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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굿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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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1:12 | 조회 : 3,599 |


  마당에서 펼쳐지는 풍물굿 한마당은 심장의 고동과 맥박을 꿈틀거리게 하는 놀라운 힘과 흥겨움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풍물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풀리고 아무 거리낌없이 풍물굿판에 뛰어 들어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신명나게 춤추는 마을의 축제 판을 이루게 된다. 꽹과리를 치고, 북을 메고, 장구를 두드리며 징을 울리다 보면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를 생기가 돌고 의젓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정월 초에는 액을 몰아내고 복을 맞이하는 마을제나 지신밟기를 하여 한 해의 운수를 빌고 농사일이 바쁜 철에는 일터에서 두레일을 하면서 풍물굿으로 피로를 푼다. 백중날에는 농사의 장원(농사일을 으뜸으로 지은 사람)을 뽑고, 풍물을 치며 하루를 즐기고, 한가위에는 풍물이 전국 곳곳에 메아리 치는 가운데 그 해의 풍년을 축복한다.
  비단 세시풍속 놀이로서만 아니라 집을 지을 때는 성주풀이를 하고, 또 새로 이사온 사람은 집들이로 풍물을 치며 숙과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사냥을 할 때나 적과 싸울 때도 풍물이 쓰였고, 줄다리기나 씨름판을 벌일 때도 풍물을 쳤다. 또 마을의 공공기금을 마련할 때나 장례때에도 풍물이 쓰였다.
  이렇듯 우리 겨레는 일 년 열두 달 풍물굿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풍물굿은 우리 겨레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오늘날의 문화를 이루어 왔다. 이러한 풍물굿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 보는 것은 뜻있는 일이며, 우리 겨레의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는 즐거움 또한 자못 클 것이다.

  1.풍물굿의 뜻과 일컫는 말들  


  풍물굿은 다섯 악기(쇠, 징, 장구, 북, 소고)를 주로 치며, 소고를 들고 다양한 춤을 추는 기능과 극적 짜임을 맡는 잡색놀이 등을 포함하는 공동체적인 놀이형태를 말한다. 이는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종교적 놀이요, 집단의식에서 싹튼 놀이 양식으로서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발달한 문화의 한 양식이다. 풍물굿의 악기는 원래 신을 부르는 악기였고, 잡귀를 몰아내는 악기였기에,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느 주술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춤과 놀이를 통해 의로움과 아픔을 풀어 기쁨으로 끌어 올리는 가운데 신명이 나온다. 농민들은 활기 있는 노동생활을 위하여 풍물굿에서 신명을 얻어 내려고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풍물굿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염원을 모으려는 진취적인 행위. 신명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재생과 생존의 졸이라 할 수 있다.
  풍물굿을 일컫는 말 중 가장 일반적인 말이 '농악'이며 최근에는 사물놀이패가 생기면서 '사물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 마을에서는 지역과 굿을 하는 목적에 따라 굿, 매구, 매구굿, 풍물, 풍장, 두레, 걸궁, 걸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 왔다.

 1) 농악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농업 수탈 정책의 하나인 농업 장려운동으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농악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의 음악'이라 하여, 농사꾼이 하는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 스스로 농악이라고 불렀던 적은 없었고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써 일본의 기악연주 형태의 하나인 능악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풍물굿의 향유 계층을 농민만으로 축소하고 대상화시킨 농악이란 말은 풍물을 일컫는 이름으로는 걸맞지 않고, 말 자체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2) 사물놀이

  풍물굿에 있어서 사물이란 쇠, 징, 장구, 북을 가리키는 것으로 불교에서의 사물(범종, 운판, 법고, 목어)에서 나왔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남사당패의 놀이 가운데 풍물이 가장 간단한 짜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사물놀이'라는 말이 마치 우리 나라의 전통예술 가운데 꽹과리, 징, 장구, 북을 가지고 뭔가 예술적인 행위를 하는 어떠한 갈래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쓰고 있으나, 사실 사물놀이는 1978년에 생긴 한국 전통 타악 연주 단체(마포 사물놀이)에게 도와주고 지원해주던 민속 학자 심우성 선생이 지어준 패의 이름이었다.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고도로 무대화된 타악기의 연주형태로 풍물굿의 가락을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한 형태를 지칭하는 말로 봐야 한다. 풍물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은 사물놀이는 일반 사람에게 풍물의 가락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뛰어난 재주를 살리고 발전시킨다는 좋은 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옛날 마을굿이 지니고 있던 대동놀이적인 면을 살리고, 구경꾼과 놀이꾼(연희자)과의 거리를 좁혀 가는 판을 되살리는 일이다.

 3) 풍장

  농사일에 많이 쓰이는 말로 김매기할 때 이루어지는 풍물굿을 가리킨다. 특히 만두레(벼농사는 김매기를 보통 세 번 하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에 하는 것을 말함)가 끝나는 날 농사가 제일 잘 된 집 머슴을 소등에 태워 위로하며 노는 것을 농장원, 질꼬냉이라고 한다.

 4) 두레

  원래는 우리 나라 고유의 마을단위 일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며, 특히 김매기를 해서 만들어졌다. 풍물이 공동체놀이로써 두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풍물을 '두레'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5) 굿

  주로 전라도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굿친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굿의 의미 원래 '모인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모여서 공동체 안의 모든 일을 의논하고 풀어 가며, 공동체적 바람을 집단적으로 빌며 집단적 신명으로 끌어 올려 새로운 삷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 내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무속굿을 가리키는 말로 축소되어 사용되고 있다.

 6) 매구?매굿?매귀

  땅 밑에 있는 나쁜 귀신이 나오지 못하도록 묻고 밟는다는 뜻으로 보통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풍물굿을 매굿이라 한다.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풍물굿을 일컫거나 꽹과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7) 풍물

  주로 경기, 충청도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풍물굿에 쓰이는 악기를 이르는 말이며, 그 악기를 가지고 하는 일련의 행위, 즉, 풍물굿을 줄여서 이르는 말이었다. 80년대에 들어와서 대학가와 문화모임들이 농악이란 말 대신에 풍물 또는 풍물굿이란 말을 자주 쓰면서 보편화 된 말이다.

  2. 풍물굿의 뿌리와 변천과정  


  풍물굿의 기원은 원시사회의 풍농과 안택을 비는 제천의식이나 일의 율동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점차 집단생활 속에서 놀이형태, 축원형태, 연극형태로 발전되고, 사람들이 이를 즐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시시대의 제천의식 또는 집단적 바람을 비는 제의형태는 종교적 의식을 주재하고 재행해 줄 무당이 나타나기 이전이므로 집단적 신명을 통해 신과 만나고, 기원하는 형태였으며, 풍물굿의 원시적 형태로서의 집단춤과 쉽게 소리를 낼 수 있었던 타악기를 썼을 것이다. 이것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오늘날의 틀을 갖춘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풍물굿에서의 악기와 연희형태 가운데 불교에서 들어온 것이 많은데, 이런 악기와 연희형태가 기층 민중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았던 조선시대이며, 풍물굿이 농촌의 두레 공동체와 함께 커온 것으로 볼 때 두레의 생산과정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함께 일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이앙법(모내기)이 들어온 조선시대 이후로 추측할 수 있다. 학자들 사이에 풍물굿의 기원을 풀이한 것으로는 풍농안택기원설, 군악설, 불교관계설 등이 있다.
  이러한 풍물굿의 맨 처음 형태는 집단적 신앙에 관련하여 생긴 축원형태이며, 농사법을 알게 되면서 노작형태로 발전하였고, 걸립형태와 연예형태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형태가 따로따로 생겼다가 없어지고 새로운 형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전에 형태를 아우르면서 변화, 발전하여 오늘날의 풍물굿이 되었을 것이다.

  3. 풍물굿의 지역적 특색  


  풍물굿은 크게 중부 이북지방에서 행해지는 웃다리 풍물굿과 중부 이남지방에서 성행하는 아랫다리 풍물굿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거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웃다리 풍물굿은 주로 경기지방과 충청 이북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상쇠의 기능이 뛰어나다. 반면, 아랫다리 풍물굿에서는 장구와 소고의 기능이 발달하였다.
  
경기, 충청도 지역의 풍물굿은 가락이 경쾌하다. 쇳소리를 위주로 가락이 구성되기에 쇳소리 또한 크게 발달해 있다. 투명하고 맑은 가락으로 길군악 칠채, 마당일채 등을 꼽을 수 있고, 이 가락들은 경기, 충청 일대 풍물굿의 주요한 구성 요소이다. 경기, 충청 일대의 풍물굿의 판굿은 짜임새가 탄탄하다. 그리하여 갖가지 구성진 진풀이와 놀이도 곁들어져 흥겨운 판굿을 이룬다. 가새벌림, 당산벌림 등이 대표적인 진풀이라 하겠고, 놀이로는 무등놀이가 특히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동고리, 삼무동, 곡마당, 칠무동 등이 대표적인 용례가 되겠다. 복색은 삼색띠를 두르는 것이 예사이고, 청색 조끼를 입기도 한다.
  
호남 지역의 풍물굿은 가락이 구성지고 넌출된다. 장고 가락을 특히 강조하고, 설장구 놀이가 발달한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호남지역의 특이한 가락으로는 풍류굿, 영산, 오채질굿 등이 있다. 판굿의 짜임새는 굉장히 다채롭다. 특히 우도굿과 좌도굿이 나뉘어 있어서 지역에 따라서 판제가 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복색은 삼색띠를 두르고, 좌도지역에서는 머리에 전립을 쓰고, 우도지역에서는 머리에 고깔을 쓴다.
  
영동지역의 풍물굿은 가락이 단조롭다. 혼합박자로 이루어진 가락은 전혀 없다시피 하고, 최근에는 창작 가락인 신식 길놀이 가락등이 첨가되어 있다. 대부분 가락은 외가락으로 전개되기 일쑤이다. 판굿도 마찬가지여서 같은 가락을 거듭 반복하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대형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복색은 흰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고깔을 쓴다.
  
영동지역의 풍물굿은 가락이 씩씩하고 뻗세다. 힘찬 가락으로는 자브랑갱이, 영산다드래기, 덧뵈기, 길군악 등을 들 수 있겠다. 판굿보다는 진풀이와 갖가지 고사 의례가 있으며, 매우 엄격하게 차수를 진행한다. 특히 12차라고 하는 독특한 규범을 지니고 있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복색은 흰 바지와 저고리를 입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전립을 쓰는 것이 특징적이다.

  4. 풍물굿과 사물놀이  


  사물놀이는 원래 풍물굿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악기는 물론 장단이나 판의 짜임도 풍물의 판굿을 거의 그대로 이어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놀이는 또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풍물굿에서는 사물외에도 나발, 태평소, 법고(소고) 등이 사용되며 악기를 연주하는 잽이 뿐만 아니라 조리중, 무동, 대포수, 각시, 양반 등 많은 잡색이 있어서 이들의 춤이나 재담이 판에서 중요하지만 사물놀이에서는 사물과 사물을 연주하는 잽이만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놀이는 연주에 있어서 맺고 푸는 가락의 변주가 풍물굿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정교하다. 또한 풍물굿이 연희되는 곳이 개방된 공간. 즉, 마당이라면 사물놀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개 무대위에서 연주된다. 전자는 열린 공간에서 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집단적인 신명을 불러일으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넘어서게 하지만, 후자의 경우 무대와 객석은 분명한 선이 그어지고 관객은 단지 구경꾼으로 남게 되어, 풍물굿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열린 공간과 집단신명이 사물놀이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을 받게 된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물놀이가 현재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물놀이의 가락의 짜임이 풍물굿의 맺고 푸는 원리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가 과거의 농경사회에서처럼 열린 공간에서 판을 형성하기가 용이하지 않고 또한 무대예술의 발달로 무대공간이 확대되는 추세에 따라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무대예술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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