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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과 사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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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1:13 | 조회 : 3,318 |


  농악(農樂) 이라는 용어에는 어떤 형태로든 저항하는 속성을 가진 굿을 하찮은 존재(농민)들의 기분풀이(樂) 정도로 어떻게든 폄하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는 원초적인 생명력과 무서운 결집력, 폭발적인(신명이 바탕이 될 때) 파괴력을 갖는 굿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 가? 이의 대표적인 실례는 일제가 시장에 관한 법 , 집회에 관한 법 과 같은 법령까지 제정하여 당산굿을 금하는 등 굿을 통제했으며, 착취를 해갈 생산물획득의 경우(농사장려)에만 풍물허가를 주기 때문에 농악이라는 명칭으로 주재소에 신청해야만 굿을 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마저도 일제말기에는 숟가락까지 훑어 가는 놋쇠공출 의 무서운 회오리에 쇠와 징도 운명을 같이했으니 농악이란 이름으로도 굿을 칠래야 칠 수 없는 상태까지 내몰린 것이다.

  이 전통(?)은 그대로 해방 후까지 연결되어 도시는 물론 농촌과 어촌에서까지, 행정계통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어느덧 농악은 해방후 민속학계의 학술용어로도 굳건히 자리잡았고 국가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전국농악경연대회, 전국민속경연대회, 전주대사습 등)에는 농악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인 용어로서 그 위력을 발휘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민속예술이라는 관점, 굿의 정신과 기능을 제거하고 원형론에 입각한 양식만을 보존책으로 채택 한 문화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생산방식의 변화로 토대를 상실한 생활로서의 굿을 그 주체로부터 더욱 유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굿의 주체는 마치 뛰어난 기예를 갖는 농악전문가( 기술자라고 보통 이야기하였음)들의 것처럼 인식을 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기예자랑을 위한 공연형식의 연행방식과 기예를 겨루는 경연대회방식의 대회를 정착시켰다. 그 영향은 예술가지향형, 인간문화재지향형, 의 농악전문가들을 양산하게 되고 농악을 상품화하게 되어 민속촌농악과 같은 형태를 잉태시키기도 한다. 해방후 지금까지의 전통문화정책을 수립하는데 이론적인 토대와 방안을 제시했던 주역중의 한 사람인 정병호교수는 1986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농악이라는 책 후기에 농악(農樂) 의 속성과 자기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농악에 대한 연구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비교적 진전이 되어있어서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농악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춤, 연극, 놀이, 사설과 같은 예능적 요소에 대한 연구는 이번이 첫걸음인 셈이다. 또한 농악은 이러한 예술적 형식 못지 않게 그 본질과 기능을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 방향을 설정하느냐 하는 것이 큰 난점이었다. 굿에 대한 기존학계와 제도권의 연구는 농악(農樂) 이라는 용어가 쳐놓은 그물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걸려들어 굿을 병신으로 만드는데 일조 하였으며 일반인의 의식에 기형적인 모습으로 굿을 그려주었고 굿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관심과 시각을 봉쇄하거나 봉쇄 당하였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나 정부조직에서는 농악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굿의 본질을 제대로 반영할 학술용어를 찾거나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표면적으로 거의 발견하기 힘들다. 사물놀이의 등장이후 일반대중의 뇌리에서는 농악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악이라는 용어가 갖는 의도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국가정책차원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물놀이는 1978년에 사당패의 후예들인 30대 전문예인 4인이 단체를 결성하면서 민속학자의 자문을 받아 붙인 단체 명이었으나 지금은 그들이 보여준 연행물의 성격과 내용을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일반인들에게는 굿 = 사물놀이라는 등식으로 인식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물놀이가 10여년의 짧은 기간 내에 농악이라는 용어를 물리칠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게된 배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배경의 검토는 사물놀이의 공과를 판단하는데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양식 면에서 보면 기예가 생존수단이었던 사당패의 높은 기예를 온전히 계승한 점, 굿의 본질이 살아 숨쉬는 난장판을 생활로서 직접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체험함으로서 수천 년의 조선민족 심성에서 우러난(미의식이 농축되어 스며있는) 가락과 원초적인 생명력과 폭발적인 신명을 감각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었다는 점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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