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분류 탈춤 이야기 | 풍물 이야기 | 문화 이야기 | 고전 이야기 |
글 내용 보기
문화의 주체가 되기 위하여...
 웹지기 
  | 2001·07·15 00:33 | 조회 : 2,836 |


 김창남씨의 '대중문화의 이해(한울, 1998)'를 전부 입력해서 놓을까 하다가 그건 자신이 없어서 괜찮은 것만 입력해서 올리기로 했습니다.
문화적 주체가 된다는 것, 참 말은 쉽고 느낌도 오지만, 실제 현장에서, 생활에서 이를 구현하는 것은, 학우 대중들을 문화적 주인주체로 세워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희망하나 간직한채 살아보렵니다. 모든 사람이 문화의 주체가 되는 그날을 꿈꾸며.......

 1. 우리는 왜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가

 요즘 학교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대중문화에 관한 강좌를 마련하고 있고 대개의 경우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말하자면 문화, 혹은 대중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일 터인데 막상 그런 자리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많다. 내가 그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과 그들이 강좌를 통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최근의 문화 붐이 다소간의 거품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에서 멀어지는 만큼 문화와 여가, 오락에 대한 관심이 깊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때에 해당하는 말이다. 모두 알다시피 정치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안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정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통일문제도 그렇고 민주주의 문제도 그렇고 부정부패도 그렇고 지역문제도 그렇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이고 성별 불평등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 계급 계층간의 갈등과 세대 간의 장벽, 경제적 불황, 사회복지의 낙후 등등 문제거리들이 널려 있다. 이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조건이 함께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의 변화이다. 그것은 좁은 의미의 정권교체일 수도 있고, 또 좀더 장기적인 면에서 정치 전반의 체질개선과 민주화, 세대교체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정치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이며 변화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렇게 여전히 문제거리로 되어 있는 정치를 남겨 두고 사람들의 관심이 문화로, 오락과 여가로 그렇게 몰려 간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만일 최근 사람들이 문화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많이 가지게 굄으로써 그만큼 정치에 무관심해지게 된다면 우리의 산적한 문제거리들은 더욱더 해결의 길이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필연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말로 바꾸면 문화를 아는 것이 곧 정치를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정치란 좁은 의미의 정치, 정부와 국회와 정당과 선거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에까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권력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제도와 관습의 문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의 문제, 의식적·무의식적 검열과 규제의 문제, 자본의 논리와 상품의 논리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정치적인 문제임을 의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문제의식이 빠진 채 단지 문화에 대해 지식을 늘리고 정보를 늘리는 것은 그저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치장하고 잘난체하고 싶어하는 속물근성만 충족시킬 뿐이다. 내가 문화에 대한 최근의 관심에 거품이 많다고 말한 것도 그런 속물근성에 근거한 문화담론이 너무 많이 넘쳐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능한 한 문제를 한국 사회의 현실에 접근시키고 한국의 대중문화를 둘러싼 힘의 관계와 제도의 논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다. 쌈박한 이론과 그럴듯한 개념들, 최신 유행의 이론가들, 혹은 최신 유행의 작품이나 경향들에 관한 지식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고 재미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문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연구가 바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진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데 있다고 믿고 있다.

 2. 좋은 문화란 어떤 것인가

 문화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한다고 할 때 필수적인 것은 '좋은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끊임없이 사고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문화를 '좋은 문화'로 변화시켜나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좋은 문화에 대한 기준이 어떤 것이든 하나 뿐일 수는 없다. 하나의 잣대만으로 좋은 문화를 정의하고 거기에 못 미치는 문화는 나쁜 문화로 매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독선이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문화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좋은 문화가 창조될 수 없다. 그런 사회일수록 문화를 규제하는 검열의 칼날이 매섭고 금지와 억압의 족쇄가 무거운 법이다.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하나의 잣대로 문화를 재단하면서 검열과 금지의 족쇄를 휘둘러 온 나라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의 문화는 문화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창조력의 빈곤으로 허덕이고 있다. 한국 영화가 미국 영화보다 재미없는 이유를 하나만 고른다면? 그것은 윤리적·정치적 검열이다. 상상력을 옥죄는 전체주의적인 잣대이다.

 어느 사회에나 '좋은 문화'에 대한 다양한 기준이 존재한다. 그 기준들은 사회내에 공존하면서 갈등하고 경쟁한다. 사회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들은 각기 나름의 조건에 따라 나름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맞추어 나름대로 '좋은 문화'를 판단한다. 세대에 따라, 성별에 따라, 혹은 직업이나 계층에 따라, 교육 수준에 따라 각기 자신에게 '좋은 문화'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판단기준이나 취향에 대해 관용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럴 때라야 사회 전체의 문화가 조화롭고 창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좋은 문화'라는 자신의 판단이 정말로 내 스스로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말로 이것이 나의 삶의 조건과 욕구에 합당한 것이며 진정 나의 삶을 풍요롭고 주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문화인가 하는 의문이다. 어쩌면 내가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는 그 판단기준이 단지 문화산업의 광고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혹은 다른 사람들의 문화행태에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생간 것은 아닌가라는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판단기준은 많은 경우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서, 특히 메스미디어와 문화산업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문제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가장 크고 중요한 문화소비층이 되어 있고 따라서 메스미디어나 문화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판매시장이다. 미디어와 문화산업은 어떤 식으로든 청소년들을 공략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온갖 광고와 판매전략을 동원해 청소년들을 현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마음을 놓으면 문화산업의 광고 전략에 넘어가 한낱 소비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한낱 소비자로 되어 있으면서 마치 자기 스스로 문화에 대한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한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그는 단지 문화의 객체일 뿐 결코 주체라 할 수 없다. 요즘 거리에서 흔하게 만나게 되는 청소년들을 보면 거의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스타일, 거기에 비슷한 상품들을 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당히 '개성'을 내세운다. 세상에 모두 똑같이 하고 다니는 개성이 어떻게 개성일 수 있는가. 결국 그들 대부분은 문화산업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착각하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는 결코 '좋은 문화'를 가질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돈을 버는 문화산업에게만 '좋은 문화'일 뿐이다.

 '좋은 문화'에 대해 몇 가지 윤리적이거나 미학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그다지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이 향유하고 실천하는 문화가 얼마나 삶을 풍요롭고 복되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의 삶이 고립된 삶이 아니라 사회적인 삶일진대 당연히 그 문화는 사회적으로도 '좋은 문화'여야 한다. 나 자신의 삶을 위해 좋은 문화라는 것이 어떤 개인적 쾌락이나 이기적 욕심을 충족시키는 문화라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 전반이 좀더 민주화되고 좀더 평등하게 되고 좀더 통일에 가까워지고 좀더 평화로워지는 것이 각자의 삶을 좀더 복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좋은 문화'란 더불어 사는 우리의 삶과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그런 문화여야 한다. 결국 그것은 단지 문화적 차원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고 사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기본 자세와 관련되는 문제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늘 좋은 사회와 좋은 문화를 생각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바로 우리들 스스로 문화적 주체로서 자신을 세우는 일과 같은 것이다.

 3. 문화적 주체가 되기 위하여

 문화적 주체로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은 자신의 취향과 선택에 대해 스스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주변의 문화 환경 속에서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마땅한 이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광고 카피 가운데 보면 '왜냐구? 그냥!' 이런 식의 카피가 많다 사실 어떤 선택이나 행동에 대해 굳이 남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고 또 스스로도 이유를 딱히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삭으로 '그냥!' 하는 말로 자신을 감추는 사고방식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그런 식이라면 영영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없다. 언제는 문화의 객체이며 대상이며 판매시장이며 수동적인 소비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떳떳하게 자신의 문화적 선택과 행위에 대해 이유를 밝히자.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늘 '왜?'라고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이노래가 좋은 거지?' '나는 왜 이 영화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걸까?' '지금 나는 이 드라마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고 있는 걸까?'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TV와 영화와 음악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 관찰하라는 말이다. 사실 이것은 얼핏 매우 피곤하고 쓸데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또 자신이 즐기고 수용하는 문화에 대해서도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보통 대는 느낄 수 없었던 더 많은 재미와 즐거움을 문화로부터 얻을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에서 유홍준씨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아는 만큼 보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면 그만큼 많이 느낄 수 있고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비슷한 차원에서 우리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모두가 이른바 매니아 수준의 정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영화를 좋아한다면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메모를 해두고 또 신문·잡지에 실리는 영화관련 정보를 주의깊게 읽고 필요한 경우 스크랩을 해 두는 정도의 정성만 기울여도 좋다. 그렇게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영화를 선택하고 비평하는 눈도 키워지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른바 내공이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다. 내공이 커지면 당연히 외부의 문화현상에 대해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는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나 주변의 친구들과 자주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제 밤 TV에서 본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에 대해, 신문만화에 대해, 그 밖에 다양한 문화현상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해 보자.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문화에 대한 비평과 감식안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문화적 주체로 변화해 갈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문화 전반이 그에 맞추어 조금씩 '좋은 문화'로 바뀌어 갈 것이다. 내가 '좋은 문화'를 선택하고, '좋은 문화'를 요구하고 '좋은 문화'를 실천한다면 당연히 우리의 문화가 좋은 문화로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외국의 문화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고 매체와 문화산업이 커지고 그래서 엄청난 문화의 홍수 속에 살게 된다고 해도 그속에서 우리 모두가 문화적 주체로서 올곧게 생활한다면 자연히 우리의 문화는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그저 한낱 문화의 소비자로서 일시적인 만족과 쾌락에 안주하고 아무런 문제의식도 주체의식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문화는 돈벌이에 급급한 자본가들과 외국의 문화산업에 의해 철저하게 점령당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아무데서도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단지 문화산업의 꼭두각시들만이 존재하게 될 뿐......

<출처> 대중문화의 이해, 김창남, 1998, 한울

     
번호       제 목 이름 작성일 조회
  `세계인` 보다 먼저 `한국인`되어야 문화 21세기 온다.
 웹지기
01·07·15 3007
  `문화`의 정의와 일반
 웹지기
01·07·15 2104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자동로그인
 
CopyRight (c) 충북대 민속연구회, All Right Reserved.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산48번지 충북대학교 민속연구회 (36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