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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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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1:03 | 조회 : 3,875 |


  
탈의 유래에서 먼저 밝힌 바 있으나 흔히 탈을 분류할 때 '신앙탈'과 '예능탈'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신앙탈이란 그 탈에 제사를 지내거나 어떤 소망을 기원하기도 하고 지킴이로써 받들기도 하는 것인데 대개의 경우 일정한 장소에 모셔 든다. 귀신을 쫓는 의식에서 쓰는 구나면도 있다. 예능탈은 주로 춤추고 굿(연극이라는 뜻)하고 놀이할 때 얼굴에 쓰는 것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놀이탈은 '양반 광대놀이' '비비새놀이' '소놀이굿' '거북놀이'등에서 보이듯 다분히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세 분류로 나누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 세가지 성격이나 기능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 탈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처용탈은 귀신을 쫓는 기능을 하면서 '춤탈'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한 '소놀이굿' '거북놀이' '범굿' 등에 등장하는 소, 거북, 범 같은 탈은 신앙성을 지니면서, 놀이 그리고 춤, 음악 등 온갖 연희성을 함께 하는 복합성을 이루고 있다.

  이를 다시 세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앙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정한 처소에 설치해 두고 제사만을 지내는 신성탈('광대씨탈', '창귀씨탈' 등)과 악귀를 쫓아내기 위하여 쓰는 구나탈('방상씨탈')로 나눌 수 있다. 둘째, 예능탈은 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춤탈('처용무탈'). 연극할 때 쓰는 연극탈('산대 秀樗缺? 탈'등)과 또 민속 놀이할 때 쓰는 놀이탈('범탈'등)이 있다.

  우리의 탈은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쪽으로부터 '북청 사자놀음'이 있고, 탈의 고장인 해서의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그리고 중부 지방의 산대놀이로서는 '양주 별산대 놀이'와 '송파 산대놀이'가 있다. 경상북도의 '하회 별신굿 탈놀이', 경상남도의 '고성 오광대', '통영 오광대', '가산 오광대', 부산의 '수영 들놀음'과 '동래들놀음', 이밖에도 강원도 강릉의 '관노 탈놀이'를 비롯해서 '남사당패'의 '덧뵈기'가 있고, 굿판에서 쓰고 있는 '범탈'을 비롯한 '열두띠탈', 풍물패(농악대)가 쓰고 있는 '양반 광대탈'들까지 합친다면 줄잡아 3백여종의 탈 유산이 오늘에 전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탈 유산 가운데 자랑스럽게도 지난 1964년 국보(제 12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군 하회동에 전승되던 '하회 별신 굿탈' 아홉 점과 이웃 마을인 병산의 '병산탈' 두점을 합친 열 한 점은 우리의 탈 가운데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자랑스런 유산이다. 아마도 11세기 무렵의 작품이 아닌가 추측되는 이 탈들의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표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하회탈은 원래 현존하는 9종 (각시, 양반, 부네, 중, 초랭이, 선비, 이매, 백정, 할미)외에 떡달이, 별채, 총각의 3종이 더 있었으나 일제강점시기 없어진 것으로 전한다. 이 탈들은 배역에 따라 그의 성격들이 함축되어 희로애락을 안으로 머금고 있으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피조물이라 하겠다. 특히 턱을 따로 떼어 끈으로 연결함으로써 재담(대사)을 하면 얼굴 전체가 표정을 갖게 하는 등 탁월한 기능까지도 갖추고 있다. (하회탈 중 양반, 선비, 백정) 또한 턱이 없는 이매는 하회탈을 만들었다는 전설적 주인공인 허도령이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미완품이 되었다고 전한다. 2개의 병산탈은 병산 마을에서 전래하던 것인데 하회탈과는 작풍(作風)이 전혀 다르다. 한편 1980년 하회 별신국 탈놀이의 '주지탈' 2점이 국보로 추가되었다. 현재 하회, 병산탈은 국립 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으며,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방상씨(方相氏)'란 악귀를 쫓는 탈을 뜻한다. 중요 민속자료 제 16로 지정되어 있는 '방상씨 탈'은 장례행렬의 맨 앞을 이끌면서 잡귀와 잡신을 쫓는 역할을 한 조선 시대의 유일한 유물이다. 창덕궁에 보관되어 온 이 탈은 궁중에서 쓰였던 것으로 전하다. 그 크기가 높이 72cm, 너비 74cm나 되는 것이니 수레에 태워 상여의 앞에서 '길할애비'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얼굴에 쓰는 것이 아니다. 둥그런 눈이 넷, 입은 볼위까지 찢어졌고, 이마와 양볼에는 굵은 주름살이 져 있어 귀면상(鬼面相)을 하고 있지만 얼굴 전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무섭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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