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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놀이의 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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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1:04 | 조회 : 3,859 |


  
현재 전국에 전승되고 있는 탈들을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종목별로 분류하면 산대놀이, 해서(황해도)탈춤, 오광대, 들놀음, 서낭굿 탈놀이, 유랑 광대 탈놀이, 사자놀이, 소놀이굿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류에 따라 주로 각 탈놀이 가운데 독특한 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산대놀이

  산대놀이는 서울과 경기도 중심의 중부 지방에 전승되어 온 탈놀이의 이름인데 '본산대'라 일러 오던 '애오개' '녹번' '사직골' 등지의 놀이는 전하지 않고 현재는 양주 별산대 놀이(제 2호, 1964년 지정)와 송파 산대놀이(제 94호, 1973년 지정)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우리 나라 중부 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이러한 산대 계열의 탈들은 모두 나무에서 바가지로 그 재료가 바뀌었지만 다행히도 서울 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본산대탈'에서 우리는 산대탈이 지녔던 본디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샌님'과 '미얄할미' 그리고 '애사당'과 '포도부장'이 벌이는 봉건적 가족 제도의 모순은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이 갈만큼 아주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노장'과 '상좌' 그리고 '팔먹중' '옴중' '목중'들이 증장하여 당시의 종교상과 사회상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데, 그 표정들 역시 지금 세상에도 어는 구석에선가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눈끔쩍이'아 연 이파리를 머리에 뒤집어 쓴 '연잎'의 모양새와 문양들은 멀리 서역(西域)과의 연관을 점치게 하면서, 우리 나라 탈놀이의 연원이나 유입 경? 罐?짐작케 한다. 한편 산대도감이라는 탈꾼패들이 놀았던 탈놀이의 이름인 '산대도감극'의 나무탈(서울대학교 소장, 17점, 말뚝이 1점은 바가지탈)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상좌 2.옴중 3.목중 4. 연잎 5.눈끔적이 6.왜장녀 7.노장 8.애사당 9.취발이 10.말뚝이 11.원숭이 12.샌님 13.포도부장 14.신할아비 15.미얄할미 16.팔먹중 17.먹중

 2) 해서 탈춤

  황해도 일원에 전승되어 오는 탈놀이를 흔히 '해서 탈춤'이라 한다.

  분포 지역을 보면 서쪽 평야 지대인 사리원을 중심으로 한 황주와 안악, 재령, 신천, 장연, 은율 등지의 탈춤과 해안 지대인 해주, 강령, 옹진, 송림 등지의 탈춤으로 크게 구분한다.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은 해서 탈춤으로는 '봉산탈춤(제 17호, 1967년 지정)', '강령탈춤(제 34호, 1970년 지정)', '은율탈춤(제 61호, 1978년 지정)'인데 그 최초의 보유자들은 지금 거의 세상을 떠나고 후계자들이 뒤를 잇고 있다.

  먼저, 봉산탈춤의 '취발이'의 모습을 보자. 굵은 주름에 우람한 혹들, 붉은 바탕의 얼굴이 힘꾼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 움큼의 풀어진 머리는 아직 상투를 틀지 않은 총각의 표시란다. 파계승과 양반들을 욕먹이는가 하면, 중이 데리고 놀던 젊은 여자인 소무를 빼앗아 아들을 얻는다. 귀면상의 우락부락한 얼굴에 활달한 춤을 추니 봉산탈춤의 배역가운데서 가장 씩씩하다. 힘이 센 상놈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미얄할미'는 그냥 '미얄'이라고도 부르는 영감의늙은 마누라이다. 검푸른 바탕에 무수한 흰점은 구박받고 시달린 큰 마누라의 애절함을 나타낸다. 바람둥이 영감은 오랫동안 팔도 유람만 다니다가 작은 마누라 덜머리집을 데리고 돌아오니 미얄할미는 더욱 속이 상한다. 그뿐인가? 덜머리집과 말다툼 끝에 매맞아 죽게 되니 봉건적 일부다처제로 해서 희생된 대표적인 비애의 여인상이라 하겠다. 강령탈춤의 '미얄'은 또 어떠한가. 재료나 만드는 법은 봉산과 같으나 얼굴 바탕이 검은데다 큰점, 붉은 입술 등 하나하나는 강렬한데도 이것들이 조화되면서 오히려 애절한 노파로 보임은 이 탈이 지니는 빼어난 표현술이다. 은율 탈춤에는 여덟목중 중! 의 하나인 '팔목'과 '새색시(황해도 방언으로 새아씨)'에 주목해 보자. 파계승들인 팔목은 큼지막한 세개의 혹이 더욱 탐욕스러움을 나타낸다. 또한 정숙한 듯한 양반의 새색시가 말뚝이와 놀아나는가 하면 원숭이와도 수작을 부리니 겉 다르고 속 다른 요부 중의 요부이다.

 3) 오광대

  경상남도 낙동강 서쪽 연안에 폭넓게 전승된 탈놀이를 오광대 또는 오광대 놀이라 한다. 낙동강 상류의 초계 밤마리에서 비롯된 탈놀이의 한 분파이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의 놀이,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 하기도 한다. 현재 '통영 오광대(제6호, 1958년 지정)', '고성 오광대(제 7호, 1964년 지정)', '가산 오광대(제 73호, 1980년 지정)'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비록 지금은 없어지고만 '진주 오광대'는 몇 점의 종이 탈이 국립 민속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이 중 '어딩이'는 뻗어 나온 송곳니가 도깨비상 같다. 그러나 탈꾼의 매무새는 반신불수이고 초라한 차림인데 양반과 노름꾼 혼내는 것을 보면, 다른 탈놀이에서의 '영노'나 '비비'와 흡사한 데도 있다. 입안이 빨개서 더욱 섬찢하다. 두꺼운 종이를 오려 손쉽게 만드나 소박하면서도 토속미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또한 가산의 오광대의 '작은 양반'은 양반 3형제 중의 한 사람으로 허세를 부리나 바보스럽기만 하다. 시시콜콜 말참견은 하는데 종인 말뚝이에게 조롱만 당한다. 용모만은 관도 쓰고 수염도 의젓하나 어리석기 만한 양반? 甄?

 4) 야유(野遊)

  '야유'는 우리말?'들놀음'이라 하며 현지의 일반인들도 거의 들놀음으로 부르고 있다. 이 탈놀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때 야유라는 명칭을 썼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야유로 통하고 있지만 어느 때인가는 들놀음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 탈놀이는 경상 우도에 속하는 부산의 동래, 수영, 부산진 등지에 전승되어 온 것인데 지금은 '동래(제 18호, 1967년 지정)'와 '수영(제43호, 1971년 지정)'의 두 들놀음이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래 들놀음의 '말뚝이'는 그 크기로 해서나 생긴 모양이 끔찍스럽기로 우리 나라 탈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힌다. 말뚝이면 역시 양반의 종에 불과한데 크기도 양반의 다섯 곱은 실하려니와 코는 열 곱도 넘는다. 너풀거릴 만큼 큰 귀도 부처님 귀를 뺨칠 만하다. 이 말뚝이가 말채찍을 휘두르며 굿거리 느린 장단에 '덧뵈기 춤'을 추는 모습은 절굿대로 땅을 짓이기는 형상이다. 동래들놀음에 나오는 숱한 양반 형제들이 이 말뚝이의 널푼수 잇는 풍채에 눌려 아주 왜소해지고 만다.

 5) 서낭굿 탈놀이

  서낭은 마을을 지키는 신이며, 서낭당은 그 서낭이 계신 곳이다. 이곳에서 제를 올리는 '서낭굿'은 마을로 들어오는 액이나 잡귀를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굿이다. 이러한 서낭굿이기에 여기에서 함께 했던 탈놀이는 민간 연극 가운데서도 가장 민중성을 띤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면 여기서 한 고을의 큰 당굿인 강릉지방의 '단오굿'에서 놀아지는 '강릉 관노 탈놀이(제 13호 1967년 지정)'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보통 다른 지방에서는 일반인들이 탈놀이를 하나 이곳에서는 관노들이 했으며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으나 조선조 말에 소멸되었다 한다. 탈은 피남 또는 오동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며, '장자마리(포대탈)'는 천을 몸 전체에 쓰고 나와 엄밀히 말해 탈이 아닐 수도 있으나 양식화된 탈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6) 뜬광대 탈놀이, 남사당 덧뵈기

  흔히 광대를 대령광대와 뜬광대로 나누는데, 현재 유일하게 전하는 뜬광대 탈놀이인 '남사당 덧뵈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남사당놀이는 6가지가 있는데 순서대로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로써 다섯번째 순서인 덧뵈기는 '덧(쓰고)본다', '곱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춤보다는 재담과 발림(연기)이 우세하게 나타나는 풍자극으로 다분히 양반과 상놈의 갈등을 상놈의 편에서 의식적인 저항의 형태로 나타내고 잇다. 덧뵈기탈은 우선 바가지 위에 종이떡으로 요철(요철)을 나타내고 눈구멍과 입구멍을 뚫은 다음 칠은 아교, 백분 등을 배합하여 마든 '아교 단청'으로 한다.

 7) 사자놀이-북청사자놀음

  북청 사자 놀음(제 15호, 1967년 지정)은 독립된 사자놀이로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유일 종목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사자놀이는 해서 탈춤, 들놀음 등에서도 보이므로 그 전승 지역은 가히 전국적이라 하겠다. 놀이꾼은 사자, 꺽쇠, 양반, 꼽추, 길라잡이, 애원성 춤꾼, 거사 춤꾼, 사당 춤꾼, 칼 춤꾼, 무동, 승무 춤꾼, 중, 의원, 영감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탈을 쓰는 사람은 5명으로 양반, 꺽쇠, 추, 길라잡이, 사자(2)등이다.

  여기서 사자는 흔히 한 쌍이다. 사자탈은 머리부분과 몸통부분으로 나뉜다. 본디 머리는 피나무로 파서 만들었으나 요즘은 종이로 만든다.

 8) 소놀이굿

  황해도와 경기도에 널리 전승되었던 '소놀이' '소멕이놀이' 또는 '소놀이굿'은 정월 보름과 8월 한가위에 주로 놀았는데 장정 두 사람이 멍석을 뒤집어쓰고 소가 되어 여러 가지 동작과 춤을 보이며 풍물패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추렴도하고 술과 음식을 얻어먹는 놀이이다. 소놀이굿 가운데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양주(양주) 소놀이굿(제 70호, 1980년 지정)'과 '황해도 평산(평산) 소놀음굿(제 90호, 1988년 지정)'이다.

 9) 춤탈-처용탈, 학탈

  춤탈이란 항목을 따로 설정하기는 했지만 실상 모든 탈들이 춤을 추는데 쓰여진다. 신앙성을 띠는 자리에 모셔 두는 탈 말고는 모두 얼굴에 쓰고 춤추며 재담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용무와 학무에 대한 유래는 앞에서 설명하였으므로 간략히 탈에 대해 알아본다. '처용무(제 39호, 1971년 지정)'에 사용되는 탈과 탈복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악학궤범의 도형을 참고하여 재현된 것인데 탈은 저포(저포)로 만들거나 칠포(칠포)로 껍질을 만들어 채색을 한다. 두 귀에는 주석 고리와 납주(납주)를 걸고 사모 위의 꽃은 모란꽃, 복숭아 가지는 세저포(세저포)를 쓰고 복숭아 열매는 나무를 다듬어서 만든다.

'  학무(제 40호, 1971년 지정)'에 쓰이는 학탈의 발단은 1935년경 민속춤의 대가인 한성중이 무용 발표회에서 학춤을 처음 공연한데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대강 학 몸의 골격은 가는 철사로 엮고 백지와 광목으로 바른 다음 그 위에 흰 닭털을 붙여 학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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