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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오광대의 연희
 안기원 
| 2002·02·19 01:13 | 조회 : 4,082 |
⊙연희 시기 및 장소



통영오광대도 다른 경남지방의 민속가면극과 같이 민간신앙과 결부된 음력 정월 보름경의 세시적 행사로서 연희되었다. 초기의 통영오광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희자들이 조직했던 의흥계는 음력 섣달 20일경에 임시총회를 열고, 계원들 중 생활 형편이 괜찮은 사람에게서 기부룰 받아 매구에 필요한 악기를 보충 구입하고 고깔을 준비하여 계원들 즉 오광대 연희자들이 농악대인 매구패를 편성했다.
그리하여 정월 2일부터 14일까지 시내의 부잣집이나 계원과 연고가 있는 가정, 그리고 상점등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축원을 해 주어 그 사례로 받은 돈과 곡식을 놀이비용으로 하여 정월 14일밤에 매구의 파방굿을 치고 오광대를 하였으며 정기총회도 가졌다고 한다.
마당놀이였던 통영오광대의 놀이판에는 특별한 무대나 장치를 하지 않았고, 잔디밭에 연희자가 놀이하고 악사들이 그 앞에 앉아 장단을 맞추고 관객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 앉거나 서서 구경하였다. 놀이판의 크기는 큰 멍석 5∼6장 정도였는데, 경우에 따라 놀이판 둘레의 한 곳에 개복청(改服廳)이라 하여 포장을 둘러치고 연희자들이 탈을 바꾸거나 옷을 갈아 입고 등퇴장할 수 있게 해 두기도 하였다.
저녁놀이에는 장작을 쌓아 모닥불을 피우거나 횄불을 밝혀 조명을 하였다. 일렁이는 불빛이 비치면 탈의 오목한 부분에 짙은 그림자가 생겨서 더욱 괴기한 느낌을 주었고, 탈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의 흥계의 정기회는 음력 정월 14일 이외에 3월 보름과 4월초에 봄놀이를 겸하여 열었고, 9월 보름에 단풍놀이를 겸해 가졌는데, 이 때에 탈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특히 4월초 봄놀이에는 사또놀음에 곁들여 오광대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사또놀음은 원래 정초에 통영고을 사람들이 모여서 상사람 중에서 기운이세고 정직한 사람을 사또로 뽑고, 사인교를 탄 사또를 통인, 이방, 나졸 등으로 꾸민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호위를 하고, 고을 안을 돌면서 지난해 못되 짓을 많이 한 사람의 집 앞에 이르면, 지체의 고하를 막론하고 주인을 잡아내어 곤장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기부를 받기도 하는 놀이였다. 이 사또놀음이 벌어지는 날이면 평소에 못되 짓을 한 사람들은 집을 비우거나 있어도 없다고 하지만, 악착같이 찾아내어 곤장을 쳤다고 한다. 이 행열은 풍물잡이를 앞장 세우고, 사또 일행이 가고 그 뒤를 고을 사람들이 춤추며 따랐다고 한다.
4월초 봄놀이에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의 풍물잡이를 앞세우고 영기(令旗)를 휘날리며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모양으로 꾸민 사또(使道)가 서리, 역졸, 나졸 등을 거느리고 출두 하였으며, 말탄 팔선녀(八仙女)와 종자(從者)가 뒤 따랐다. 이 행렬이 고을 안을 한 바퀴 돌고, 미륵산(彌勒山)의 용화사(龍華寺)근처의 잔디밭에 올라가 한 바탕 매구를 치며 놀고, 이어서 오광대 탈놀음을 놀았다고 한다. 이때에 사또가 되는 사람은 영광과 호사를 누렸다고 물주(物主)가 되어 일행에게 술과 음식을 내었다고 한다. 사또놀음은 오광대의 앞놀이로서 일종의 길놀이 구실을 한 셈이다.
통영오광대는 민간신앙과 관게가 있는 음력 정월 열 나흘의 세시적 행사로 행해졌으나 후대에 오면서 보다 오락적 연희로 되어 봄놀이와 단풍놀이의 한 놀이로서 연희된 것이다. 그러면서 오광대가 날이 가물면 기우제(祈雨祭)행사로 3,4일간 비가 올 때까지 연희되기도 한다. 지금도 통영 사람들은 오광대를 구경하느라고 사람들이 운집하여 먼지를 일으키고 그 먼지가 하늘로 오르면 비가 반드시 온다고 믿고 있으며, 비가 오겠다고 오광대 놀지 말라는 말을 간혹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연희 구성 형태


통영오광대도 다른 경남지방의 민속가면극과 같이 민간신앙과 결부된 음력 정월 보름경의 세시적 행사로서 연희되었다. 초기의 통영오광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연희자들이 조직했던 의흥계는 음력 섣달 20일경에 임시총회를 열고, 계원들 중 생활 형편이 괜찮은 사람에게서 기부룰 받아 매구에 필요한 악기를 보충 구입하고 고깔을 준비하여 계원들 즉 오광대 연희자들이 농악대인 매구패를 편성했다.
그리하여 정월 2일부터 14일까지 시내의 부잣집이나 계원과 연고가 있는 가정, 그리고 상점등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고 축원을 해 주어 그 사례로 받은 돈과 곡식을 놀이비용으로 하여 정월 14일밤에 매구의 파방굿을 치고 오광대를 하였으며 정기총회도 가졌다고 한다.
마당놀이였던 통영오광대의 놀이판에는 특별한 무대나 장치를 하지 않았고, 잔디밭에 연희자가 놀이하고 악사들이 그 앞에 앉아 장단을 맞추고 관객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 앉거나 서서 구경하였다. 놀이판의 크기는 큰 멍석 5∼6장 정도였는데, 경우에 따라 놀이판 둘레의 한 곳에 개복청(改服廳)이라 하여 포장을 둘러치고 연희자들이 탈을 바꾸거나 옷을 갈아 입고 등퇴장할 수 있게 해 두기도 하였다.
저녁놀이에는 장작을 쌓아 모닥불을 피우거나 횄불을 밝혀 조명을 하였다. 일렁이는 불빛이 비치면 탈의 오목한 부분에 짙은 그림자가 생겨서 더욱 괴기한 느낌을 주었고, 탈의 움직임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의 흥계의 정기회는 음력 정월 14일 이외에 3월 보름과 4월초에 봄놀이를 겸하여 열었고, 9월 보름에 단풍놀이를 겸해 가졌는데, 이 때에 탈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특히 4월초 봄놀이에는 사또놀음에 곁들여 오광대 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사또놀음은 원래 정초에 통영고을 사람들이 모여서 상사람 중에서 기운이세고 정직한 사람을 사또로 뽑고, 사인교를 탄 사또를 통인, 이방, 나졸 등으로 꾸민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호위를 하고, 고을 안을 돌면서 지난해 못되 짓을 많이 한 사람의 집 앞에 이르면, 지체의 고하를 막론하고 주인을 잡아내어 곤장도 치고 돈이나 곡식을 기부를 받기도 하는 놀이였다. 이 사또놀음이 벌어지는 날이면 평소에 못되 짓을 한 사람들은 집을 비우거나 있어도 없다고 하지만, 악착같이 찾아내어 곤장을 쳤다고 한다. 이 행열은 풍물잡이를 앞장 세우고, 사또 일행이 가고 그 뒤를 고을 사람들이 춤추며 따랐다고 한다.
4월초 봄놀이에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의 풍물잡이를 앞세우고 영기(令旗)를 휘날리며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모양으로 꾸민 사또(使道)가 서리, 역졸, 나졸 등을 거느리고 출두 하였으며, 말탄 팔선녀(八仙女)와 종자(從者)가 뒤 따랐다. 이 행렬이 고을 안을 한 바퀴 돌고, 미륵산(彌勒山)의 용화사(龍華寺)근처의 잔디밭에 올라가 한 바탕 매구를 치며 놀고, 이어서 오광대 탈놀음을 놀았다고 한다. 이때에 사또가 되는 사람은 영광과 호사를 누렸다고 물주(物主)가 되어 일행에게 술과 음식을 내었다고 한다. 사또놀음은 오광대의 앞놀이로서 일종의 길놀이 구실을 한 셈이다.
통영오광대는 민간신앙과 관게가 있는 음력 정월 열 나흘의 세시적 행사로 행해졌으나 후대에 오면서 보다 오락적 연희로 되어 봄놀이와 단풍놀이의 한 놀이로서 연희된 것이다. 그러면서 오광대가 날이 가물면 기우제(祈雨祭)행사로 3,4일간 비가 올 때까지 연희되기도 한다. 지금도 통영 사람들은 오광대를 구경하느라고 사람들이 운집하여 먼지를 일으키고 그 먼지가 하늘로 오르면 비가 반드시 온다고 믿고 있으며, 비가 오겠다고 오광대 놀지 말라는 말을 간혹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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