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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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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07·15 00:59 | 조회 : 3,296 |


  
◎ 탈춤의 본질 : 삶의 인식과 창조적인 확인

  상대에 대한 느낌은, 예컨대 호감이나 반감은 그 얼굴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다. 됨됨이를 비롯한 다양한 인상은 바로 얼굴에 주어진 고정된 형상에다 그 순간순간 그려지는 표정에 의해 포착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탈이 이 땅의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빼어 박은 이유도 우리들 자신에 대한 근심과 우리들이 일구는 삶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숱한 탈에 부딪혀 막상 손 쓸 겨를도 없이 탈이 나고 나면, 자신에게 온통 뒤집어 씌워있는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 혹은 자포자기로 자기를 체념에 몰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공동체 사회에서는 개인의 탈에 앞서 집단의 탈이 강조되고 또 우선시 된다. 발표자는 우리 탈의 기원을 크게 '신앙적 동기'와 '생산적 동기'로 나눠 살피고 있듯, 우리의 전통탈은 공동체의 두가지 얼굴 즉 '이상' 과 '현실'의 형상적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탈은 이상과 현실을 손쉽게 넘나들 수 있게 해준다. 번거로운 과정과 구속이 따르지 않고서도 내가 꿈꾸는 사회를 탈판에서 이룰 수 있고, 또 마을의 얽히고 궂은 탈과 한을 풀어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탈은 현실을 현실이 아닌 탈판에다 옮겨 놓고 꼼꼼하게 뜯어보는 '인식'행위가 가능하게 하며, 반대로 이상을 탈춤이 벌어지는 현실의 공간에다 모셔와 제대로 누려보는 '실천'행위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 역시 탈이 지진 신화적, 마술적 기능의 대표적인 보기일 뿐이다. 이처럼, 탈의 본질은 바로 '전환'과 '변신'에 있다. 그리고 탈춤이 이루어지는 판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과 지금을 포함한 지난 세계에 대한 확인을 가능하게 하는 한이 뒷받침되는 신명의 판이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체험적 인식의 현장이기에, 그 흥분과 감동까지도 구체적이며 체험적이다. 탈판이 흔히 '열린 마당'내지 '개방된 공간'으로 인식되어 곧잘 현대 연극의 새로운 양식적 시도로 계승되는 기저에는 바로 이런 '원형적 체험'과 '생생한 인식'에 대한 강한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에 대하나 폭넓은 관심과 강한 애정은 전통적으로 탈춤으로 형상되었다. 그래서 탈이 많다는 것은 할 말이 많고 간섭할 거리가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개인적인 넋두리가 아니라 집단적인 행위 표현을 통해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막히고 꼬여있는 통로를 제대로 풀고 크게 뚫어 모든 것이 제 위치에서 원활하게 움직이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탈춤의 생명력이다. 이런 기능으로 하여, 전! 통사회에서 탈춤은 지역적이고, 집단적 숙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상반된 처지, 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던 이들이 서로의 생산적인 통로를 재구축하기 위해 일상적 시공간으로부터 일탈되고 해방된 새로운 판을 열어왔던 것이다. 이처럼 탈판은 삶의 마음이자 정신을 형상하는 살아있는 우리들의 얼굴을 앞세운 집단적인 정화의 기능을 본질적 의미로 삼아왔다.

  또, 우리 전통 탈춤은 민간의 자생력에만 의존하지도 않았고, 화려한 수입품의 사치에 눈멀지도 않았다. 또한 지배계급의 허영과 거만에 혹하지도 않았으니 우리의 탈춤은 이들 요소를 삶이라는 거름에 삭히며 다시금 재창조하였다. 우리 탈춤은 삶이라는 질곡과 무게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싸움의 반영으로서, 좀 더 풍요로운 생산과 수확을 위한 건강한 생명력을 기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풀이'이며, 공동체에서 비롯된 묵은 오해와 퇴적된 화를 모두 토해내고 쏟아내는 '잔치'였다.

  실제 인간의 몸을 빌러 행해지는 '잔치풀이'는 대부분 현실 투영의 내용이지만,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탈이 우리 인간의 얼굴을 닮아 있지만, 바로 자신의 얼굴이 아니듯이 현실은 탈처럼 왜곡되어 있고, 과장되어 있다. 그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강한 애착만큼이나 지금의 삶에 대한 강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즉 전통 탈춤에 내재되어 있는 강한 현실 비판력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한 70년대 탈춤 부흥운동과 80년대 마당극 운동과 민족극 정립의 구체적인 실천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인식한 구체적인 결과이다.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의 획득이란 바로 자기를 포함한 공동체의 과거를 포함한 공동체의 과거를 포함한 지금 모습을 되비추어 보고, 갈무리하는데서 출발한다. 반성과 인식은 비판의 출발이자 근거이며, 따라서 창조의 거름이다.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것은 창조의 결핍을 야기시키며, 이러한 상상력 빈곤의 시대와 사회는 반성과 자기 인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탈춤은 결국,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의 자기 반성과 확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시대와 사회에 맞는 비판과 상상의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발표자의 의견에 공감을 하면서도, 우리나라의 경우는 발림굿인 기악에서 대사극으로, 신앙성을 띤 놀이에서 세속적인 놀이, 예컨대 산대놀이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은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남기게 한다.

  첫째, 고대 제천의식이 비록 종교적 행사의 하나로 행해졌지만, 종교 내지 신앙적 속성이 이 시기 원시종합예술의 형태인 전통 탈춤의 초기 모습을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도리어 가무악이 통일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바탕에는 이야기성이 갈려 있으며, 이미 이 시기에도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인간의 몸과 표정으로 이야기하였던 것으로 볼수 있다.

  둘째, 발전사관의 한계로 자칫 기악과 신앙놀이는 낡고 낮은 것이고 대사극과 세속적인 놀이는 세련되고 놓은 것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다. 그럴 경우 오늘날의 발전적인 전통 탈춤의 방향 모색 역 자칫 서구극 중심과 통속적인 재미만을 추구하는 상업극에 모아질 우려가 있다.

  셋째, 이분법적 접근으로 인해 우리 전통극에 내재한 여러 속성과 특징을 크게 신앙성과 세속성, 음악과 문학의 대립적인 단선 구도로 받아들여 그 외의 부분을 간과할 수도 있다. 실제 이 두 요소는 어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발전하거나 이행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탈춤속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지배적인 것에 불과하다. 다만 탈춤이 놓이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어느 국면이 개발되고 강조되어 드러나거나 감소되고 숨겨질 뿐이다.

  이런한 점으로 볼때, 비판과 예술적 상상의 총화로서의 탈춤의 본질 이해쪽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새로운 양식으로 탈춤을 수용하는데 더 기여하는 통시적인 접근의 길이 열리리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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