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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무, 악 일체로서의 우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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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0:45 | 조회 : 2,984 |


   술을 한 잔 먹고 기분이 나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고, 노래소리가 흥겨우면 손이나 막대기로 장단을 맞추게 되고, 혹시 옆사람이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어깨를 들썩거리거나 "잘한다"라는 추임새라도 나올라치면 춤까지 추며 어우러지는 모습! 우리 민족의 놀이판, 특히 몸을 움직여(일을 하며) 살아가는 민중들의 놀이판은 대개 이러한 모습이다. 노래와 춤과 장단과 재담이 하나로 함께 어우러져 놀이판을 이룬다. 우리 문화는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춤이 따라 나오고 춤을 추며, 그 춤사위에 맞는 노래와 장단이 나오고, 장단을 치면 그에 맞는 노래와 춤이 저절로 꿈틀거려 보는 사람들이 그저 감상만 하고 있질 못하게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추임새를 넣고, 함께 춤판에 끼어 들어 어우러지게 만들어 버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그 놀이판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랫소리 이상으로 판을 흥겹고 멋들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놀이판이라 하겠다.

  이런 모습은 놀이판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도 싸움을 할 때도 역시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논에서 일을 할 때면 논두렁에서 울려 주는 풍물소리(장단)에 맞춰 일꾼 모두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가면서 일을 하고, 집터를 고를 때도 북소리에 맞춰 모두 노래를 부르며 달구질을 했으며 고기 잡으러 나가서는 북소리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며 장례를 치렀다. 싸움터에 나갈 때도 풍물소리에 맞춰 행군을 했으며, 북소리와 징소리의 신호에 따라 공격과 후퇴를 했으며 노래와 춤으로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냈다. 이는 우리 문화가 일과 분리되지 않고, 싸움도 놀이처럼 하는 문화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춤과 노래와 악이 하나인 문화, 구경하는 사람과 보여주는 사람의 구분이 없는 문화, 일과 놀이와 싸움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문화가 우리 문화의 특징인 것이다.

  그럼 도대체 우리 문화는 어떤 내용과 구조를 갖고 있기에 그런 특성을 갖게 되는가, 이런 문화의 특성이 내포하고 있는 세계관, 그리고 생활에 미치는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춤의 최고 경지 '병신춤'

  우리 춤 중에서 최고 경지의 춤은 병신춤이라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병신춤을 제대로 소화해서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살풀이춤이나 승무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풀이춤과 승무를 배우는 수련기간은 보통 10년 이상인데, 춤을 전문으로 추는 사람이 수련을 거쳐도 병신춤을 추는데는 겨우 발걸음을 띨 정도라는 말을 한다. 정상인이 신체적으로 비정상인 장애인을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승무, 살풀이의 단계를 넘어서야 하기에 어렵고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단지 병신의 몸짓을 흉내내어 웃음을 자아내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장애인마저도 흥에 겨워 참지 못하고 우쭐우쭐하면서 같이 춤을 출 수 있는 그러한 정서가 표출되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진짜 장애인이 정상적인 춤꾼의 병신춤을 보고 자신을 비웃어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모욕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애환과 고통, 그리고 흥겨움을 마음으로 표현해주고 있으며, 춤꾼을 같은 처지의 장애인으로 느끼게 되어 함께 춤꾼과 어우러져 춤을 출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상인과 장애인의 경계를 춤으로 허물어 버리고 동등한 인간의 자리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면서 서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벽을 허물고 서로 통하게 만들어 주는 춤이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 내는 병신춤을 출 수 있어야 진정한 최고의 춤꾼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인이나 장애인이나 똑같이 갖고 있는 조건과 정서를 기본적으로 어우러져 가능하다.

  병신춤은 모든 민속 연행물이나 놀이판에 등장한다. 지금도 회갑잔치와 같은 잔치판에서 흥이 오를대로 오르면 성냥개비나 담배꽁초를 코와 입에 끼우기도 하고 옷가지를 등에 쑤셔 넣어 즉석에서 언챙이나 곱사로 분장하여 병신춤을 추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병신춤은 몇몇 전문가만 출 수 있는 춤이 아니었고 누구나 출 수 있으며, 아무 때나 흥이 나면 출 수 있는 대중적인 춤이다. 장단 또한 쉽다. 전문 춤꾼만 출 수 있는 춤이 아니면서도 전문 춤꾼들이 평생을 수련하여 보여주는 살풀이춤이나 승무보다도 더 높은 경지의 춤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춤 중에 보릿대춤이 있는데, 그 까칠하고 뻣뻣한 보릿대가 흥에 겨워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이 춤을 몽두리춤이라고 한다. 즉 몽둥이가 춤을 추는 것 같은 투박한 춤이라는 것이다. 이 춤은 전문 춤꾼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인들이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술을 한잔 걸치고 남이 어떻게 보든 말든 자기 기분과 흥에 겨워 '멋대로' 흔들어 대는 춤이다. 그러다 보니 세련미가 있을 턱이 없고, 일정한 정형을 갖출 수도 없고, 남을 의식하여 안되는 동작을 흉내낼 필요도 없다. 정해진 춤사위를 끝까지 해야 할 의무와 압박감도 없다. 오로지 자기 기분에, 아니 자기 자신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해 있고 편한 몸짓을 장단에 실어 풀어내기만 하면 된다. 춤추다 힘들고 기분이 뒤틀리면 그 자리에서 몸짓을 멈추고 주저앉아도 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되고 구석에 처박혀 잠을 청해도 무방하다.

  이래도 분위기는 깨지지 않는다. 이 모든'짓거리'가 궁극적으로 다양한 춤을 형성한다. 일상에서 맺힌 기분을 확실하고도 쉬운 짓거리로 풀어 버릴 수가 있고 자신을 해방시킬 구 있다. 이 몸짓에서는 꾸밈을 찾아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남이 보기에도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는 익어 있고, 맛이 스며들어 있는 몸짓(춤사위)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몸짓에는 그 사람의 평소의 성격과 감정 그리고 일 동작이 그대로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즉, 단지 전문적인 춤꾼들의 정형화된 춤사위가 아닐 뿐 몸짓들은 나름대로는 다듬어져 있는 셈이다. 거짓없이 가장 편하게 생활 감정을 쏟아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감흥을 받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크게 망설이지 않고 더불어 보릿대춤을 추며 자신도 솔직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속에 있어서 만들어진 몸짓이 아니고 감성에 충실하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사이라도 쉽게 통할 수가 있다. 정상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쉽게 놀이판에 끼어들어 어울릴 수가 있다. 전문 춤꾼이나 전혀 춤을 모르는 사람이 같은 놀이판에서 어울릴 수 있는 자리, 자시자신에 철저히 몰입해 들어가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에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장애인 뿐만 아니라 개가 끼어들어 춤을 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으며 오히려 놀이판이 풍성해진다. 병신춤의 토대는 바로 보릿대춤이다. 궁극적으로는 병신춤 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 춤의 기본 토대가 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병신춤은 보릿대춤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2) 장단의 발생원리와 그 구조

  우리의 음악은 대체로 3박자로 구성되어 있다. 서양음악의 직선적이고 행진곡풍의 2박자와는 달리 3박자는 흥겹고 부드러운 성질을 갖고 있다. 3박이 주종을 이루게 된 것은 기마민족의 문화로서 말 타는 리듬에서 발생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말을 타는 노동리듬에서 발생했다는 뜻이다. 우리 장단, 특히 민속악의 장단은 일 동작의 리듬에서 발생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아리랑의 장단은 3분박 3박자이다. 이 장단을 보통 세마치 장단이라고 부르는데, 이 장단의 발생은 씨 뿌리는 동작과 두엄을 뒤집는 동작에서 유추되었다. 땅을 후비고 후벼진 구멍에 시를 덮어주는 세 단계의 동작, 이 세단계의 동작이 3박자를 이뤄 세마치 장단이 된 것이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서 높게 쌓아둔 퇴비더미에 올라서서 떨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며 쇠스랑으로 두엄을 찍는 동작, 이를 뒤집어 엎는 동작 그리고 뒤집힌 두엄더미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시 밟아주는 세 번의 동작이 세마치 장단의 '덩 -- 덩 -- 따궁 딱 -'을 탄생시킨 것이다.

  모든 일 동작에는 나름대로의 리듬패턴이 있게 마련이다. 일꾼이 그 일의 리듬패턴을 감지해내고, 자신의 일 동작을 일치시킨다면 그 일을 제압할 수 있다. 일꾼이 일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을 일꾼이 조종하고 놀릴 수 있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을 즐거운 놀이로 바꿔 버린다. 혼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일꾼들의 호흡을 서로 맞출 수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 되면 노동 생산성도 올라가고 일하는 과정이 살아가기 위해 마지 못해 하는 고역이 아니라 같이 삶을 즐기는 즐거운 놀이판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집약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우리의 농업과 어업의 생산방식은 힘든 노동을 즐겁고 신명나게 할 놀이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주로 몸으로 땀 흘리며 살아가는 민중들의 문화는 이런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일하는 동작도 움직임의 일종이다. 움직임은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호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움직임인지 병든 움직임인지는 그 생명체의 호흡에 그대로 나타난다. 호흡은 모든 것의 근본이자 출발점이다. 호흡을 잘 단련시키는 것이 건강한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길이고 호흡은 모든 것의 근본이자 출발점이다. 호흡을 잘 단련시키는 것이 건강한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길이고 호흡을 편하게 해 주고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그런 음악을 우리 문화는 요구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춤)을 요구했다.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문화가 우리 문화이다. 음식문화가 그러하며, 놀이문화가 그러하며 술문화가 그러하다. 그래서 음악과 춤의 기본단위가 되는 '장단'이라는 것도 '한 호흡 속에서 이루어지는 리듬패턴'을 일컫는다. 우리 선조들은 그 한 호흡속에서 수 많은 리듬패턴과 다양한 변형장단들을 만들고 발전시켜 왔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명체의 호흡만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도 한 호흡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 호흡도 장단화 했는데 대표적인 장단이 중머리 장단이다. 이 중머리 장단은 일년의 변화를 장단으로 만든 것이다. 한달을 한 박으로 한 12박자 장단이 중머리 장단이다. 그 장단을 악보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일 년의 기본 단위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본다면 위의 장단은 4박 장단이 될 것이다. 그러면 각 계절은 세 개의 달로 이루어지고, 이 때의 한 박은 다시 세쪽으로 나누어 진다. 이렇게 구성된 장단은 위의 중머리 장단이나 굿거리, 자진머리, 장단이나 늦은 휘머리 장단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장단들은 '네박 열두쪽(3*4=12)장단'이라고 칭한다. 우리 장단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3분박(세쪽) 네 박자 장단이다. 걸음걸이는 4박 단위로 걸을 때 가장 편하고 효과적이라고 하는데, 군대의 제식훈련에서 4박 단위로 구령을 붙이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장단에서의 4박은 각 박마다 3박의 리듬감을 갖고 있는 4박이다. 우리의 4박자 장단에 맞춘 움직임은 춤을 추는 효과를 주고 또 춤을 저절로 추게 만든다. 4박 장단은 어떤 몸짓을 해도 장단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만들고 3박자의 리듬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율동감과 흥겨움을 준다. 보릿대춤을 살려주는 장단은 거의 네박 장단이다. 자진머리(삼채장단)장단이 그렇고 굿거리 장단이 그렇고, 휘머리(일채장단, 다드래기)장단이 그렇다.

  호흡이 들숨, 날숨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들이마시면 나와야 한다. 우리 장단은 꼭 들숨과 날숨을 한 쌍으로 해서 구성된다. 한 장단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두장단으로 한 쌍을 맞춰 들숨, 날숨으로 구성한다. 이를 풍물에서는 '안팎역음'이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소삼 대삼', 춤에서는 '감고 풀고' 라고 한다. 판소리에서는 "소리의 생사목을 살린다." 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구성되고 만들어진 장단이므로 움직임을 살리고,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며, 정상인이나 산천초목까지도 서로 통하게 만들어,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3) 우리 노래(소리)의 속성

  김매기소리든 달구지 소리든 상여소리든 뱃노래든 우리의 노동요는 앞소리와 뒷소리로 구성되어 있다. 앞소리는 선소리꾼이 하고 뒷소리는 모든 일꾼들이 받는다. 누구나 함께 받을 수 있도록 의미 없는 소리(보통 의성어나 감탄사)를 반복한다. 노랫말은 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표출시켜 감정을 해소시키기도 하며, 주위의 공감을 일으킬 경우 일체감과 동류의식을 강화시킨다. 의미 없이 단순 반복되는 뒷소리는 일의 호흡을 일치시키고 흥겨움을 줄 뿐만 아니라 주문과 같은 최면효과까지 가져다 준다. 앞소리꾼이 부르는 앞소리는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맞는 내용이어야 하며, 이를 가장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기존의 노랫말 뿐만 아니라 즉흥적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또한 소리꾼들 중에서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고 싶으면 직접 나서서 노랫말을 지어 앞소리를 메길 수도 있다. 철저히'주고 받음'의 구조, 들숨 날숨의 호흦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우리의 노동요이다. 또 어는 한 쪽의 노래을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는다는 점은 모두 동등하다는 의미이며 모두 다 주인(주체)이라는 뜻이자, 모두가 중요하며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동요에서만 이런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를 중요한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판소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리꾼과 고수가 항상 주고받으며 소리를 한다. 또 소리를 듣는 청중의 반응에 적절하고도 적극적인 추임새로 그 소리판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소리꾼을 부추기면서 분위기를 같이 고조시킨다. '추임새'는 말 그대로 '북돋워 준다'는 뜻으로, 추임새가 없으면 재미도 없어지고, 소리꾼은 '팍팍하여' 소리하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민요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만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주고받는 형식을 취한다. 즉흥적이고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소리판은 살아나고 흥이 난다.

  우리의 놀이판과 일판은 전문가들의 세련된 몸짓과 우아함을 감상하는 정도에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도 끼여들어 함께 어울려야 적성이 풀리고 하다못해 소리 한마디라도 보태야 한다. 전문춤꾼이 됐든 소리꾼이 됏든 모든 광대와 재인의 궁극적인 책임과 예술적인 완성은 모인 사람들을 하나로 통하게 만들어야 하며, 자신을 잃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모두를 해방시켜야 하며, 모두가 하나 됨으로서 생성되는 힘을 일과 싸움에 잘 활용시켜야 살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것이 춤을 잘 추느냐 노래를 잘 부르느냐 악을 잘 치는냐의 판단 기준이다. 그들의 전문 기예는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4) 다시 강조하고 싶은 말

  우리의 춤과 노래와 장단은 정서적인 방법을 통해 생활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함으로써 서로를 통하게 하여 '하나'를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궁극적인 가치를 여기에 두고 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호흡운동과 그 질서에서 출발하여 틀을 갖추기 때문에 모두를 살리는 '살림'의 문화라는 특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공동체성을 살리는 문화와 역사를 이뤄왔고, '우리의식'을 견지해 왔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주체성과 창의력을 결코 무시하거나 껵지 않았으며 이를 존중했다. 오히려 이를 극단적으로 존중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한 바탕 위에 조화로움을 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들어 나가는 춤과 노래와 소리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지금의 현대인들이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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