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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제12강) `공자삼대 이혼설`
 홍기성 
  | 2001·07·15 17:32 | 조회 : 3,627 |
  제 12장 공자삼대 이혼설
도올 김용옥이 석도화론이란 책을 썼다. 석도(朱若極, 명나라 황실의 적통으로 명이 멸망하자 승려가 되어 대화가가 되었다. 법명은 원제)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아들이라고 한다. 명나라가 멸망할 때, 석두는 네살이었고, 환관이 절간에 놓고 갔다고 한다. 그래서 석도는 스님이 되었다. 석도가 세상이 바뀌고 할일이 없으니깐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석도는 대단한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석도가 말년에 환쟁이로 살다가 죽기전에 "나는 그림이라는 것은 이런것이 되어야 한다"라고 그림에 대한 자기 이론을 써놓고 죽었다. 이것이 [苦瓜和尙畵語錄](고과화상화어록, 석도가 말년에 쓴 그림이론서, 인류 역사상 예술론의 한 백미로 간주되는 걸출한 작품이다.)이다. 대단한 예술론이라고 한다. 중국문명의 회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가 대단하다고 한다. 중국은 대신에 우리민족보다 음악이 조금 떨어진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중국사람들은 정적이라고 한다(중국인 정적인(static)성향, 회화가 탁월.   한국인 동적인(dynamic)성향, 음악이 탁월). 한국사람들은 몽골리안이 말타듯 격정적이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동적이라서 음악이 발달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음악의 천재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에 가면은 중국의 회화의 맛에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팔대산인은 황족으로 나라가 망할때 17살이었고, 명이 망하자 십년동안 벙어리로 미친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이 되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팔대산인의 팔대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가 아니다. 팔대산인의 글씨를 흘려쓰면 이 호는 笑之(소지) 哭之(곡지)로 말할 수 있다. 즉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라는 것이다. 석도라는 화론을 이야기 하면, 첫마디에 이런말이 나온다. "太古無法"(태고무법) 태고에는 법이 없다라는 것이다. 환쟁이들이 무슨법으로 그림을 그리느냐는 것이다. 누구는 무슨파이고 누구는 남종화이고 누구는 북종화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석도는 태고에 무슨법으로 그림을 그렸느냐는 것이다. 얄타미아동굴의 벽화를 그린사람이 스승제자가 있어 그림을 그린것이 아니라 그냥 그렸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무슨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석도는 다음에 "太朴不散"(태박불산) 박은 통나무(모든 가능성의 함장태, 통나무가 흩어져서(散) 문명의 그릇(器)이 된다.)의 뜻이다. 통나무라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을 散 즉 쪼개서 문명의 그릇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가장 오리지날한 통나무는 쪼개져 있지 않는 모든 가능태로 남아있다. 그런데 "太朴一散, 而法立矣." 태박이 한번 흩어지면 거기에는 법이 있게된다는 것이다. 태고는 무법이다. 그러나 무법상태에서는 예술이 될 수 없다. "천만번의 해지는 저 석양을 바라보아라! 그 이상의 예술이 있겠느냐!" 어느화가의 석양그림에 비교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것을 캠퍼스에 옮겨야 예술이 되는 것이다. 옮기지 않을 때는 무법으로 자기 멋대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自然(자연, 스스로 그러함)이지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자연의 세계는 그 이상의 예술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을 캠퍼스에 옮겨야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예술은 문명의 장난이다. 태고의 무법의 세계에서 유법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 예술이다. 즉 캠퍼스에 들어올때는 유법이 된다.  法於何立? 그러면 법은 어디서 생겨나느냐?는 것이다. 立於一劃(입어일획) 그 법은 한 획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화가가 아무리 장난을 쳐도 한 획을 그으면 우주가 다 들어간다는 것이다. 화선지에 붓으로 찍을 때 아는 것이라 한다. 모든 예술은 일 획이다. 一劃者, 衆有之本, 萬象之根, 見用於神, 藏用於人, 而世人不知. 立一書之法者, 蓋以無法生有法, 以有法貫衆法也.(일획자, 중유지본, 만상지근, 견용어신, 장용어신, 이세인불지.  입일서지법자, 개이무법생유법, 이유법관중법야) "일획의 법을 깨달은 자는 무법을 가지고 유법을 세울수 있고 유법을 가지고 衆法(중법)을 다 꿰뚤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론이 이정도 가면은 동양사람의 예술을 서양이 따라올 수 없다라는 것이다. 중국의 회화는 세계적으로 Top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것이 바탕이 되어 중국의 영화가 제대로 나온다고 한다. 문화라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모여 코팅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예술적 경지를 습득해야 한다고 도올 김용옥은 말한다. 북한의 김정일위원장도 예술로 단련이 되어 포용력이 있다라는 것이다. 예술을 공부해야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도 예술적 바탕이 있어야 되고 순발력이 있는 시나위가 되어야 한다. 공자도 시나위의 명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한다.
지난 시간에 증자가 자기부인을 내쫓았다. 그런데 공자도 자기부인을 내쫓았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혼이라는 말보다 出이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出妻(출처)라 하여 부인을 내쫓는다는 것이다. 증자가 자기부인을 배를 덜 쪘다고 내쫓는 일이 얼마전 최근까지 도올 김용옥이 어렸을 적 천안의 부유한 유씨집안에서 며느리가 화장품을 쓰고 밥을 했다가 밥에서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해서 며느리를 내쫓아 낸일이 있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이 어릴적 이러한 이야기들은 현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증자의 배이야기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예기]에 의하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자가 부인을 출처하고 그 부인은 출처된후 죽었다고 한다. 출처가 죽은후 공자의 아들인 맏잉어가(伯漁) 슬피울고 복상을 삼년을 할려고 했는데, 맏잉어가 정신못차리고 슬피우는 것을 공자가 일년을 지켜보았다가 "야 이 미친놈아! 일년을 했으면 됬지! 무엇을 더 울려고 하느냐?"(伯魚之母死, 期而猶哭. .... 夫子曰: "噫! 其甚之." 伯魚間之, 遂除之.(백어지모사, 기(기약 기)이유(오히려 유)곡. .... 부자왈: "희(슬플 희)!" 기심(심할 심)지, 수(마침내)제(덜 제)지.)라고 공자가 야박하게 욕을 했고, 공자의 아들인 맏잉어는 일년을 곡하고 그쳤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것이 잘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여기서 한 발작 더 나아가서, 맏잉어도 커서 나중에 자기부인을 출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예기]의 정확한 기록이라고 한다. 예기라는 문헌은 중국에 예를 가르치는 위대한 문헌으로 중용 대학이 들어가 있다. 맏잉어의 부인이 출처를 당한 후, 위나라로 가서 서씨한테 재가를 한다고 한다. 맏잉어의 부인이 서씨한테 재가를 해서 잘살았다가 죽었는데, 잉어의 아들인 중용을 지었다는 그 유명한 자사가 자기 엄마가 죽었으니 공씨사당에서 슬피울었다고 한다. 자사제자들은 그 여자는 서씨인데 왜 공씨의 사당에서 곡을 하느냐고 했고, 자사는 다른사람 몰래 다른데 가서 울었다는 것이다(子思之母死於衛, 赴於子思, 子思哭於廟. 門人至曰: "庶氏之母死, 何爲哭於孔氏之廟乎?" 子思曰: "吾過矣, 吾過矣." 遂哭於他室. (공자지모사어위, 부(부고할 부)어자사, 자사곡어묘. 문인지왈: "서씨지모사, 하위곡어공씨지묘호?"  자사왈: "오과의, 오과의." 수(마침내)곡어타실.)). 이것이 [예기]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석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자사가 또 자기 부인을 출처하였다고 한다. 자사의 아들이 자상인데 출처당한 엄마가 죽어 자상이 상을 할려고 하자 자사는 "출처한 부인은 지금 내부인이 아니다. 상을 할 수가 없다!"라고 아들인 자상에게 야박하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상이 자사에게 선대에서는 "출모(出母)해도 상을 일년을 하든 어떠하여든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자사가 출처한 부인은 내부인이 아니고 네(자상)엄마도 아니라고 말했고,  복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공씨가문에는 출모에 대해서 상을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 자사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門人問之子思曰: "昔者子之先君子喪出母乎?"  不爲伋也妻者, 是不爲自也母也. 故孔氏不喪出母, 自子思婚也. [예기] [단궁] 上  (문인문지자사왈: "석(옛 석)자자지선군자상출모야?" 불위급(거짓 급)야모야. 고(연고 고)공씨불상출모, 자자사혼야.). 이런 말이야 말로 환장할 말이라고 한다. 자사의 중용을 보면 일부일처에 대한 부부지도에 대해 엄청나게 존경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자사의 [중용]은 일부일처의 윤리를 찬미하는 철학서이다.). 우리가 유교는 첩을 많이 거느리는것으로 아는데, 우리 조선왕조는 일부다처제의 나라가 아니라 정확하게 일부일처제이라고 한다. 일부 일처 다첩제를 인정한 사회였다고 한다. 일부다처제가 되면 여러명의 처가 있어 정실의 개념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왕조는 기본적으로 일부일처로서 남자가 있고 정실부인이 있어서 남자가 첩을 데리고 오는 요즘의 속된말로 하면 복지사업과 같은 것이라 한다. 일부일처다첩제는 극히 드문 부유한 양반에서나 가능했다고 한다. 유교는 일부일처제의 윤리를 옛날부터 신봉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부터 삼대에 이르기까지 왜 마누라를 내쫓았는데, 이러한 윤리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유교경전에 이러한 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생들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쉬하면서 덮어두었다는 것이다. 이말은 바로 신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바로 수직관계를 이야기해서 수평적관계를 쳐버리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깐 셋 모두 상례(喪禮, 공자삼대 출처(出妻)설화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례(喪禮)를 중심으로 한 양식적 기술일 뿐이다.)에 관한 이야기다. 상례에 있어서 어떤 수직관계를 강조하기위해 공자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권위가 있느니깐 캐리턱를 설화를 쓴 사람들이 빌려쓴것이라 한다. 공자삼대가 정말로 마누라를 내쳤을까 하는 의문이다. 마누라가 있으면 좋은데, 왜 내쫓았느냐는 것이고, 공자가 자기 마누라를 내쫓을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공자도 평생을 돌아다니면서 유랑생활을 하면서 마누라가 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생고생을 하다가 일찍 돌아갈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자는 마누라를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공자가 하도 유명하니깐 여러 사람들이 공자의 캐릭터를 이용하면서 이말저말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모은것이 오늘의 고전이라고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도올 김용옥이 어렸을적 어머니께서 작은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어느날 아침에 연못에 가보니 거미줄에 영롱한 이슬이 맺혀 아침햇살을 받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저렇게 멋있는 거미줄을 칠수 있는가에 대해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우연히 어렸을적 희랍의 신화책을 보다가, 아라크네(라디아의 공주, 염색의 명수 아드몬의 딸, 수를 너무 잘 놓아 아테네여신의 질투를 받음)라는 프린세스가 염색의 장인이고 수를 잘놓았다고 한다. 아테네여신이 자신도 수를 잘놓는데 아라크네가 수를 너무도 잘 놓아 질투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수를 놓는 경쟁을 했다고 한다. 아테네는 카페트에 올림피아의 열두신을 수를 놓았고, 아라크네는 그 희랍의 신과 인간이 사랑하는 스토리를 수로 놓아 표현하였다. 아테네여신이 아라크네의 기막힌 사랑의 이야기들을 수로 놓은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질투와 분노로 아라크네의 수를 산산조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아테네여신에게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들보로 올라가 목을 메어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아테네여신이 순간 측은하게 생각하여 목을 맨 줄을 느슨하게 해주며, 자신이 증오하는 벌레인 거미로 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라크네는 자기가 목을 맨 동아줄이 거미줄이 되어 그것을 타고 올라가 거미가 되어 살았다는 것이다. 신화는 우리가 설명해줄 수 없는 세계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라고 한다. 그것을 사실로 믿으면 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신화를 신화로서 신화의 구조로 해석하자는 것이다.
맹자의 맹모삼천이라는 것도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전한의 대사상가 유향의 저술(BC70~8)의 저술, 이상적 왕도의 선왕으로 황제의 권위를 부흥시키려는 의도로 지었다.)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이것도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라고 한다.맹자도 공자가 있던 곡부와는 멀지 않은곳에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와는 동시대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맹자가 곡부로 유학을 갔을때, 자사에게 직접배우지는 못하고 자사의 제자에게 배웠다고 한다. 원래 맹씨는 노나라의 삼환(노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세 대부가문,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의 하나였다. 맹씨는 그 맹손씨 계열에서 나온것이다. 맹자가 증자를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고 한다. 증자는 효라고 말한다. 춘추경전에서 논어 대학 중용은 經(경)자가 붙지 않았다. 시경이라는 것도 옛날에는 단지 詩(시)라고만 했다. 易經(역경)도 마찬가지로 易이었다. 書經(서경)도 역시 書였다는 것이다. 經이란 말은 나중에 漢代(한대) 漢武帝(한무제)이후로 국교화됨으로써 경자가 붙은 것이라 한다. 오늘날 성경이라는 것도 원래 우리말로 서양의 바이블에다가 經이라는 말을 붙여준것이라 한다. 經자가 들어오기전에, 13경중에 한이전에 유일하게 경자가 붙은 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孝經(효경)이라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증자계열의 孝를 얼마나 높였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맹자가 증자라는 사람을 높이는데, 증자에 대한 맹자의 기록을 보자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이 어렸을적 아버지의 밥상은 독상으로 항상 좋은 반찬들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밥상을 물릴적에 아버지가 남긴 좋은 반찬을 먹을려고 막내인 도올 김용옥이 밥상에 달려든적이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증자시대에도 그러한 이야기들이 있다. 증자는 그 아버지 증석을 봉양하는데 그 진지상에 반드시 술과 고기가 올라갔다. 그런데 아버지 증석이 진지를 다 잡수시고 상을 물릴때, 증자는 상을 들고 나오면서 꼭 아버지께 여쭈었다: "이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줄까요?"
그리고 때때로 아버지 증석은 증자에게 묻곧하였다: "아직 도 더 먹을 여분이 있느냐?" 이럴 때, 비록 남은 음식이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증자는 반드시: "네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증석이 죽고, 이제는 증자의 아들 증원이 증자를 봉양하는 상황이 되었다. 증원이 증자에게 진지상을 올릴때도 반드시 술과 고기는 있었다.  그런데 증자가 진지상을 물릴 때, 그 아들 증원이는 증자가 하던 것과는 달리, 잔반이 있어도 그것을 누구에게 줄까요 하고 묻는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증자가 증원에게 아직도 남은 음식이 있느냐고 물으면 증원이는 반드시: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증자는 자기 아버지가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자는 분위기를 잘알고 아버지를 모셨다는 것인데, 증자의 아들인 증원이 아버지를 모시는데, 야박하게 자기 아버지의 끼니만 정확하게 댈 생각만 하고 모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삼(증자)가 얼마나 효자냐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유치하게 요정도를 가지고 유교의 전부라면은 공자의 위대한 仁의 사상이 요정도의 진지상정도로 인간의 효를 이야기한다면, 맹자가 가장 높여주고 싶은 증자(증삼)의 이야기가 이 수준이라면 오죽 꺼리가 없는 놈이라고 한다. 공자의 제자도 천차만별인데 겨우 증자가 이러한 수준이라면 정말로 증자라는 사람은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맹자가 증자를 말하기를. 
증자는 무성출신으로 증자가 큰 스승이 되어(공자교단의 리더가 되어) 자기의 고향인 무성에 돌아와 잠깐 居(거)할 때의 일이었다. 무성의 사람들은 성주로부터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증자를 극진하게 대접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때마침 월나라로부터 도둑떼가 침략하여 들어왓다. 그때 무성의 시자가 말하였다: " 떠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증자는 사양하지도 않고 말했다: "암 떠나구 말구." 그리곤 집을 지키는 사람에게 엄명을 내리는 것이엇다: "내가 이집에 없을 동안 어떠한 사람도 여기 들어와 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다치지 말게 하여라."
그리고 얼마 있다가 월나라 도둑떼가 물러나려 하자 피난가 있던 증자는 무성사람에게 전갈을 보내었다: "우리집 담장과 기와를 잘 수리하여라. 내가 곧 돌아가리라."
그리고 도둑떼가 완전히 물러나자 증자는 유유히 돌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증자의 모습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매우 얌체짓것리처럼 인식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좌우의  제자들이 증자에게 간언하였다: "선생님! 여기 무성사람들은 선생님을 극진하게 모시기를 忠성스럽게 하고 또 공敬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국의 도둑떼가 몰려오자 선생님께서는 먼저 잽싸게 피해 도망가시었고 백성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도둑떼가 물러나니까 비로서 유유히 돌아오셨습니다. 뭔가 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그중 제자중의 한 사람인 심유행이 증자를 변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네들이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닐쎄! 옛날에 선생님께서 우리 심유씨 동네에 머문적이 계셨네. 그때 우리 동네에 가을 수확을 도둑질해가는 도둑떼가 몰려들었네. 그때 선생님을 모시고 있던 제자들이 70여명이 되었는데 한 사람도 그 재난에 간여하여 싸운 사람이 없었네."  그런데 자사가 위나라에 거할 때, 제나라로부터 도둑떼가 침략해온적이 있었다. 이때 주변사람들이 자사에게 여쭈어보았다: " 도둑떼가 몰려오니 피난을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도망을 가다니! 만약 내가 떠나면 임금께서는 이땅을 누구와 더불어 지키실 수 있겠는가?"
물론 증자와 자사의 태도는 동일한 사태에 대하여 매우 대조적이다. 증자는 비겁했고 이기적이었고 고답적이었고 형식적이었다. 그런데 자사는 용감했고, 남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알았고, 긴박한 상황을 대중과 더불어 해결할려고 노력하였다. 증자와 자사의 이런한 대조적 모습에 우리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임진왜란때 임금이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갈때, 의주로 가는 행렬에 돌팔매를 했다고 한다. 맹자는 이에 대해 무리하게 증자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외관적으로 이 두분의 행위는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같은 원칙위에 서있다. 증자께서는 당시 스승이요 부형과 같은 입장에 계셨다. 그런데 자사는 단지 신하였을 뿐이요, 미천한 존재였다. 그러니 행동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두 분이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두 분다 동일한 행동을 하였을 것이다."
맹자가 증자를 높이는 수준이 야박하다. 이러한 것으로 증자의 위대성을 말한다면, 증자는 볼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증자의 사상인 孝라는 것이 문제가 있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에서 증자사상으로 내려오는 효의 사상은 오리지날한 공자의 사상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위정편에 효에 대해 공자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맹무백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효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공자가 어떻게 말했을까? 부모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공자는 효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부모는 단지 자식이 아플까 걱정이다."(子曰: "父母, 唯其疾之憂")   자식을 키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식이 병이 들으면 그 부모의 마음은 견딜수 없는 고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자는 몸 성히있는 것만으로도 효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돌려 말한다고 한다. 공자는 자식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는 오로지 자식이 아플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위대하다고 한다. 증자는 한참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느것이 유교이고 진실이고 신앙이고 어느것이 우리사회의 윤리이고 무엇이 우리민족을 이끌어갈 수 있는 윤리겠느냐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건강을 걱정한다 심정을 젊은이들이 알아야 된다고 공자는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절대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위대한 공자의 평범한 진리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IMF도 극복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외국에서 돈을 끌어들인다고 해결될것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같이 허리를 졸라메고 고통을 받더라도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도올 김용옥은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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