러한 심미적 안목을 가지는 위대한 국민이 되어서 이제는 21세기의 다가오는 한국에는 다시는 이러한 썩어빠진 디자인으로 우리국민이 망가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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